본 장에서는 근대 출판인쇄 요리책에 포함된 요리 관련 지식이 전승되는 양상을 살펴보기 위하여 1) 출판 인쇄 기술 문화 2) 저자 3) 독자의 관점에 따라 각각에 해당되는 요소를 설명하고자 한다.
1절에서는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 1910년대~1940년대에 출판된 요리책이므로, 이 시기의 출판계 상황과 독서계 상황을 대비해보면서 요리책의 발행 상황을 파악 한다.
또한 두 요리책이 출판되기 이전에 인쇄기술이 도입되던 상황과 1930년대 이후부터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이외의 요리책이 발행되는 사항을 비교하면서, 지식이 당시 출판 인쇄물에서 전달되는 방식을 예시를 들어 비교할 것이다.
2절에서는 저자의 요리책에 대한 인식과 책의 서술 방식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2장과 3장에서 설명하였듯이, 방신영이 『부인필지』를 읽었고, 이용기가 『임원경제지』『정조지』 이외의 책을 읽었다는 전제가 성립할 수 있는 지의 여부를 판별하고, 이를 통해 지식이 전파되는 과정을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또한 지식이 전승되는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이와 함께 요리책의 저자들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책들의 필사·출판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또한 독자로서의 저자가 앞선 요리책을 보고 어떤 요리법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그 선택에 대한 저자의 인식 체계를 살필 것이다.
3절에서는 출판된 두 요리책이 독자의 식생활에 대해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고, 또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대중 독자를 보유한 출판 인쇄물은 다시 독자의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독자는 이를 다시 구술이나 문자의 형태로 전승하는 가능성을 가진다.
요리법과 요리 기술의 경우, 지식의 전파 과정에 따라 음식생활과 음식문화에 영향력을 가져온다. 요리법의 재생산은 문자화된 지식을 구술로 익히고 다시 이를 문자화한 경우, 그리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경우로 이는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 예시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 출판계 상황과 요리책 발행
식민지시기는 요리법을 포함하고 있는 요리책이 출판사에 의해 발행되어 유통되고 독자에게 판매되던 시기이다. 조선시대의 요리책은 주로 필사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필사본은 특성상 책을 다수 제작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산림경제』의 경우 이본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식자층이 접하기에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대부분의 한글로 적힌 필사본 요리책은 남아있는 판본의 숫자가 많지 않다.
신활자본이 상업 유통되기 이전의 16세기 중반부터 관과 민간에서 발행한 목활자본(木活字本)이나 방각본(坊刻本)을 중심으로 책의 유통이 이루어졌다.
특히 감영이나 서원에서 지식보급을 위한 도서를 출판하였으며,204) 1800년대 전라도 지역에서는 완판 방각본이 활발히 발행되었으며, 1900년대 초기까지도 발행되었다.205) 이 당시의 서적으로는 기존 지식을 요약하여 식자층만이 향유하던 문자문화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반영되어 『千字文』, 『童蒙先習』 등의 학습서 혹은 역사서 등이 발행되었다.
또한 방각소설이라고 불리는 조선시대 후기 소설이 세책점 등의 장소에서 유통되었다.206) 『산림경제』나 『규합총서』의 경우에도 목활자본으로 발행된 요리책이 발견된다.
필사본, 목활자본, 방각본으로부터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인쇄기술과 신활자로 찍은 출판인쇄본으로 책이 바뀌어가면서 이로 인해 발생한 출판문화는 더 많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883년 9월 박문국이 설립되고,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를 발행하기 위하여 신활자와 인쇄기계가 도입되어 신활자를 중심으로 한 출판문화가 시작되었다.207)
인쇄기계와 신활자가 보급되어가면서 민간자본 출판사들이 생겼으며, 출판사들은 연활자본(鉛活字本)을 사용하여 대량으로 신문·잡지·서적을 발행하여 대중에 보급했다.208) 1907년 신문법과 1909년 출판법령은 이 당시 도서 출판에 대한 규제 상황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209)
초기의 출판 가문의 족보를 발행하거나 고서를 영인 하였으며, 교과서, 소설 등이 발간되었다. 또한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에 실시된 교육운동과 함께 사립학교가 설립되고 1907~1908년 사이 교과서가 다수 발행되었다.210)
식민지시기 이후에는 1910~1920년대는 일본의 출판법령이 실행되면서 외부 규제가 극심해졌고, 도서 검열이 실행되었다. 개화기에 문을 열었던 민간출판사가 총독부의 검열 대상이 되면서 최남선과 최창선이 운영하던 신문관 등이 문을 닫았다.
이 때문에 ‘조선요리’를 정리하였다고 광고된 신문관 발행 『조선요리제법』은 저작권을 광익서관으로 바꾸었으며, 『조선요리제법』은 검열의 대상으로 타격을 입지 않았다.
상업출판사는 1920년대부터 그 수가 증가하였으며, 인쇄·출판·판매·유통·광고의 측면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출판사가 활동하기 시작했다.211) 출판사는 신문에 서적 광고를 통해 각 출판사의 서적을 홍보했다.
또한 원저자에게 저작료를 지불하고, 이후의 판권과 이윤을 출판업자가 소유하는 저작권체계가 당대에 자리 잡았다.212) 3·1운동 이후 문화정치 정책과 함께 다양한 이유로 1920년대부터는 출판물량의 급증하기 시작했다.
또한 총독부가 1920년 1월 6일자로 《동아일보》, 《조선일보》, 《시사신문》의 발행을 허가하였으며 이는 신문을 통해 국민을 문화적으로 회유하여 식민 통치를 오랫동안 지속하려는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213)
이 때문에 《동아일보》에 요리법 기사가 연재물로 실렸으며, 1933년 간행된 잡지 《신가정(新家庭)》에도 방신영이 요리 전문 저자로 참여하여 식단표와 영양 관련 기사를 지속적으로 실었다. 식민지 후기인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는 총동원체제로 들어서고 난 뒤부터 도서에 대한 통제가 심했다.
출판량은 1937년 중일전쟁을 시점으로 증가하였으나, 1940년대부터는 물자와 인력의 부족으로 점차 쇠퇴했다. 또한 검열이 심했던 시기였으므로 정치적 내용과는 거리가 먼 출판물들이 주를 이루었다.214)
문학소설의 경우 각 서점이 발행한 서적목록에 소설로 분류되었으므로 몇 종의 소설이 발행되었는지 파악하기 쉬운 장점을 가지고 있다.215) 그러나 요리책은 개화기나 식민지시기 특정한 장르로 분류되던 책이 아니며 단지 소수만이 발간되었으므로 그 당시 장르적 특성이 존재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또한 앞서 광고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일본어로 된 일본 요리책이 수입되기도 하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판본을 추정하기 어려우므로 조선요리를 제목에 내세운 요리책의 발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개화기에 해당하는 1900년대에는 이숙의 『부인필지』가 우문관에서 발행되었으나 중쇄를 찍지 못하고 초판에 그쳤다. 식민지시기 이후에 가장 먼저 출판된 요리책이 바로 『조선요리제법』이며,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216)
『조선요리제법』이 거듭하여 재판되는 가운데 『조선요리제법』 4판이 발행되던 1924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 영창서관에서 발행되었다. 1930년대에도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재판을 계속해서 출간했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는 조선요리를 다룬 다른 신활자본 요리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한다. 1934년에는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簡便朝鮮料理製法)』, 1939년에 조자호(趙慈鎬, 1912~1976)의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이 광한서림에서 발행되었으며, 1940년에는 홍선표(洪善杓, ?~?)의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은 조광사(朝光社)에서 발간되었다.
같은 해에 일본어로 된 손정규(孫貞圭, 1896~?)의 『조선요리(朝鮮料理)』도 일본인의 자본으로 설립된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발행되었다.217) 특히 『조선요리』는 일본어로 작성되었으며 요리 과정 삽화가 수록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요리책의 독자 중에서 일본어 식자층이 늘었기 때문에 출간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표 31> 1890~1945년 연활자본으로 발행된 출판인쇄 요리책
* 이 표는 필자가 확인한 책과 이성우의 『한국식경대전』, 한식재단의 『근대 한식의 풍경』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요리법을 포함한 책인 요리책은 개화기나 식민지시기에 많은 수가 출판되지 않았으며, 출판문화 안에서 독립적인 ‘요리’ 장르로 성립되지는 못하였다.
그 중에서도 『조선요리제법』은 초기 신문관에서 발행될 때 청년 양성의 수단으로 선택된 문예와 함께 취미와 오락을 신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이는 ‘바둑’, ‘재담’, ‘속담’ 등의 잡종(雜種)으로 분류되었다.218)
그 후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발행될 때는 서적목록에 가정(家庭)으로 분류되었다. 신활자본 요리책은 식민지시기까지 출판사를 중심으로 개별적인 양상에 따라 출판되는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될 수 있으며, 요리책이라는 장르는 해방 이후에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