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요리책에 담긴 지식 전승 연구 :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중심으로
요리책은 기존의 식품사·식생활사·음식문화사 연구에서 일차적인 사료로 사용되었다. 요리책에 포함된 요리법이 당대의 음식생활을 반영하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이 발행되는 사회문화적 상황과 요리법의 전승 양상은 함께 연구된 적이 없었다.
따라서 본고는 식민지시기 초기에 출판된 요리책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대상으로 하여 음식민속학 자료로써 요리책의 개념과 의의를 재고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는다.
특히 이 두 요리책은 근대 출판인쇄기술이 도입되고 난 다음에 발행되었으므로, 필사본 요리책과는 다른 사회문화적 맥락을 살필 수 있는 연구대상이 된다. 본고에서는 먼저 요리책의 개념을 정의하였다. 요리책의 뜻은 기본적으로 요리법을 적어도 절반 이상 포함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재료와 수량만이 기록되어 있고 요리하는 법이 제외되어 있는 책이나, 요리법이 내용 중 일부만 등장하는 책을 요리책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본고에서는 요리책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4가지 유형(1.책의 형태 2.표기문자 3.포함된 요리법의 종류 4.요리법의 서술 형태)을 제시했다.
요리책의 연구에는 1) 책의 외적 형태와 사회문화적 맥락 2) 책의 내부 구성과 요리법의 두 관점이 적용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책의 외적 형태와 함께 출판문화사적 맥락속에서 저자, 출판사(발행인), 유통업자, 광고, 독자 등의 요소를 함께 고려하였다.
책의 요소를 파악함으로써,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식이 어떻게 전파되어 가는지 그 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 또한 책의 내부 구성은 서문, 목차, 수록된 요리법 등으로 나뉘며, 수록된 요리법에서는 지식이 전승되는 양상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요리책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두 요리책의 판본에 관련된 것으로, 『조선요리제법』은 식민지시기 동안 총 13판이 발행되었으며, 수록된 내용에 따라 3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총 3판까지 발행되었으며, 각 판본의 내용이 거의 유사한 편이다. 1943년 출판 되었다고 전해진 4판은 실물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내용에 의거해 1931년에 발행된 재판으로 규정했다.
두 번째는 저자와 저작권 문제이다. 『조선요리제법』은 저자인 방신영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원저자는 이용기이지만 저작권자는 영창서관 사장 강의영이다.
1933년에 발생한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저작권자인 강의영이 피고가 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세 번째, 두 요리책의 출판사에 관련된 사항이다. 특히 『조선요리제법』의 경우 신문관이 폐업한 이후 광익서관으로 판권이 다수 옮겨졌기 때문에 출판사가 바뀌었다.
이후 출판업자들이 합자하여 설립한 조선도서주식회사와 한성도서주식회사으로 저작권을 옮겨 책이 발행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저작권이 영창서관의 사장 강의영에게 속해있었기 때문에 영창서관에서 발행되었다.
네 번째로는 광고에서 나타나는 문구를 분석하여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형태, 독자층, 저술 의의 등을 규정했다. 특히 독자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문구에서, 두 요리책의 독자층이 주로 여성이라는 점과 함께 여성독자 중에서도 가정부인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요리제법』은 ‘학교를 다니는 새아씨’를 중점적으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경우에는 ‘양가숙녀’에 광고의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여성 독자층의 계층이 나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다섯 번째, 발행시기가 앞선 요리책과 원문을 비교하여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내용이 유사한 요리법을 밝혀냈다. 『조선요리제법』은 『부인필지』의 일부 내용을 참고하여 내용을 일부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부인필지』 출판인쇄본을 발견했다.
출판된 『부인필지』는 1908년 우문관에서 발행되었으며 저자는 명신여학교 한문·재봉교사였던 이숙(李淑)이다. 또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의 경우 『임원경제지』 『정조지』와 비슷한 요리법은 전체 항목 중에서 약 30% 정도였다.
『임원경제지』 『정조지』 이외에도 참고한 앞선 요리책은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조선요리제법』, 『농정회요』 혹은 『준생팔전』, 『수원식단』이다.
결론적으로 다른 요리책에서 요리법을 가져온 과정을 1) 필사본과 출판인쇄본의 특징 2) 저자의 선택과 전승 유형 3) 전승 계보로 나누어 요리 지식의 전승 과정을 분석했다. 출판인쇄를 통해 문자에서 문자로 전해지는 요리 지식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 독자에게 전달되었다.
문자에서 문자로 옮겨진 내용이 포함된 출판인쇄본 요리책을 본 독자들은 이 문자화된 지식을 실험하고 요리로 재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연구는 민속 지식이 구술로 전승된다는 기존 민속학의 관점을 지적하고 문자문화속에서 문자에서 문자로 전승되는 지식이 책이라는 매체에서 드러난다는 측면을 제시하였다.
따라서 이는 음식민속학에서 타성적으로 접근했던 문헌을 사회문화적 맥락과 전승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식으로 연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요리책을 통해 살펴본 사례 연구라 할 수 있다.
또한 구술로 전승되었다고 여겨지는 요리법을 보유한 정보제공자가 요리책의 독자일 수도 있으므로 추후의 구술을 통한 음식민속학 연구에서 이를 보완하는 연구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본고는 한국 근대 출판문화사 연구가 초반부에 들어선 단계이므로 관련 조사가 미진하여 이러한 점을 충분히 보완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한 출판사를 대상으로 서적 광고 전수조사가 이루어진 점이 없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보만을 대상으로 내용을 분석했다.
또한 실제 요리책을 읽은 독자를 파악하기 어려우므로, 그들이 어떤 방식을 통해 문자화된 지식을 접하고 요리로 재현했는지에 대한 사항을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
따라서 추후의 연구에서는 독자층을 면밀히 파악하여 실제 요리책을 읽었던 요리책의 독자를 대상으로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실시하고자 하며,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전승된 요리 지식이 다시 어떤 경로로 전파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두 책뿐만이 아닌 다른 요리책을 대상으로도 지식의 전승 양상을 밝혀낼 수 있으므로, 향후 요리책을 대상으로 한 관련 연구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 글 : 라 연 재
* 주제어 : 요리책, 요리 지식, 조선요리제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근대 요리책, 음식민속학, 문자문화, 구술성, 문자성, 이차적 구술 과정, 지식 전승, 요리 지식 전승, 저자, 독자, 출판사, 서적 광고, 서문, 근대 인쇄기술, 출판·인쇄문화, 방신영, 이용기, 강의영, 주부, 여학생, 여성 독자, 요리책 표절, 표절과 저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