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제기
본고는 20세기 초 대표적인 상업출판 요리책인『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과『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담긴 지식이 전승되는 양상을 음식민속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것이다.1)
요리책이란 용어는 일반적으로 조리서, 음식책, 조리책, 요리서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요리책은 요리법을 포함한 책이며,2) 독자가 읽고 재현할 수 있도록 글의 형태로 전달되는 매체이다.3)
요리책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포함된다. 예컨대 요리와 관련된 정보, 요리 기구, 재료를 확보하는 방법, 상차림 등의 요소이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요리법이며, 요리책에는 반드시 요리법이 일정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요리책에 대한 학계의 연구와 작업은 식품학자인 이성우(李成雨, 1928~1992)로부터 시작되어4) 최근 한식재단의 연구결과물까지 이어진다.5)
『산가요록(山家要錄, 1450년경)』으로부터 근·현대 시기 요리책까지, 현존하는 요리책은 요리책이 쓰인 당대의 음식문화와 식생활을 파악하기 위한 사료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한의학·농학·식품학의 연구에서 요리책은 요리책에 실린 전통기술과 그 당시의 음식생활과 음식 관련 지식을 설명해주는 문헌이었다. 민속학 연구에서는 음식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요리법을 수집한다.
예를 들어 한 마을의 음식생활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그 마을이 공유하고 있는 요리법을 파악하는 것이 필수이다. 재료를 음식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적 변인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요리법은 마을의 민속지를 만들고 음식생활을 정리하는데 필수적이며, 일상음식·저장음식·의례음식 등 현장에서 재현되는 요리법을 계량화하여 작성된다.6)
민속학적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는 요리법은 현지조사 과정 중 정보제공자로부터 구술을 통해 습득되거나 개인의 일기, 신문·잡지 등의 매체 등 다양한 기록물에서 얻을 수 있는데, 이 중 요리책은 요리법을 다수 보유한 역사적 문헌이라고 볼 수 있다.
음식은 집단 내에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음식생활을 향유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지식이 누적되었으며, 음식문화가 형성된 한 집단의 요리 기술과 지식이 후대로 전승(傳承)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체수단이나 혹은 문자를 사용한 보존기억 방식이 필요했다.
요리책은 기록된 문헌이라는 점에서 구술과 문자로 전달된 요리법 모두를 포함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요리법의 역사를 살피기 위해서 과거의 요리책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필수적이다.
요리책은 주로 요리를 담당하는 사람이 음식을 만들기 위한 보조 기억 수단으로 사용하는 기록으로 여겨져 왔다. 따라서 조선시대 여성이 한글로 작성한 필사본 요리책은 여성이 가정의 음식을 담당하는 성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음식을 만드는 것이 당연시 되었으며, 요리책에 실제 그 당시 가정에서 필요로 하고 여러 번 만들어진 요리를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의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인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 1759~1824)는 서문에서 여러 고금의 책을 읽었다고 밝혔으며, 실제 책에도 인용문헌을 명시하고 있다.
이렇듯 요리책이 앞선 요리책의 지식을 모으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리책에는 반드시 신체·구술로 전승되는 당대의 요리법만이 기록되었으며 요리책에 수록된 요리법은 저자만이 쌓아온 고유의 기술이자 지식일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조선요리제법』과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대상으로 하여 요리법을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두 요리책이 필사본에서 인쇄 출판물로 전환되는 시점에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즉 이 두 책에 이르러서 요리법이 본격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대중들에게 문자로 전달되었다.
출판인쇄문화의 영향 아래 저작권 개념이 도입되면서 저자의 온전한 서술로만 이루어진 저작물이 자리 잡게 되었다.『조선요리제법』은 1917년에 처음 발행되었으며, 해방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우리 나라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저자인 방신영은 이화여자대학교 가사과교수였으며, 『조선요리제법』은 장안의 지가(紙價)를 올린 요리책으로 평가받았다.7)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임원경제지』에서 음식과 요리를 다룬 『정조지(鼎俎志)』 편을 원본으로 삼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판은 1924년 발행되었으며, 노래가사를 수집하여 집필한 『악부(樂府)』의 저자로도 잘 알려진 이용기가 서술하였다. 그러나 두 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저자·출판사·독자의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등장하는 요리법의 분석에만 집중되었다.
출판인쇄 기술의 초기에 발행된 두 요리책을 비교하여 연구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앞선 요리책과 다르게 바뀌어가는 요리 서술법의 변화상을 추적하기 쉽고, 두 번째로는 저자와 출판사, 독자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요리책의 서술법에 관련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적이 없으며, 또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은 『임원경제지』『정조지』가 원본이라고 인지되었을 뿐, 직접적으로 비교된 적이 없었다.8)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에 단독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두 요리책을 분석하는 작업을 선행하였다.
출판 전후의 문화적·사회적 상황을 살피지 않고 책이라는 매체가 포함한 요리법의 성격을 파악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맥락이 함몰될 가능성이 높다.9) 요리책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밝힌 다음, 요리책이 포함하고 있는 요리법이 어떤 방식을 통해 전승되었는지를 살피고, 민속지식이 과연 구술로만 전승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는 요리책에 포함된 음식문화의 지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전승되었는지에 대한 지점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