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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조리서 이야기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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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7. 장계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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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딸들아, 너희는 이 배를 타고 오너라

♣ <음식디미방>

효종 4년(1632년), 석계 집안은 석보에서 더 깊이 들어간 수비산으로 집을 옮겼다. 수비산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수비산에 자리를 잡던 해 계향 나이 55세였다. 머리는 희었지만 피부가 맑아 나이보다 젊어보였다. 석계와 계향은 나란히 뜨락을 거닐고 곡식을 거두고 경서를 읽고 글씨를 썼다. 둘은 부부라기보다 오누이같고 오랜 친구 같았다.

더 이상 괴롭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그런 세월을 15여 년쯤 보낸 후 계향의 삶이 가장 완성된 시점은 아마도 일흔쯤이었을 것이다. 일흔셋에 지은 「희우시」를 보면 자족과 풍요가 넘치게 드러나고 있다. 계향의 「희우시」는 안동과 영양 일대의 안방에서 오랫동안 끊이지 않고 읊어졌다. 일흔 살 노인에서 일곱 살 아이까지 조손이 함께 운율에 맞춰 4백여 년 유쾌하게 암송돼 온 시였다.

<드물고도 드문 경사 稀又詩>

사람이 세상에 나서 칠십 세까지 사는 것은 옛날부터 드문 일인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칠십 세에 세 살까지 더 사니 드문 중에 또 드문 일이네 칠십가삼희우희(七十加三稀又稀)

드물고도 드문 중에서 사내 아이가 많으니 희우희중다남자(稀又稀中多男子)

드물고도 드문 중에서 드물고도 드문 일이네 희우희중희우희(稀又稀中稀又稀)

희우시를 지은 지 두 해쯤 지났을 때, 계향은 눈이 어두워져 더 이상 늙어지면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했다. 평생을 통해 깨달은 부녀의 도를 물려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딸자식들이 펼쳐볼 최초의 경서를, 술을 담는 법과 음식을 보관하는 법과 귀한 음식을 만드는 법에 대해 며느리와 딸들에게 일러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며느리와 딸이 있지만 입으로 말하는 건 사라져버리기 쉽다. 다행히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언문이 있지 않은가.

계향은 한가한 시간이면 화선지를 앞에 두고 평소에 생각하는 것을 기록해나갔다. 붓이 지나갈 때마다 어려운 한자가 아닌 한글의 형태가 드러났다. 때로 등잔불을 돋우고 글을 쓸 때도 있었다. 어슴푸레한 불빛에 비친 계향의 모습은 살아있는 조각처럼 단아했다.

‘음식디미방’ 특선 메뉴
<한국의집 ‘음식디미방’ 특선 메뉴>

“...셩이편법(석이편법:石耳▩法) 백미 한 말이면 찹쌀 두 되를 함께 담갔다가 가루 만들고, 석이 버섯 한 말을 데운 물에 좋이 씻어 다듬어 섞어라. 예사 팥시루편 같이 안치되 백자(柏子)를 쪼아 켜켜이 놓고 쪄라. 이 떡이 가장한(가장) 별미니라...

... 밀을 사흘 담갔다가 건져 말리어 익게 쪄 더운 데 헤쳐 두고 갈로 한 돗(돗자리) 우희 닥닢으로 더퍼 두면 세다섯날(15일 만)에 누른 오시 오르거든 닙흘 벗기고 볏헤(볕에) 말리어 퍼 버리고 항(항아리)의 너허 믈 부서 사매기를 마은 날(40일) 하면 익나니라.

계향은 흐뭇했다. ‘딸들아 너희는 이 배를 타고 오너라. 음식을 만드는 일은 경서의 주석보다 확실하고 시법보다 까다롭되 향기로우며 서법보다 고단하되 달디 다노니~’ 계향이 생각하는 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이었다.

‘음식 속에 우주의 법이 담겨 있느니. 게다가 이것은 지금 당장 혀끝에 올려 맛을 볼 수 있지 않느냐. 네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지 않느냐. 네 서방과 빈객들을 아름다이 대접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너희를 도(道)로 실어가주니 이런 경서(經書)는 천하에 둘도 없나니라.’

계향의 작업은 그렇게 몇 날 며칠 계속되어 달포가량 이어졌다. 다 쓰고보니 모두 백마흔 여섯 가지, 그중에서 술 담그는 법이 가장 많아 쉰 세 가지나 되었다. 알기 쉽게 면병류, 조과류, 어육류, 채소류, 주류, 식초법으로 분류했다.

노끈으로 책을 맨 후 계향은 겉장에다 <음식디미방>이라 썼다. 음식으로 지극한 도에 이르는 방법이란 의미였다. 그리고 맨 뒷장 안쪽에 다시 몇 줄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이렇게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가되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말며 부디 상치 않게 간수하여 쉬 떨어버리지 말라.” 음식디미방이 완성되었을 때 계향은 사랑에 들고 가 시명에게 보였다. 꼼꼼히 음식디미방을 읽어본 시명은 맨 뒷장에 손수 시를 한 수 썼다.

며느리가 시집에 가게 되면 그 사흘째 되는 날 삼일입▨하*(三日入▨下)

주방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먼저 손을 씻고 국을 지어야 한다. 세수작▨탕(洗手作▨湯)

아직 시어머니의 식성을 알지 못하니 미암고식성(美暗姑食性)

어린 시누이를 먼저 보내서 맛보게 하여라. 선견소부상(先見少婦嘗)

✽ 원본 판독불가.

시명은 이제 머리카락이 완전히 희어진 계향을 은은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큰일을 해냈소 부인, 우리 집 안채의 도가 여기 다 담겼구려.” 1672년의 일이었다. 이후 둘은 대명동(현 풍산읍 수곡리)이란 이름을 가진 안동부로 이사해 8년을 살다가 시명이 먼저 타계하고(84세, 1673년) 계향은 석보 융일의 집으로 돌아와 7년을 더 살다 은은히 웃음 지며 숨을 거둔다.

1680년 7월 7일의 일이었다. 그날 밤 까마귀가 놓아 준 오작교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날 때 시명과 계향도 하늘 중간 휘황한 별 밭에서 만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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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한식진흥원 •전북음식플라자 •우석대학교 식품영영학 윤계순 교수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백두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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