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경당선생은 광풍정 한 구석에 계향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소자들 사이에 끼여 열심히 뭔가를 따라 읽고 있었다. 흥효는 저녁을 물리고는 계향을 사랑으로 불러냈다. 이제 겨우 열 살이었다. 권씨에게는 명심보감을 읽었는지 확인하려 한다 하였으나, 흥효는 기실 계향의 총기어린 눈동자를 보고 싶었다.
‘계향아, 오늘 낮에는 광풍정에서 뭘 들었느냐?’ ‘예 원회운세를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흥효는 계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동그란 얼굴과 호를 그린 가즈런한 눈썹이 침착했으나 자그만 입술은 여태 아기태를 벗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흥효는 절로 웃음이 돌았다.
‘그래 어디까지 알아 듣겠던고?’ 계향은 손가락을 들어 수계(數計)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흥효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계향은 원회운세의 그 승제법(乘除法)과 선천후천 운회술을 아비 흥효에게 아는대로 요연하게 일러 고하였다.
이전에 따로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 낮에 잠깐 들은 내용만으로 계향은 원회운세를 환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운회술을 사량할 때 자신이 막히던 부분까지 계향이 막힘없이 술술 뱉어내자 흥효는 되려 두려울 지경이었다. 그래서 탄복을 감추고 짐짓 혼을 내는 척 했다.
계향의 문재(文才)는 실로 놀라운 데가 있었다. 당시 천하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청풍자 윤목선생, 그가 어느 봄날 춘파에 들렀다가 계향의 글씨를 본 후 탄복하여 자신의 바랑에서 붓을 꺼내 계향 앞에 놓고 간 적도 있었다. 계향은 어머니를 대신해 일찍 경당가의 안주인 노릇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약한 어머니 권씨가 심한 윤감에 걸렸기 때문이다. 윤감은 고열이 나는 돌림병이었다. 본집 식구야 종들을 모두 합쳐도 다섯뿐이었으나 원근에서 가르침을 받으러 몰려오는 유생들에 사흘이 멀다하고 찾아드는 경당선생의 벗들로 숟가락 놓을 식구 수가 스물을 넘기기 일쑤였다.
안주인은 식사와 간식 준비며 집안을 청소하거나 빨래를 하고 또 손님이 오가실 때마다 들려드릴 선물을 마련해야 했다. 인편에 보내온 정성에 감사하는 적바람(짧은 편지)도 써야했다. 안살림을 맡은 이후 계향은 눈코 뜰 새가 없어졌다. 계향의 나이는 이미 열여덟이었다. 혼인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처음에 계향은 붓을 더 이상 들 수 없다는 것이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눈앞에서 금방 먹어 치워 없어지고야 말 밥과 떡과 술을 빚는 일에 평생을 허덕거려야 한다. 그게 아녀자의 도리다. 내 앞에 주어진 삶은 그 외에 어떤 선택도 없다!”
하지만 어머니 대신 부엌에 들어간 지 두 해 째가 되어 부엌일이 제법 손에 붙자 계향은 음식재료를 다루는 것이 그저 노동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것은 우주와 인간의 합일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자연이 준 생명을 두 손으로 겸허히 받아 인간의 생명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라는 각성이었다.
계향이 허망하다 생각한 것들이 실은 사람의 목숨을 이어가는 근본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걸 알고 나자 계향은 그동안 자신이 쓴 글씨와 그림을 모두 없애기로 결심한다. 물론 쉽지 않은 결심이었다. 계향은 그동안 자신이 쓴 글씨와 그림을 안마당 한구석에 전부 모았다. 계향은 잠깐 그걸 꺼내봤지만 다시 무더기들 속으로 던져버렸다. 결별이었다.
계향은 불붙은 부엌 아궁이에 자신이 칭찬받았던 글씨와 그림이 담긴 화선지 더미들을 밀어 넣었다. 그것은 계향의 효였다. 그녀에게 효(孝)란 멀리 있는 도(道)보다 훨씬 무겁고 큰 것이었다. 한지가 불을 안고 타들어가는 동안 계향의 눈엔 어쩔 수 없이 눈물이 가득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