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당 선생의 따님
선조 31년(1598년), 동짓달 찬바람이 부는 맑은 날의 안동 춘파. 경당 장흥효선생의 여식으로 계향은 태어났다. 계향은 어머니가 시집온 지 십년이 넘어 얻은 첫 아이였다. 갓 태어난 계향은 그 아비를 닮아 눈매가 검고 또렷했다. 경당은 딸의 백일에 고결하고 빼어난 이가 되라는 의미로 ‘계향’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경당은 사서삼경은 물론 근사록과 홍범구주를 두루 섭렵한 조선 최고의 선비였다. 경당의 스승과 부친은 모두 임진년 왜인과의 난리통에 돌아가셨다. 흥효는 깊은 시름에 빠져 그 이후 6년 간 서안 앞에 앉지도 못하고 울분 속에 살았다. 흥효가 다시 마음을 잡고 책을 펼친 건 권씨부인의 태중에 아기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였다.
그랬기에 계향의 탄생은 안동장씨 가문의 경사였고 춘파 마을 전체의 기쁨이었다. 어린 계향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면서부터 절로 아버지 어깨 너머로 책을 들여다봤다. 글씨 쓰는 아버지 곁에서 붓과 먹을 만지며 놀았고 문도들을 가르치는 아버지 음성과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시의 운율을 익혀갔다.
계향은 안뜰을 뛰어놀다가 간혹 부엌에 들곤 했다. 계향은 그의 어머니 권씨와 여종들이 부엌에서 닭을 잡거나 생선포를 뜨거나 나물을 삶는 것을 지켜봤다. 조왕신에게 곡식을 올리거나 술을 담을 항아리를 불에 달구거나 흰 사발들을 하나씩 마른행주질 하는 양을 신비롭게 바라보곤 했다.
부엌은 불과 칼이 있는 공간이었다. 생명이 잘려 나가고 그 잘려나간 생명으로 다시 생명을 살리는 공간이었다. 계향은 흥효가 고요하게 책을 읽고 좌선하는 모습과 어머니 안동권씨가 그릇을 닦는 모습이 겉모습은 다를지언정 근본은 결국 한 가지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각했다.
계향은 부엌에서 느낀 생각을 조모(할머니) 권씨에게 자그만 입으로 앙증맞게 말했다. “큰으매!(안동지방에서 조모를 부르는 호칭) 어머니가 부엌에서 기왓가루로 그릇을 닦으실때와 아버지가 붓으로 글씨를 쓰실 때는 똑같은 냄새가 나요. 뭔 냄새냐 하면...시원한 수박풀 냄새예요.”
조모 권씨는 자신이 아녀자로 평생 손님들을 수발하고 제사를 받들면서 몸으로 익혀왔던 것이 평생 책 읽고 글을 쓰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노년에 이르러서야 어렴풋이 각성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섯 살 계향이 기특하게도 바로 그걸 지적하는 것이었다.
어린 계향은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손녀는 안채에서 할머니가, 손자는 사랑채에서 할아버지가 가르치는 것이 당시의 교육법이었다. 할머니는 계향에게 신체 각 부위의 명칭을 가르치거나 ‘천자문’을 가르쳤다. 계향은 할머니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섬세하고 정다운 조모의 가르침을 통해 계향은 안채에서 누대로 이어져온 지혜들을 배웠다. 계향은 글을 깨우치기 시작하면서 아버지 경당의 사랑에서 들리는 글 읽는 운율을 흉내 내는 것을 놀이 삼았다. 그 소리 중 계향이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시詩였다.
의미는 몰랐으나 운율을 따라가다 보면 그 뜻이 무엇인지 저절로 깨우쳐졌고 그 흐름을 감각하다 보면 몸이 쑥쑥 커지는 듯했다. 몸 뿐 아니라 정신의 깊이와 너비가 아연 달라지는 것을 계향은 느꼈다. 그것은 다른 것을 압도하는 기쁨이었다. 다섯 살 무렵 계향은 아버지 흥효 곁에 앉아 창밖 빗소리를 듣다가 시를 하나 지어서 아버지 앞에서 암송했다. 흥효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소음 蕭蕭吟(소소음)
창 밖에 소소한 빗소리 窓外雨蕭蕭(창외우소소)
소소한 빗소리는 자연 蕭蕭聲自然(소소성자연)
내가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我聞自然聲(아문자연성)
내 마음 역시 자연 我心亦自然(아심역자연)
“너 시를 누구에게 배웠느냐?”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날부터 흥효는 계향을 사랑으로 불러 유생들 곁에 앉혀두었다. 여식을 사랑에 들여 글공부를 시키는 것은 어느 집에서도 없던 일이었다. 남들이 알면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는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자식 사랑이라기보다 천하의 영재를 발견한 기쁨으로 흥효는 새앙머리를 땋아 붙이고 노랑저고리를 입은 채 입을 꼭 다문 계향을 이윽히 바라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