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음식 조리서의 가치
음식 조리서의 가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서술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첫째, 음식 조리서는 한국 전통 음식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핵심 자원이다. 음식 조리서에는 각종 음식 조리에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방법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내용들은 당시 사람들이 무슨 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방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지 그 실상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한글 음식 조리서는 한국 음식 문화의 전통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한글 음식 조리서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처럼 박제화된 문화유산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현실 생활에 영향을 미치면서 활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음식 조리서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라 말할 수 있다.
2 둘째, 음식 조리서는 국어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활자본이나 목판본으로 간행된 한글 문헌들은 엄격한 교정을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음식 조리서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사적으로 저술·필사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의 언어가 반영되었다.
한글 간본들의 대부분은 한문(漢文)으로 된 원문을 한글로 번역한 언해문이다. 언해문은 지극히 문어체적이어서 당대의 현실어를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비해 음식 조리서의 문장은 당시의 일상생활어를 바로 문장화한 것이다. 따라서 다른 언해서와 비교할 때 음식 조리서의 언어는 한문을 번역한 언해문의 제약에서 벗어나 당대 우리말의 실상을 훨씬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3 셋째, 한글 음식 조리서에 담긴 내용들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음식 문화를 가장 잘 알려 주는 자료이다. 대체로 보건대 전통 사회의 가정에서 곳간의 열쇠를 거머쥐고, 집안 살림을 꾸려 가는 사람은 여성이었다.
여성은 가족의 식생활을 관리했으며, 음식 조리는 여성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기도 했다. 음식 조리는 나날의 식생활과 집안의 제사 및 손님 접대를 위한 가장 긴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양반 가문의 여주인들은 이어 오던 음식 조리법의 습득은 물론 맛나고 품격 높은 음식의 조리법 개발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음식 조리서의 저술과 필사로 이어졌으며, 그것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주며 전수했던 것이다.
4 넷째, 한글 음식 조리서들은 전통 시대의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인간이 이룩한 문화 중 음식 문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공동체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우리 한민족 공동체는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공통성과 고유성을 겸비한 음식 문화를 영위해 왔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식생활인 만큼 음식 조리서는 식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당대의 사람들이 무슨 식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방법으로 음식을 조리해 먹었는지를 알려 주는 문헌으로 음식 조리서에 비견할 만한 것은 없다.
5 다섯째, 음식 조리서에 담긴 전통 조리법은 현대인의 식생활을 위한 새로운 음식 개발의 원천이다. 현대 사회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화’와 ‘융합’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지금까지 지구사에서 볼 수 없었 던 변화에 휩쓸려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음식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 음식을 뛰어넘어 이른바 퓨전 음식(fusion food)이 끊임없이 명멸(明滅)하고 있다. 한식도 예외가 아니다. 전통 조리법을 활용하여 현대 지구촌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는 융합형 음식이 계속 개발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한글 음식 조리서의 조리법은 전통 조리법의 창조적 변용을 뒷받침하는 밑거름이자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