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음식 조리서의 자료 현황
책에 온전히 음식 조리법만 실린 전문 음식 조리서는 한글본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글 음식 조리서의 흐름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3.1. 필사본 한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은 전문 음식 조리서이면서 한문본이라는 점에서 독보적 존재이다. 이 책을 제외하고 전문 음식 조리서는 모두 한글본이다. 전통적인 필사본 한글 음식 조리서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한글로 필사된 음식 조리서를 가리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글 음식 조리서는 1670년경 정부인 장계향이 지은 ≪음식디미방≫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18세기와 19세기를 거쳐 20세기 초기에도 다수의 한글 음식 조리서가 저술 혹은 필사되었다. 현전하는 조선 시대 음식 조리서는 필사본이 대부분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알려진 한글 필사본 음식 조리서를 조사해 보니 모두 41개 문헌이 확인되었다.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1670년경의 ≪음식디미방≫이며, 가장 늦은 것은 1927년의 ≪보감록≫이다. 41개 문헌 중 몇 가지를 가려 시대별 추이를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18세기 음식 조리서로는 ≪주방문≫(18세기 전기, 규장각 소장), ≪온주법≫(1786)이 있고, 18세기로 추정되는 문헌에는 ≪침주법≫, ≪주방문초≫, ≪음식보≫, ≪술 만드는 법≫, ≪주식방≫2)이 있다.
이 중에서 규장각 소장 ≪주방문≫은 ≪음식디미방≫을 잇는 중요 문헌이다. ≪음식디미방≫이 여성이 쓴 것인 데 반해 ≪주방문≫은 남성이 쓴 것이라는 점에서 두 자료는 대비된다.
≪침주법(浸酒法)≫3)은 궁중음식연구원 소장본으로 그 내용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침주(侵酒)’란 ‘술을 담근다’는 뜻의 우리말을 한자어화한 한국 한자어이다. 이 책에는 50여 종류에 이르는 술 담그는 법이 한글로 쓰여 있다. 술 담그는 법을 순 한글로 이렇게 많이 쓴 것이 드물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
≪온주법(蘊酒法)≫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동(내 앞마을)의 의성 김씨 종가 소장 한글 필사본이다. 이 책은 다른 문서를 썼던 이면지에 기록되어 있다. ≪온주법≫에 소개된 조리법은 총 56항이며, 내용별로 보면 술류 44항, 누룩 만드는 법 2항, 장류 2항, 병과류 6항, 반찬류 2항이고 기타 술과 장을 담그는 법, 조약법(造藥法)과 염색법, 의복 관리 방법 등이 적혀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술 만드는 법 중 서왕모유옥경향주, 구가주, 신방주, 방세향주, 적선소주, 계당주, 사미주, 과하절미주 등은 다른 조리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특히 이 책에 실린 오가피주 담그는 법은 그 내용이 ≪음식디미방≫ 등 몇몇 문헌과 비슷하여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 된다.
한글 음식 조리서 중에는 19세기에 전사되거나 저술된 것들이 가장 많다. ≪승부리안 주방문≫(1813년 직후, 규장각 소장), ≪잡지≫(1841, 궁중음식연구원), ≪윤씨음식법≫(1854), ≪정일당잡지≫(1856), ≪음식유취≫(1858), ≪김승지댁주방문≫(1860), ≪규합총서≫(1869, 목판본) 등은 연대가 밝혀진 것들이다.
19세기의 것이지만 연대가 정확하지 않은 음식 조리서로 ≪규합총서≫(필사본, 동경대학교 소장, 정양완 소장), ≪홍씨주방문≫, ≪양주방≫, ≪주방≫(임용기 소장), ≪술방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음식방문≫(동국대학교 소장), ≪술 빚는 법≫(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주식시의≫(동춘당 후손가), ≪우음제방≫(동춘당 후손가), ≪주식방문≫(노가재 후손가) 등이 있다.
20세기 초기에 전사된 한글 필사본 음식 조리서도 몇 가지 있다. ≪시의전서≫, ≪주식방문≫(1907년 추정), ≪반찬등속≫(1913), ≪보감록≫(1927) 등이 그것이다. 한글 필사본 음식 조리서의 전통이 20세기 초엽 까지 이어져 오다가 서양 인쇄 기술이 유입되면서 신활자(연활자 혹은 납 활자)본 조리서로 대체되었다.
3.2. 신활자본 한글 음식 조리서
19세기 말기부터 도입된 서양 인쇄 기술은 한국의 인쇄 출판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서양식 제지 기술, 기계로 만든 납 활자, 기계식 조판 틀, 인쇄기 등이 도입돼 전통적 수작업 인쇄 기술은 소멸되었다.
필사 기술은 물론 목판, 목활자판, 금속 활자판 등 전통적 인쇄법이 신식 인쇄기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20세기 초기의 음식 조리서는 신활자본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20세기 초기에 간행된 신활자본 음식 조리서로 가장 대표적인 책은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1913, 신문관)이다. 방신영의 이 책은 그 후 이름이 몇 번 바뀌고 내용도 개정되어, ≪만가 필비 조선요리제법(萬家必備 朝鮮料理製法)≫(1917, 신문관), ≪개정증보 조선요리제법≫(1942, 한성도서주식회사), ≪조선 음식 만드는 법≫(1946, 大洋公司),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4, 靑丘文化社) 등으로 간행되었다.
1938년에는 조자호의 ≪조선요리법≫이 신활자본 한글판으로 간행되었다. 음식 조리서 출판이 대중화 혹은 상업화하면서 남성이 저술한 책도 간행되었다. 이석만의 ≪간편조선요리제법≫(1934),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43)이 그것이다.
필자가 현재까지 검토해 본 바로 신활자본 음식 조리서로 가장 중요한 책 둘을 꼽는다면,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과 이용기4)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라 할 수 있다. 방신영이 지은 전자는 신활자본 음식서의 획을 그은 책으로 그 뒤에 나온 음식 조리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용기가 지은 후자는 조리법 서술 방식과 내용이 전통 필사본에 가장 가까우며, 풍부한 내용과 함께 저자의 독특한 음식 평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 ≪주식방≫은 ≪고려대 규곤요람≫이라 부르기도 한다(이성우 1981:329). 이성우는 이 책에 붙은 고문서 속에 건륭 60년(1795) 8월이라는 연기(年紀)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 책의 저작 연대를 1800년대 초·중엽으로 보았다. 그런데 옛 음식서를 집대성한 이성우(1992)의 목차에는 이 문헌의 연대를 1795년으로 해 놓았다. 이성우(1992), ≪한국고식문헌집성(韓國古食文獻集成)≫, 수학사.
3) 이 내용은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낸 ≪옛 음식책이 있는 풍경전≫ 24쪽의 내용을 필자가 요약한 것이다. 이 책의 복사본을 제공해 주신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4) 이용기는 본인이 음식 조리서를 저술했을 뿐 아니라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의 서문을 써 주기도 한 인물이다. 이용기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신경숙(2010)을 참고할 수 있다. 필자는 연구실의 학생들과 함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 입력하고 주석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 문헌에 대한 연구 결과는 별도로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