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음식 조리서를 지은 목적과 여성의 역할
예로부터 집안의 음식 조리는 주부의 몫이었다. 가사 노동에서 음식 조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집안 식구들이 먹는 음식의 조리는 가족의 생명을 가꾸는 신성한 일이다. 조선 시대에 음식 조리는 나날의 식생활은 물론, 양반가 운영에 필요한 봉제사(奉祭祀)와 접빈객(接賓客)1)을 위해 긴요한 일이었다.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손님 대접은 가장 중요한 예의범절의 하나였으며, 음식 차림은 접빈객의 필수 요소였다. 그리하여 종가(宗家)를 비롯한 양반 사대부가에서는 각각 그 나름대로의 특유한 음식 조리법을 발전시켰고 이를 전수(傳授)해 왔다.
손님을 대접할 때 좋은 음식, 집안 고유의 자랑할 만한 음식을 내놓는 것은 그 집 안주인의 자부심이었고 긍지였다. 크고 작은 제사나 혼인과 회갑 잔치를 치를 때 갖가지 음식 준비는 필수였다.
이와 같은 여러 일을 경영 하기 위해 반가(班家)의 여인들은 집안에서 보고 배운 음식 조리법을 기록으로 남겨 집안 대대로 전하게 했으니, 한글 음식 조리서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것이 ≪음식디미방≫ 권말에 쓰인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의 필사기이다.
이 책을 이렇게 눈이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딸자식들은 각각 베껴 가되,
이 책을 가져갈 생각일랑 절대로 내지 말며,
부디 상하지 않게 간수하여 빨리 떨어져 버리게 하지 말라.
❞늙은 나이에 어두운 눈으로 간신히 이 책을 지었다는 말과 함께 딸자식들은 이 책을 베껴서 이용하고, 원본은 상하게 하지 말고 종가에 잘 보존하라고 당부한다. 이 책을 지은 저자의 뜻이 필사기의 끝 문장에 잘 드러나 있다.
딸자식들이 이 책을 베껴 가서 그 집안의 음식 경영에 활용하는 것은 허락하였으되, 이 책의 원본은 ‘종가에 길이 보존하라’는 것이다. 원본을 종가에 길이 보존한다는 것은 이 책에 담긴 음식 조리법을 길이 전수함을 뜻한다. 음식 조리서를 저술하고 전사(轉寫)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음식 조리서의 저술과 필사에 사용된 문자는 주로 한글이었다. 한문으로 쓴 음식 조리 전문서로 ≪수운잡방≫이 있다. ≪임원경제지≫, ≪산림경제≫ 등에도 음식에 관한 내용이 있지만 음식 조리 전문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음식 조리서가 한글본이라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한글이라는 문자가 있었기에 한글 음식 조리서가 저술되었고, 또 이를 베낀 필사본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글본 음식 조리서가 많은 까닭은 무엇보다 음식 조리가 여성이 담당한 일이었고, 여성들은 한글을 기록 문자로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1) 집안의 제사를 받들고[봉제사(奉祭祀)], 손님을 대접하기[접빈객(接賓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