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 아시아 > 전라도 > 전라남도 나주 |
분류 | 발효음식 > 김치 |
자료보유 | 전라남도 나주시 남파고택 |
자료기록 | 나주 밀양 박씨 박경중 종가 |
제작년도 | 2014 |
제작기관 | 세계김치연구소 |
레시피 기초 | |
1 | 배추김치 | - |
2 | 덧된장 | |
3 | 반동치미 | |
4 | 멸치액젓 | |
5 | 깻묵장 | |
6 | 집장 | |
7 | 고추장 | |
8 | 홍갓김치 | |
강정숙 종부를 중심으로 나주 종가의 3대 종부는 모두 전라남도 출신이다. 시어머니인 故 임묘숙(1927년~2009년) 종부는 전남 화순이 친정이고, 강정숙 종부는 해남, 김선경 차종부는 광주에서 시집왔다.
故 임묘숙 종부는 18세에 독자인 故 박승근 종손과 혼인해 6형제를 낳았다. 손님 치르는 것을 즐겼던 시아버지 때문에 하루 30~40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준비해야 할 음식의 종류와 양은 많았지만 밑간 하나도 일주일 전부터 미리 해둘 만큼 성격이 꼼꼼하고 손끝이 야무졌다. 제사를 치른 후에는 친인척과 손님들에게 음식을 모두 나눠줄 만큼 인심도 넉넉했다.
故 임묘숙 종부는 시집온 후에도 직장 생활을 병행했던 며느리 강정숙 종부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았다. 종가의 내림 음식도 억지로 가르치기보다 거들며 스스로 배우도록 했다. 손자며느리인 김선경 차종부에게도 다수의 조리 비법을 가르쳐 나주 종가의 내림 음식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던 강정숙 종부는 시할아버지인 故 박준삼(1898년~1976년) 선생이 운영하던 한별고등공민학교에 교사로 재직하며 나주 밀양 박씨 종가와 인연이 닿았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강씨를 눈여겨보았던 박 선생이 적극 나서 손자인 박경중 종손과의 혼인을 추진했다. 덕분에 종가에 시집오면 동시에 사회와는 단절되었던 대부분의 종부들과 달리 강 씨는 교사로서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에서 운영하던 한별고등공민학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인 청소년들을 위해 세운 무료 교육기관이었다. 한때 주 · 야간 6개 반을 운영할 만큼 번성했지만 재학생들이 줄면서 박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만에 폐교되었다. 강정숙 종부는 배움이 국력이라 믿었던 시할아버지의 뜻을 잇고자 그 자리에 한별유치원을 세웠다.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 유아교육학도 공부했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전통 예절을 배우고 전통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동안 어깨 너머로 배웠던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내림 음식들을 재현하는 데 힘쓰고 있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지혜와 소중한 문화유산을 동시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게 강정숙 종부의 소망이다. 교육자이자 종부로서 1인 2역을 빈틈없이 해내는 현대적 종부라 하겠다.
김선경 차종부는 음악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친정에서는 부엌 근처도 가보지 않았을 만큼 음식에 관심이 없었지만 유학 생활 중 만난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작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쓴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를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누구와 있든 그저 요리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한다.”고 전한다. 그만큼 음식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남다르다는 것인데, 김 씨 또한 그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우리 음식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둘째 며느리인 김선경 차종부는 시할머니인 故 임묘숙 종부에게 생전에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같은 전라도 지역인데도 친정에서 먹던 것과는 사뭇 달랐던 시댁 음식들이 신기해 이것저것 물어본 것이 시작이었다. 김 씨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시할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종가의 소중한 내림 음식이 자칫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김선경 차종부는 젊은 며느리답게 시어머니의 손맛을 차근히 레시피로 정리하고 있다. 다른 종가의 내림 음식들도 함께 비교하며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 방법들을 공부하는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종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맛보고 조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게 김 씨의 계획이다.
♣ 종가의 공간과 조리 기구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인 남파고택은 호남 지방 상류층 가옥의 구조와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2009년 중요민속자료 제263호로 지정되었을 만큼 역사적 보존 가치가 크다. 특히 종부의 공간이라 할 수 있는 부엌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큰 돌확은 선대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는 조리 기구이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부엌은 대대로 얼마나 많은 손님을 치렀는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규모다. 지금도 전통 방식 그대로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핀다. 부뚜막 한편에는 이른 새벽 첫물을 담은 정화수를 올려 두는데, 무릇 음식 하나도 정성스러운 마음과 정갈한 몸가짐으로 대해야 한다는 종가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돌확은 확독이라고도 하는데, 흔히 남부지방에서 고추나 마늘 따위의 양념 혹은 곡식을 가는 데 사용한다. 보통 자연석을 우묵하게 파거나 버치 형태의 그릇 안쪽을 우툴두툴하게 구워 내기도 한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종택 뒤뜰에는 가운데를 우묵하게 판 직사각형 모양의 큰 돌이 자리하고 있는데, 실제 용도는 돌확과 다르지만 이곳 종가에선 ‘큰 확독’으로 불렀다고 한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큰 돌확은 대문을 해체하고 들여왔을 만큼 크기가 매우 크다. 종택을 지을 당시 터가 세다고 하여 땅의 기운을 누르기 위한 용도로 금성산에서 큰 돌을 옮겨왔다고 한다. 풍수지리적 용도로 가져오긴 했으나 여름에는 아이들의 목욕통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김장철에는 한 번에 3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씻는 데도 이용했다. 또한 장마철에 돌확 가득 비가 차면 50mL 이상의 비가 온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측우기의 역할도 가능하고, 차가운 돌의 성질을 이용해 제사 음식을 보관하기도 한다.
나주 밀양 박씨 종가의 종택 곳곳에는 간단히 밥과 반찬을 챙겨 담았던 나무 도시락과 다양한 크기의 소반, 제사에 쓸 음식과 그릇 등을 담아 두던 석작, 곡식을 빻을 때 사용하던 절구, 콩이나 팥 등을 갈 때 이용하는 맷돌, 옹기 굴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종가의 오랜 역사와 종부의 삶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