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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2. 르네상스기의 요리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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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르네상스기 사회의 변화와 요리

중세의 단순한 요리는 아랍 요리의 영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랍의 요리는 특히 조미료의 사용에 있어서 유럽 요리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아랍의 요리는 향신료74)의 풍부한 맛과 단맛, 그리고 신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맛들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14세기가 지났을 때, 유럽인들의 입맛은 이러한 맛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후추, 계피를 비롯한 향신료의 사용이 급격하게 중가했으며, 설탕과 신 과즙, 식초 등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장식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 아랍 요리의 영향으로 요리에 색을 내는 사프란(saffron)75)과 같은 재료들이 유럽의 요리에서도 사용되었다.76) 이러한 변화는 당시의 요리책을 통헤 찾아 볼 수 있다.77) 아랍의 요리에는 다양한 향신료가 사용되었다.

8세기경 아랍의 학자는 요리에서 양념으로 사용되는 재료들을 등급별로 구분했는데, 계피, 유향(mastic)78), 정향(clove)79), 같랑가(galanga)80), 넛멕(nutmeg)81), 카다몸(cardamom)82), 그리고 메이스(mace)83)와 같은 향신료들은 사향에 이어 두 번째 등급으로 분류되었다.84)

아서 아버리(Arthur J. Arberry)가 번역한 10세기경 아랍의 요리 필사본인 『바그다드 요리책(Baghdad Cookery-Book)』에는 후추와 계피, 그리고 유향과 같은 향신료 들이 첨가한 요리가 상당수 수록되었다.

그 중에서도 ‘얇게 포를 든 고기 요리’와 같은 요리법에서는 고기의 밑간과 소스 모두에 후추와 계피, 유향을 사용했다.85) 유럽에서의 향신료 사용온 고대 로마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한 경향이었다.

1세기에 아피키우스는 『요리에 관하여』 에서 후추만을 언급했지만, 8세기에 살마시우스(Salmasius)는 아피키우스의 요리책 중 일부를 발췌한 책에서 사프란, 후추, 생강, 월계수 잎, 도금양 열매, 그리고 카다몸 등을 가정에서 갖추고 었어야 할 향신료라고 기록했다.86)

이것온 아피키우스가 책을 쓴 1세기와 살마시우스가 그것을 발췌한 8세기 사이에 아랍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살마시우스가 언급한 향신료들은 후추틀 제외하고는 발췌본의 나머지 요리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살마시우스가 가정에서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향신료돌은 실제로는 각 가정에 거의 구비되지 않았거나, 구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요리보다는 의약품의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향신료가 요리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향신료외 수급이 보다 용이헤지고, 『바그다드 요리책』 처럼 그것을 사용한 요리법이 담겨있는 서적들이 유럽으로 보급된 14세기 전후에 이르러서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14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에서는 부록 1에 수록된 허브와 향신료에 구운 생선 구이를 만들 때 향신료의 풍부한 맛이 배어들도록 굽기 전 넛맥과 후추 등으로 생선을 재웠으며,87) 프랑스에서는 겨울용 스튜를 만들면서 양념으로 정향과 계피, 후추 등을 넣었다.88)

향신료는 덴마크와 영국 같은 북유럽 지역에서도 환영받았다. 덴마크에서는 정향, 넛맥, 카다몸, 후추, 그리고 계피틀 넣어 ‘군주를 위한 소스’를 만들었으며,89) 15세기에 영국에서는 닭고기 국물 요리와 구운 송아지 요리에 정향과 메이스, 후추, 그리고 계피로 양넘을 했다.

14세기 유럽 요리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단맛이었다. 단맛을 내기 위해 유럽인들은 꿀과 대추야자, 그리고 건포도 등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시기 유럽의 요리를 달게 만든 재료는 설탕이었다. 설탕 사용의 확대는 유럽에서 설탕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과 관계가 깊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7-8세기에 아랍인돌의 정복로를 따라 유럽으로 전래되었으며, 14세기에 이르러서는 사탕수수의 재배 지역이 에스파냐의 안달루시아(Andalusia)와 발렌시아(Valencia), 그리고 지중해의 시칠리아(Sicilia)로 확대되었다.

15세기에는 에스파냐가 획득한 대서양의 섬들에서도 사탕수수의 재배가 활발히 이루어졌다.91) 아랍 요리에서 설탕은 풍부하게 사용되었다. 『바그다드 요리책』에 수록된 ‘고기와 견과류를 이용한 요리’에서는 소금을 1/2디르함92)정도 사용한 반면, 설탕은 50디르함이나 사용했다.93)

이러한 아랍의 영향으로 14세기 유럽의 요리에서는 상당한 양의 설탕을 사용했다. 부록 1에서 볼 수 있듯이, 이탈리아에서는 커스터드 크림94) 타르트틀 만드는 데 설탕을 ‘층분하게’ 사용하라고 언급했다.95)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는 배 파이룹 만드는 데 1과르테론96)의 설탕을 사용했다.97)

영국에서도 설탕을 많이 사용했다. 돼지고기 튀김을 위헤 튀김옷을 만들면서 ‘많은 양’의 설탕을 사용했던 것이다.98) 15세기에도 설탕의 사용은 줄어돌지 않았다.

15세기 영국의 요리책에는 ‘많은 양의’, ‘매우 많은 양의’, 또는 ‘충분한 양의’ 설탕을 사용할 것을 지시한 요리법들이 상당수 수록되었다.99) 15세기말 이탈리아 남부와 포르투갈의 요리책에는 총 수록된 요리의 2/3에 설탕을 사용했다.100)

설탕이 어떤 음식의 맛도 망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요리에 두루 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풀라티나의 언급과,101) 설탕이 가미된 달콤한 고기 요리와 음료들은 모두 영양가가 있는 것이라는 앤드류 뷰어드(AiKfrew Boorde)의 주장은102) 이 시기의 유럽에서 설탕이 여러 맛의 구조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단맛과 함께 신맛도 이 시기에 이르러 유럽인들의 입맛으로 자리잡았다. 유럽인들은 신맛을 내기 위해 포도나 사과에서 얻은 식초를 사용하거나, 레몬이나 오렌지처럼 신맛을 내는 과일의 과즙을 이용했다.

그 중 레몬과 오렌지는 아랍인들에 의헤 10세기경 에스파냐와 시칠리아로 전래되었으며, 12세기가 지나면서 이탈리아 본토와 프랑스 남부로도 유업되었다.103) 폴라티나는 이러한 과즙이 일년 내 내 고기구이 요리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기록했다.104)

신맛을 내는 요리 역시 대부분의 요리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의 이탈리아에서는 부록 1에 수록된 닭고기 요리에서 튀김을 버무리는 소스에 신맛이 나는 포도즙을 넣었으며.105) 같은 시기 덴마크에서도 고기에 얹는 소스를 만들 때 덜 익은 포도를 이용했다.106)

또한 프랑스에서는 오렌지를 이용해서 닭고기 요리를 만들었으며, 15세기에 영국에서는 어떤 과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신 맛의 과즙을 이용해 양 가슴살 구이요리를 만들었다.10S) 맛과 함께 아랍의 요리는 요리의 외양에 있어서도 유럽 요리에 영향울 미쳤다.

아랍의 요리사들은 완성된 요리에 설탕을 뿌려 요리가 반짝이는 빛을 내게 하거나, 장미수를 뿌려서 요리에 은은한 향을 가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반짝이는 빛과 향기보다 요리사들이 요리의 외양에 대헤 신경을 쓴 부분은 바로 요리의 색깔 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아랍의 학자는 시금치와 백단향(sandalwood)109), 그리고 사프란을 색깔을 내기 위헤 사용하는 양념으로 구분했다.110) 그 중에서도 사프란은 금빛을 내는 재료로 아랍의 요리사들에 의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바그다드 요리책』 에서는 많은 요리에 사프란을 사용했다. 끓인 쌀 요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요리법 마지막에 ‘색깔을 내기 위해 사프란을 사용하라’는 지시가 첨가되었다.

특히 부록 1에도 수록된 생선튀김 요리에서는 생선을 알맞게 자른 다음, 사프란으로 색을 먼저 낸 다음에 참깨 기름에 튀기라고 지시했는데, 이렇게 사프란의 효과가 드러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랍의 요리에서는 색깔을 강조했다.111)

사프란은 에스파냐를 점령한 아랍인들에 의해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전파 되었다. 이 시기부터 사프란의 재배가 시작되었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로 재배가 확산된 것은 12세기가 지나서였다.

사프란은 영국에서도 재배되었는데, 에섹스(Essex)주가 재배의 중심지였으며, 에섹스주의 새프론 월든(Saffron Walden)은 14세기에 사프란 거래의 중심지로 성장했다.112) 사프란의 거래는 르네상스기 유럽에서 특히 활발했다.

프로방스(Provence)에서 생산된 사프란은 대부분 현지에서 소비되었고, 득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으로 에스파냐의 사프란이 이동되었다.113) 이탈리아에서도 사프란이 생산되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는 동부 지중해로부터 사프란을 수입헤야 했다.114)

유럽의 요리책에서도 많은 요리에 사프란을 색깔을 내는 재료로 이용했다. 부록 1에 수록된 14세기 이탈리아의 팬케이크에서는 밀가루 반죽에 사프란을 넣어 색을 냈다.115) 같은 시기에 덴마크에서는 우유틀 사프란으로 노렇게 물듈였다.l15)

영국에서는 비들기 스튜를 만들 때 국물을 물돌이기 위해 사프란을 사용했다.117) 15세기에도 사프란은 계속 사용되었다. 영국에서는 쌀을 폭 끓인 다옴 마지막에 사프란을 넣어 색깔을 낸 쌀 포타주(potage)118)를 만돌었다.119)

‘사프란은 다른 향신료와 별도로 구분되어야 하며, 그것의 맛과 색은 요리의 질을 한층 인상시킨다’120) 고 말한 풀라티나를 통해 사프란이 다른 향신료들보다 좀 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세의 단순한 요리돌은 아랍 요리의 영향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요리책은 그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맛과 향기, 그리고 색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요리들은 르네상스에 접어든 유럽의 요리에 새로운 전형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대 사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맛의 유입은 사희에서 가장 완강한 저항에 부딪히는 영역 가운데 하나이며, 새로운 맛이 사희에서 승인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다.120) 아랍의 맛 역시 유럽인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었다.

요리의 변화는 사희의 변화를 반영한다. 중세 말에 이르러 유럽의 사희와 사상은 급격하게 번화했으며, 중세의 금욕주의에 억눌렸던 유럽인들은 이러한 사희와 사상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맛보기 위해 아랍의 요리 재료돌과 맛, 그리고 색에 몰입했다.

그러나 15세기를 지나면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맛이자 동시에 오랫동안 잊혀졌던 맛의 구조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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