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음식문화는 상호 공통된 요소들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 처럼 역사를 통한 상호교류와 인도와 중국으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을 공유했다는 점 외에도 벼농사 중심, 과일농사, 향신료들의 재배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사한 농업 패턴과 여러 인접한 국가들에서 흔히 동일한 농작물을 재배해 왔다는 측면에서 설명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도와 중국의 음식문화 영향을 볼 때, 우리는 그것들이 역사적 접촉의 성격과 지리적 근접성 등과 관련하여 동남아에서 지역마다 균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얀마의 경우 그 음식문화는 인도적 요소가 더욱 많고, 베트남의 경우 중국적 요소가 지배적이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경우 18세기말-19세기 영국인들의 식민지 진출의 과정에서 숱한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이 이주하여 정착했고, 그 결과 말레이시아 음식에는 인도음식과 중국음식의 요소가 비교적 골고루 확인된다 (Vatcharin 1997: 7).
동남아 국가 상호간의 역사적 관계의 패턴도 음식문화의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예컨대 15세기 중엽 이후 태국의 정치적 영향하에 있었던 캄보디아는 그 후 수 세기간 태국 음식문화의 요소를 수용했다.
그러다가 17세기 이후 메콩강 델타 지역으로 베트남인들의 세력이 팽창하고, 메콩강 델타 지역과 캄보디아 동부 지방에서 베트남인과 크메르인들 사이의 접촉이 증가함에 따라 베트남의 음식문화 요소가 캄보디아에 적지 않게 들어왔다.
북부 紅河일대의 비엣(Viet)족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의 음식문화 자체는 베트남 역사의 전개에 따라 베트남 중부과 남부에 걸쳐 15세기까지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던 참(Cham)족의 음식문화와 중국 특히 廣東음식문화, 그리고 19세기 이후에는 프랑스 음식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흡수한 것이었다.
한편 라오스의 음식문화는 라오족이 타이족과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민족적 배경 외에도 수 세기간 라오스가 태국의 일방적인 정치적, 문화적 지배하에 있었다는 점에서 태국 음식문화의 요소가 강하다.
그에 비해 베트남 음식문화의 영향은, 비록 1975년-1990년대초 라오스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의 정치적 지배하에 있었으나, 미미하기 짝이 없다. 동남아 세계에서 동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필리핀의 음식문화에서도 다양한 외부적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적으로 말레이 세계인 필리핀인들의 음식은 기본적으로 말레이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수 백년간 중국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중국 특히 福建음식문화가 다각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16세기말부터 19세기말까지 300년 이상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통해 스페인식 조리법 및 음식들과 멕시코 등 중남미의 식품들이 들어왔고, 20세기에는 미국의 햄버거와 스테이크 음식문화가 수입되었다.
위에서 베트남과 필리핀의 음식문화에 대한 중국의 영향과 관련하여 간단히 언급했지만, 동남아 음식문화에 대한 중국 음식문화의 영향은 동남아 개별 국가에서 화인 방언집단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사회경제적 역할을 했느냐, 어떤 방언집단이 현재 지배적이냐, 그리고 더욱 세부적으로는 각국의 요식업과 음식행상에서 어떤 방언집단이 가장 활동적이냐에 따라 또한 서로 다르다.
이 부분은 중국인들의 동남아 이주와 관련된 매우 복잡한 중국 및 동남아에서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사정과 동남아 사회에서의 중국인들의 적응을 포함한 전반적 경제활동, 그리고 화인사회 내부의 구조 등, 이 글에서는 다루기가 힘든 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상세한 서술을 피한다 (Purcell, 1965, 1-40).
음식문화와 관련하여 앞에서는 주로 국가간의 그리고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영향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동남아 세계의 음식문화에서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은 저지대와 고지대의 음식문화 차이다.
대륙동남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그러한 차이는 남부-북부 음식 차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한편 지리적 환경의 차이에서 오는 생활 패턴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북부 음식은 거칠고 상당 부분 수렵 혹은 채집을 통해 획득된 재료로 만들어지며, 그 조리법은 외부 문명과의 접촉이 빈번한 남부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랜 기간 변화가 적다.
그에 비해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대외접촉을 통해 많은 외래문화적 요소들이 도입되었고 그에 따라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변화가 크고 빠른 남부에서는 음식이 상업성을 띠면서 더욱 세련되고 그 조리법도 시대와 문화적 접촉공간의 차이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북부-남부의 차이는 북부 지역 고산족들과 동북부 지역 이산(Isan) 및 라오스의 음식을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부 태국의 음식과 비교할 때 잘 알 수 있 다 (Vatcharin 199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