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대륙부의 중심에 위치한 태국은 오래 전부터 버마인, 크메르인, 라오인, 베트남인, 말레이인 등 동남아의 이웃국가들의 여러 민족들과 긴밀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접촉을 해왔다.
또한 태국은 동남아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대문화 형성에 있어서 인도와 중국의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인도와 중국의 영향은 힌두교, 테라바다불교, 華人宗敎(Chinese Religion) 등 종교적 분야에서 현저하지만, 태국에 이주하여 정착한 인도인들과 중국인들을 통해 소개된 인도와 중국의 상업문화, 복식문화, 주거문화, 그리고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음식문화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근대에 들어와 특히 19세기 이후 동남아 세계가 서양인들의 지배적인 영향 아래에 놓이게 됨으로써, 동남아 사회는 음식문화를 포함한 유럽의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타이인들이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건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적인 매체를 통해서건 매우 종 종 강조하듯이, 태국의 “고유한” 문화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음식문화에 관한 한, 태국의 “전통적인” 음식들에는 동남아 이웃국가들의 음식문화 요소들이나 인도, 중국, 혹은 유럽, 남미 음식문화의 영향이 확인된다.
따라서 태국 음식문화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동남아의 복합적인 음식문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동남아 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요구된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등 10개국을 포괄하고 있는 동남아는 민족적, 언어적으로 다양하며, 또한 그만큼 생활 풍습, 종교 그리고 그 역사적 경험에서도 상이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남아 문화의 공통성이나 역사적 경험의 상관성 등을 가정함으로써 문화적 모자이크와 같은 동남아를 하나의 지역단위로 간주하려는 시각이 발전되었고, 그것은 최근 아세안(ASEAN)이라는 국제적 조직체의 형성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동남아의 문화적 공통성에서 가장 중요 한 요소는 동남아 주민의 대부분이 주로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 섬들의 오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네그리토(Negrito) 계통의 원주민들을 제외하면 오스트로네시아(Austronesian), 오 스트로아시아(Austroasiatic), 중국-티베트(Sino-Tibetan), 따이-까다이(Tai-Kadai) 등 모두 남부 몽골계(Southern Mongoloid) 민족에 속한다는 점일 것이다 (조흥국, 1997: 297).
동남아는 지리적으로는 인도양과 남중국해 사이에 위치하여 오래 전부터 아랍, 페르시아 및 인도와 중국간의 문화적 징검다리 역할을 해 왔다.
프랑스인들이 만든 조어인 “인도차이나”(Indochina)는 인도와 중국 사이에 놓여 있다는 지리적 성격뿐만 아니라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온 동남아의 문화적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16세기에 동남아에 진출한 이후 동남아는 유럽인들의 동아시아 진출에 있어서 교두보가 되기도 했다. 16세기말 스페인 사람들이 필리핀을 정복한 후 마닐라를 거점으로 중국 및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17세기초 동인도회사의 본부를 현 자카르타(당시 Batavia)에 두고 아시아 무역을 경영한 것은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 및 자바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남아는 지리적으로 고온다습한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 걸쳐 있으며, 특히 몬순의 영향을 받아 우기에 많은 비가 내려 전 지역에 밀림이 발달해 있다.
동남아의 밀림은 후추, 肉荳蔲(nutmeg), 丁香(clove), 카다멈(cardamom) 등 향신료와 安息香(benzoin), 沈香(aloeswood), 檳榔(betel), 야자, 樹脂, 라크(black lac, gumlac), 蘇木(sapanwood), 白檀木(sandalwood), 노루가죽, 상아, 코뿔소뿔 등 각종 임산물을 제공했다 (Reid, 1993: 2-10).
이들은 대부분 수출품들로서, 동남아 토착정부들의 왕실무역대리인들과 아랍 및 페르시아 상인들, 그리고 중국 상인들과 유럽 상인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수 세기간 경쟁을 했다. 또한 풍부한 강우량은 저 지대에서의 벼농사를 발달시켜 곳에 따라 3-4모작까지 가능하게 했다.
쌀생산은 19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자본진출 이후 특히 메콩(Mekong)강, 짜오프라야(Chao Phraya)강, 에야워디 (Irrawaddy)강 등 대륙동남아 주요 하천 델타지역에서의 광범위한 관개사업과 경작지 개척으로 크게 팽창하여 동남아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환경을 가진 동남아의 역사와 문화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농업의 근본적 역할로서, 동남아의 각 지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민족들은 항상 농사에 유리한 하천 유역, 특히 하구의 델타 지역에 정착하여 벼농사를 중심에 둔 정치 경제적 문화를 일으켰다.
둘째는 해상무역의 중요성으로서, 해상무역에 참가할 수 있는 유리 한 조건을 갖고 있는 도서동남아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대륙동남아의 대부분 국가들도 역사의 초기부터 농업생산물과 임산물을 바탕으로 활발한 해외무역을 전개했고, 이를 통한 수입으로 정치적 힘을 유지, 확대했다.
셋째, 농업과 해외무역을 중시하고 이에 의존한 동남아 국가들은 그 정치적 중심을 필연적으로 점차 하구나 해안 가까운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북에서 남으로의 역사전개’라고 칭할 수 있는 이러한 측면은 동남아의 대륙부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조흥국, 1997: 306-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