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진화하면서 상고(上古) 시대의 짐승을 그대로 먹고 피를 마시던 원시인과 같은 생활에서 후에 삶고, 찌고, 볶고, 튀겨서 음식을 먹는 데 이르렀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던 것에서 젓가락, 나이프와 포크, 숟가락을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음식과 식기의 발전은 인류가 원시 시대 때부 터 발전 변화하여 현대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증명해준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조리 방법과 음식 기구는 조리 기술, 음식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문물과 한자를 통해 그 것의 발전 역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중국 식기의 역사는 대략 석기, 도기에서 청동기, 철기 등의 금속 용기로의 변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으며,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각종 ‘메이드 인 차이나’의 자기잔, 그릇, 접시이다.
생산력 수준이 계속 향상되면서 식기는 재료에 있어서 변화해 왔을 뿐만 아니라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거친 것에서 매끄러운 것으로, 두꺼운 것에서 얇은 것으로의 변화 과정도 거쳤다.
중국 최초의 취사도구로는 도기로 제조한 정(鼎), 역(蒚), 확(鑊), 증(甑), 언(甗) 등이 있고, 그 후로 명칭은 같으나 모양이 더욱 정교하고 형상과 구조도 더욱 커진 청동기와 철기가 잇따라 나왔는데, 이러한 취사도 구들 중 어떤 것은 용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정’은 고기를 삶거나 담는 데 사용된 것으로, 부피가 비교적 큰 편이고 대부분 원형에 발이 세 개 달려 있으며, 사각형에 발이 네 개 달린 것도 있는데 발 사이에 직접 연료를 놓고 불을 피워 가열하였다.
윗부분에는 들거나 놓을 때 편리하도록 가장자리에 각각 곧게 서 있는 귀가 달려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기능에 변화가 생겨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제기(祭器)로 사용되었다.
‘역’은 죽을 끓이는 데 사용된 것으로, 외형은 정과 비슷하나 부피가 비교적 작은 편이고 세 발의 중간이 비어 밑부분과 통하게 되어 있어서 안에 있는 음식이 더 빨리 데워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확’은 전적으로 고기를 삶는 데 사용된 것으로, 정보다 더 진화되어 둥근 몸통에 발이 없고 그 후에 나온 과(鍋)44)와 비슷하다.
‘증’은 음식을 찔 때 사용된 것으로 아가리 부분이 바깥쪽으로 벌어져 있고 귀가 달려 있으며, 바닥이 평평하고 증기를 통하게 하는 구멍이 많이 뚫려 있으며, 바닥이 없고 겅그레45)가 있어 역위 에 놓고 사용한다.
또 안에 물을 넣어 찌는 것도 있다. 증과 역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 바로 ‘언’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에는 신석기 말기에 이미 도기로 된 증이 있었고, 상대(商代, 기원전 17~11세기) 이후에는 청동기 제품이 출현하였다는 것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도 각각 쓰임새가 나뉘어져 있다. 현존하는 문물 중에는 현재 사용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반(盤)과 완(碗)외에 궤(簋), 보(簠), 두(豆), 단(簞), 배(杯) 등이 있다.
‘궤’의 모양은 큰 사발과 비슷하고, 아가리가 둥글며 몸통이 크다. 아랫부분에 둥글거나 네모진 받침대가 있으며, 윗부분의 가장자리에 귀가 두 개 혹은 네 개 달려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그릇은 초기에는 곡식을 담는 데 사용되었지만 후에는 식사를 할 때뿐만 아니라 제사를 지낼 때 제기로도 사용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먼저 증에서 밥을 퍼서 궤에 담아 먹었다. ‘보’의 용도는 궤와 비슷하고, 모양은 후에 나온 높은 발이 달린 ‘반’과 비슷하지만 대부분 뚜껑이 있다.
‘두’가 보와 다른 점은 아랫부분에 손잡이가 있다는 것인데, 도기로 된 두는 신석기 시대 말기에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상대 이후에는 나무로 된 칠기 두와 청동으로 된 두가 출현하였다. 두는 식기일 뿐만 아니라 양을 재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고대에는 4리터가 1두였음).
‘단’은 대나무나 갈대로 만들어진 밥을 담는 그릇이다. ‘배’의 경우 모양은 후에 나온 배와 별 차이가 없고 갱(羹)이나 탕을 담는데 사용되었다.
고기나 밥을 먹을 때에는 모두 비(匕)를 사용하였는데, 다른 점은 고기를 먹을 때 ‘확’에서 꺼내는 비는 약간 크고, 밥을 먹을 때 ‘증’에서 밥을 퍼는 비는 작다는 것이며, 그 용도는 후에 나온 작(勺)과 비슷하다.
중국에서 술을 담그는 역사는 매우 오래 되어 후대에 상대 시대의 청동 주기(酒器)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통해 당시의 음주 풍조가 매우 성행하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준(尊, 배가 불룩하고 아가리가 넓으며, 병의 목이 높음. 바닥에 둥근 다리가 있고 모양이 여러 가지이며, 은나라 이후 새나 짐승 모양의 준이 가장 유행하였음),
호(壺, 병의 목이 길고 아가리가 모아져 있으며, 뚜껑이 있는 것도 있음. 배 부분이 불룩하고 속이 깊으며, 둥근 받침대가 있음. 어떤 것은 손잡이가 있기도 함),
유(卣, 아가리는 타원형이고, 배 부분이 불룩하고 속이 깊으며, 둥근 받침대와 뚜껑, 손잡이가 있음),
뢰(礨, 원형과 사각형모양이 있고, 아가리의 크기가 다양함. 병의 목이 짧고 어깨부분이 네모지며, 배 부분이 불룩하고 속이 깊음. 둥근 다리나 원형의 낮은 받침대와 뚜껑이 있음),
부(缶, 도기로 만 들어진 주기) 등은 술을 담는 그릇이었고, 작(爵, 배 부분이 불룩하고 속 이 깊으며, 다리가 세 개임. 불 위에서 가열할 수 있으며 윗부분에 튀어나와 있는 홈이 있어 이 부분으로 술을 따름),
고(觚, 가장 자주 사용되었던 술잔으로 작과 함께 사용될 때가 많고 작보다는 작으며, 아가리가 나팔 모양임. 목이 길고 허리가 가늘며, 높고 둥근 모양의 다리가 있음),
치(觶, 모양은 준과 비슷하나 준보다 작으며, 뚜껑이 있는 것도 있음), 가(斝, 아가리와 배 부분이 둥글고 다리가 세 개이며, 짧은 손잡이가 있음. 술을 데 울 때 쓰임),
굉(觥, 배 부분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술이 흐르도록 되 어있으며, 짧은 손잡이가 있음. 바닥에 둥근 다리가 있고 짐승 머리 모양의 뚜껑이 있으며, 전체가 짐승 모양인 것도 있음. 작은 작(勺, 국자․주걱)이 붙어 있음), 배(杯), 잔(盞, 얕고 작은 잔)은 술을 마실 때 사용된 그릇이다.
술은 ‘뢰’처럼 커다란 술 담는 용기에 저장하여 두고, 술을 마실 때에는 ‘호’나 ‘준’에 부어서 자리 옆에 놓고 난 다음, 작(勺)을 이용하여 작(爵), 고, 치에 따라 마셨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청동 조리 도구와 식기(食器), 수기(水器), 주기(酒器)는 중국인들의 선조들이 먼 옛날 창조한 찬란한 문명이자 중국 음식 문화의 오랜 역사를 증명해 주기도 한다.
중국 고대 과학 기술 발전 수준을 나타내주는 화약, 나침반, 활판 인쇄 술 등 위대한 발명품이 나오면서 중국의 도자기 공예도 송대(宋代)에 전대 미문의 발전을 이룩하였고,
청자(青瓷), 백자(白瓷), 흑자(黑瓷)는 물론, 도자기에 그림을 넣은 자기도 크게 발전해 조형, 무늬 장식, 유약 등 여러 부분에 있어서 다양하면서 새로운 창조를 하였으며, 정교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로 된 식기와 주기는 “밥은 곱게 찧은 쌀로 지은 것이 좋다.”(食不 厭精.) 라는 중국 음식 전통과 함께 중국인들이 자랑스러워하고 자부하는 중국 음식 문화의 귀중한 재산이 되었다.
중국 음식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을 말하자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듯이 중국인들이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 것이다. 인류가 밥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 세 가지는 바로 손가락, 포크, 젓가락이다.
손가락을 사용해서 음식물을 집어먹는 나라는 아프리카, 중동, 인도네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의 일부 지역이 전형적이며,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포크를 사용해서 밥을 먹는다.
중국인들처럼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는 사람들로 는 일본, 베트남, 한국, 북한 사람들이 있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지역에서는 화교들의 영향으로 젓가락 사용이 상당히 유행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에는 젓가락의 기원에 관한 전설이 있다.
옛날 요순(堯舜) 시대에 홍수가 범람하여 수해가 발생하자 우(禹)임금은 치수(治水)를 하라는 명을 받았다. 어느 날 우임금은 솥을 걸어놓고 고기를 삶고 있었는데, 고기가 다 삶아지고 난 다음 솥이 식고 나서야 집을 수 있었다.
우임금은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나뭇가지 두개를 잘라 뜨거운 탕 속에서 고기를 집어내었다. 수하(手下)들은 그가 손을 데지 않고, 또 기름도 묻히지 않은 채 고기를 먹는 모습을 보자 앞 다투어 따라 하였는데, 이리하여 점차 젓가락의 초기 모양이 나오게 되었다.
우임금이 젓가락을 발명했다는 견해는 영웅에 대한 옛 사람들의 찬미이고, 젓가락이 생기게 된 진정한 계기는 바로 익혀서 뜨거운 음식에 손이 데이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역사 자료를 보면 3,000여 년 이전인 상대(商代)에 중국인들은 이미 젓가락을 사용하여 밥을 먹었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젓가락 실물은 바로 은허(殷墟, 하남성(河南省) 안양(安陽)에 위치 한 상대 후기의 수도 유적지로 중국 역사상 확실한 위치임이 틀림없는 최초의 도읍지임. 1899년 이 곳에서 점을 치는데 사용된 갑골에 글자가 새겨진 글자가 발견되고, 1928년부터 대규모 발굴이 시작되었음)에서 출토된 구리 젓가락 한 쌍이다.
한대(漢代, 기원전 206~기원후 220년)에 이르러 중국인들은 밥을 먹을 때 이미 보편적으로 젓가락을 사용하고 있었다. 젓가락의 위대한 발명은 아마 중국인이 채소의 뿌리, 줄기, 잎을 많이 먹는 음식 습관과 관련이 없지 않는 것 같다.
일찍이 젓가락이 발명되기 전, 고기를 먹을 때 사용하던 식기는 비(匕), 도(刀), 조(俎, 도마)였는데 도를 이용하여 고기를 썬 다음, 손으로 집어 먹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밥을 먹기 전에 먼저 손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일부 중국 요리와 간식을 먹을 때의 젓가락의 역할은 다른 것으로 대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양고기 샤브샤브, 국수, 녹두묵 등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해야 비로소 편리하고 운치가 있다. ‘나이프와 포크’에 비해 젓가락은 더욱 사용하기가 어렵다.
두 개의 가는 막대기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고, 엄지, 식지, 중지의 역할에 의지하여 들어올리고, 고르고, 집고, 섞고 모으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어, 탕과 같은 유동식 이외에 어떠한 음식이든 젓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젓가락을 사용하여 음식물을 집으면 어깨, 팔, 손목과 손가락 등 80여 개 관절과 50여 개 근육에 관련된 운동을 하여 영리해지면서 손재주도 있게 된다는 전문적인 연구를 내 놓은 적도 있다.
많은 서양 사람들은 동양 사람들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은 예술이라 칭찬하였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중국인이 탁구를 잘 치는 것이 젓가락을 사용해 밥을 먹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젓가락은 나이프와 손으로 식사하는 것에 비교해보면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땅콩 알맹이, 고기 완자, 비둘기 알과 같이 동 그랗거나 매끄러운 음식은 젓가락으로 집기 어려워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서툴면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양식을 먹을 때 오른손에는 나이프를, 왼손에는 포크를 쥐고 왼팔과 오른팔을 활 쏘듯 벌리는 것에 신경을 쓴다.
중국인들이 중국 요리를 먹을 때에도 자신들만의 규칙이 있는데, 그것은 젓가락으로 요리를 먹고, 숟가락으로는 탕을 떠먹지만 이 때 한 손만 사용해야지 양식을 먹을 때처럼 양팔을 활시위 당기듯 벌리고 두 손을 가지런히 하여서는 안 된다.
그 밖에 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때에는 습관적인 예절이 있다. 일반적으로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잡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에게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해야하는 준칙이 있은 적도 있었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젓가락을 빈 그릇 중간에 놓아야 하고, 연회석에서 잠시 식사를 멈출 때에는 젓가락을 밥그릇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아야 하며, 젓가락을 그릇 안에 세워서 걸쳐 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고대 중국인들은 음식으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제사 음식이 담긴 그릇에 젓가락을 세워서 꽂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뒤적거리거나 찔러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이 음식물을 집을 때 나이프와 교차 되서도 안 된다. 또한 젓가락으로 빈 그릇을 두드려서도 안 된다.
길이가 서로 다른 젓가락이나 젓가락 한 개로 밥을 먹어서도 안 되며, 젓가락으로 이쑤시개를 대신해 이를 쑤셔도 안 된다. 중국인들의 일상 도구로서 젓가락의 소재로 대나무, 나무를 많이 택하였으며, 금, 은, 동, 철, 옥, 상아, 무소뿔 등의 소재로 된 젓가락도 흔히 볼 수 있다.
고대 중국의 제왕들은 보통은 젓가락을 사용하였는데, 은으로 만든 용기는 독이 묻으면 검게 변하는 특징이 있어서 음식의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다고 한다.
젓가락은 중국인들의 식탁에서 가장 충실한 ‘시종(侍從)’일 뿐만 아니라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중국의 민속 문화적 특색을 갖춘 공예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재료를 엄선하고, 독특한 솜씨로 만든 ‘명품 젓가락’을 생산하고 있다.
젓가락의 독특한 예술적 가치도 국내외 많은 여행객들과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상해 민간 수집가인 남령(藍翎)씨는 예리한 안목으로 젓가락을 수집하여 중국 최초의 가정 박물관을 설립하였다.
800여 종, 1,200쌍의 이채롭고 다양한 색상의 젓가락들을 수집하여 사람들에게 감상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호텔 전용 젓가락, 관광지 기념 젓가락, 농촌에서 사용되는 염색 젓가락, 몽고의 젓가락 춤에 사용되는 소품용 젓가락, 고대인들이 무기로 사용했던 철 젓가락, 새를 기를 때 사용되는 새 젓가락 등이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화교는 908종의 젓가락을 수집하였는데, 그 중에는 중국 어느 황후가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금 젓가락 한 쌍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