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길렀던 동물은 풍토와 기후에 따라 달리 나타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동아시아에서 중요하게 여겼던 동물이 이른바 육축(六畜)이다.
육축은 소, 말, 양, 돼지, 닭, 개를 이르는데, 이들은 지금까 지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가축이다. 육축은 고대부터 관직 이름이나 설화에 많이 등장하는데, 그 까닭은 예로부터 이 동물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부여의 관직명에 마가(馬加), 우가 (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 등이 있었다든지 고구려 주몽 설화에 개, 돼지, 소, 말이 보이고 신라 박혁거세 설화에 닭이 나타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돼지는 명당자리를 고르는 영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구려가 환도성에 정착한지 얼마 되는 않은 서기 2년(유리왕 21) 3월 교(郊)에서 돼지를 잃어버리자 희생용 가축 사육을 맡았던 장생(掌牲) 설지(薛支)는 돼지를 쫓아서 국내 지역에 이르렀다가 그곳이 도읍지로 좋은 곳임을 알아보고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뢴 일이 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고구려는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겼다.42) 또 고구려 산상왕은 달아난 제수용 돼지가 맺어준 여인을 만나 후계자인 동천왕을 낳았는데,43) 이것도 돼지의 신통력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고려사』맨앞에 있는 「고려세계」에는 고려 태조 왕건 선조들의 행적이 설화 형식으로 실려 있는데, 여기에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作帝建)이 서해 용왕의 근심을 해결하고 받은 돼지가 명당 자리를 고르는 영물로 나타난다.
고사상에 돼지 머리가 오르는 것도 이와 전혀 무관한 일은 아닐 것이다. 육축에 포함된 주요 가축은 고구려 고분 무용총의 벽화에 소·말·개·닭이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조선 후기의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자주 등장하는데, 그만큼 이들이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육축 외에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운 가축으로는 오리와 거위가 있었다. 사람들이 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것은 먹기 위해서였겠지만, 점차 가축은 식용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되었다. 특히 소와 말은 전쟁과 농경 에 꼭 필요하였으며, 교통과 운송 수단으로도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또 소(송아지), 양, 돼지 등은 국가 제사의 희생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초기 국가에서부터 가축의 사육과 관리를 맡은 관청을 두고, 소와 말 등 주요 동물을 기르는 목장을 운영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서는 민간의 말 등을 징발하기도 하였다.
이런 연유로 국가에서는 줄곧 말과 소 등 주요 가축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맹자』에 이르기를 “닭, 돼지, 개를 때에 맞추어 잘 기르면 일흔이 된 노인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였듯이 가축은 일반 사람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소와 말은 아예 식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