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에는 조, 피, 수수 따위의 잡곡을 주로 재배하였지만 기원전 2000년경에는 한강 하류 지역에서 벼가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청동기 시대 유적인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유적에서는 보리, 조, 수수와 함께 탄화된 쌀이 출토되었으며, 비슷한 시기로 보이는 평양의 남경 유적과 충청남도 부여군 송국리에서도 탄화미가 출토되었다.
또한 볍씨 자국이 찍힌 청동기 시대 이후의 토기 조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됨으로써 한강 유역과 대동강 유역을 포함한 중·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벼농사가 점차 남부 지방으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2)
벼가 지구상 어디에서 처음 재배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어서 실체를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벼의 재배는 인도 동쪽 벵골 만에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거쳐 중국 남부 광둥만(廣東灣)에 이르는 지역에서 약 8000년 전을 전후한 시기에 시작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아시아에서 재배되고 있는 벼는 인도형, 일본형, 자바형으로 구분되는 데, 우리나라의 벼는 양쯔 강 북쪽의 중국과 일본 등 주로 동북아시아에서 재배되고 있는 일본형(Jponica Kato)으로, 형태상으로는 단립형(單粒形)에 속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선사 문화가 중국 화베이(華北)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벼농사 역시 화베이 지역에서 전파되었을 것이라는 북로설(北路說)이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강릉 교동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이다. 무문토기와 함께 나왔다.
천안 백석동 유적에서 출토된 무문토기의 바닥에 찍힌 볍씨 자국이다.
즉 약 8000년 전부터 시작된 양쯔강의 벼농사가 점차 화베이 지역으로 파급되었으며, 그것이 랴오둥 반도(遼東半島)를 경유하여 한반도의 서북 지역으로 들어왔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런 의견은 랴오둥 반도에서 출토된 탄화미의 절대 연대가 한반도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통해서도 뒷받침되었다.3) 최근에는 양쯔 강 유역에서 황해를 횡단하여 한반도의 서해안으로 직접 유입되었을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4)
이렇듯 벼의 전파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지만, 한반도에 전파된 이후 벼는 다른 잡곡에 비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에 점차 재배 면적이 늘어났다.
삼한 시대의 벽골제, 의림지, 공검지 등 수리 시설의 발달은 바로 벼 재배의 확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벼가 우리 민족의 주곡으로 자리 잡은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며, 그 이전에는 보리와 조 따위의 곡물이 주로 재배되었다.
벼의 전파에 대해서는 중국 양쯔 강 유역에서 시작된 벼농사가 화베이 지방을 거쳐 한반도의 서북 지역으로 들어왔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북로설) 최근에는 서해를 건너 직접 서해안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