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경실이란…?
정조 시대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는 하나의 유행이 생겨났는데, 바로 자신만의 전용 원고지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전용 원고용지는 나무판에 세로줄을 새기고, 그 판심 하단에 자신의 서재이름을 새겨 넣어 만들었다.
서유구 선생의 집안에서도 전용 원고용지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선생은 판심 하단에 ‘풍석암서옥(楓石庵書屋)’ 또는 ‘자연경실장(自然經室藏)’ 이라 새긴 전용 원고용지를 사용했다.
그 중에서도 ‘자연경실장’이라 새긴 전용 원고지에 필사된 책들이 국내외에 아주 많이 남아 있어 학문과 저술에 관한 그의 열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자연경실은 풍석 선생이 노년에 번계(樊溪)에서 살았을 때 사용했던 서재의 이름으로 그의 산문집인 《금화지비집(金華知非集)》에 수록된 <자연경실기(自然經室記)>에 그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를 하였다.
-자연경실기-
번계(樊溪) 왼쪽에 어떤 집이 있는데 담장에 숨었다. 교창(交牕)을 내고 벽을 이중으로 해 그윽한 것이 마치 감실(龕室) 같다. 이곳은 풍석자(楓錫子)가 기거하며 독서하는 곳이다.
집 크기가 몇 칸 되지 않는데, 두루마리와 책 상자가 그 절반을 차지한다. 정 가운데에 작은 평상을 놓았고, 뒤에는 문목(文木) 병풍을 두었다. 병풍의 높이는 3척 남짓인데, 주름진 봉우리가 융기했고 그 아래에 얕은 못이 고여 있다.
거기에 원앙이 두 마리 있는데, 하나는 물에 떠있고 하나는 물결을 스치니, 그 부리, 털 뿔, 깃털, 발톱을 하나하나 가리킬 수 있다. 평상 모퉁이에 밀랍 조화(造花)를 꽂은 꽃병을 두 개 두었고, 그밖에 벼루, 궤안, 정이(鼎彛) 등속을 대략 갖추었다.
그런대로 서권(書卷)의 운치를 도울 뿐, 구비되기를 구하지는 않았으니, 그렇다면 벼루, 궤안, 정이 또한 서권과 같아, 이에 지리지(地理志)의 이른바 “소실산(小室山)에 자연의 경서가 있다”라는 말을 취하여 ‘자연경실(自然經室)’이라고 문미(門楣)에 써 붙였다.
풍석문화재단은 풍석 서유구 선생의 서재의 이름을 딴 ‘자연경실’이라는 출판브랜드로 풍석 선생과 선생의 관련 저서를 출간하여 선생을 널리 알리는데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