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실용백과사전인 된 『임원경제지』는 지금 얼마나 유용한 책인가.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 여기서는 이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임원경제지』같은 유서류(백과사전류) 고문 헌이 저술되는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실용성의 추구다. 유서류가 등장한 초기부터 유서류 문헌은 비슷하거나 같은 주제를 묶어 시문이나 전고(典故) 등을 한꺼번에 열람 할 수 있도록 저술되었다.
글을 쓸 때 특히 특정 분야의 주제어나 주제를 모아놓은 모음집이 있으면 글을 전개하는 데 글쓴이의 주장이나 감회 등을 훨씬 풍성하게 풀어 낼 수 있다.
이런 모음집으로는 권문해(權文海, 1534~1591)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입이나 김육(金堉, 1580~1658)의 『유원총보(類苑叢寶)』입 같은 유서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유서류 고문헌은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지식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따라서 다른 분야의 고문헌과 마찬가지로 인문학 토대 확충, 문화 콘텐츠 확보라는 고전 번역 본연의 목적에 부합한다.
이와 더불어 유서류 고문헌은 공구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른 고문헌을 이해하기 위한 공구서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할 때 공구서 번역물의 확대는 학문적 토대를 쌓는 일과 다름없다.
공구서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학계에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선의 공구서를 하나하나 한글로 풀이해낸다면 전통사회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 유서류 문헌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도 다룬다. 예를 들어 농사법, 요리법, 건축법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지금의 ‘실용서’로 분류되는 분야와 흡사한 측면이 있다. 이 실용서에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지식이나 정보가 들어 있기도 하고 문화나 예술, 취미처럼 생명 유지가 보장된 뒤에나 가능한 여가의 지식정보도 있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늘어 나는 분야가 바로 이곳인데, 현대인들이 여가를 활용하여 직장에서는 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삶을 모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레저’나 ‘오락’ 으로 표현되는 현대적 취미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가지만, 과거부터 조선에서 이어져 온 문화 활동 등에도 관심을 갖는 경향이 늘고 있다.
다음으로 서유구는 『임원경제지』를 편찬하면서 조선(朝鮮)의 당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개혁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를 위해 중국(中國)의 제도, 사례, 기술 등을 상세하게 끌어 모은 것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사는 땅이 각기 다르고 관습과 풍속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시행하는 일이나 필요한 물건은 모두 과거와 현재의 격차가 있고 나라 안과 나라 밖의 구분이 있게 된다. 그러니 중국에서 필요한 것을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더라도 어찌 장애가 없겠는가? 이 책은 오로지 우리나라를 위해 나온 것이다. 그래서 자료를 모을 때 당장 적용 가능한 방법만을 가려 뽑았으며 그러하지 않은 것은 취하지 않았다. 또 좋은 제도가 있어서 지금 살펴보고 행할 만한 것인데도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도 모두 상세히 적어 놓았으니 뒤에 오는 사람들이 이들을 본받아 행하기 바란다.
위 인용문에 보이는 서유구의 입장은 중국과 조선의 농업현실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것을 참작하려는 것이었다.
조선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여 이를 보충할 중국의 사정을 고려하는 태도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중국의 농업기술을 도입하는 경우에도 그 기준은 오직 조선의 농업현실에 적용 가능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