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연희동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
나카가와 히데코 셰프 요리교실
❞“음식은 즐거움을 줍니다. 사람을 이어주고 관계를 만들죠.” 나카가와 히데코 씨의 말이다.
그는 중천수자(中川秀子)라는 이름의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으로 서울 마포구 연희동 자택에서 ‘구르메 레브쿠헨(Gourmet Lebkuchen)’이라는 요리교실을 운영해오고 있다.
독일어로 ‘구르메’는 미식가를, ‘레브쿠헨’은 진저브레드를 뜻한다. 진저브레드는 그가 처음으로 ‘세상에 다양한 맛과 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음식이다.
그의 요리교실에서는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스페인 등 지중해 요리, 일본 요리 등을 5개월간 배운다. 이 수업은 늘 인기가 많고 대기자가 4백명을 넘기도 한다. 학생, 소설가, 기자, 디자이너, 전직 외교관 등 수강생들의 나이와 직업도 다양하다.
시종일관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히데코씨를 만나 일본 출신의 주부로 한국에서 요리교실을 운영하게 된 배경, 음식과 요리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Q. 2008년부터 요리교실을 운영하셨다. 요리교실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
취미로 배운 베트남 요리교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우연히 비롯됐다. 내가 파에야(스페인식 해물볶음밥, paella)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같이 모여 집에서 해보자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 모임이 주축이 되어 주변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 다양했다.
이곳에 온 많은 이들이 요리를 배우면서 만남과 이야기를 나누며 재미있어했고 모임을 즐거워했다. 처음에 4~6명 정도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그룹에서 입소문이 나서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들도 오기 시작하며 늘어났다.
Q.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요리교실을 다녀갔고 대기자도 늘 넘친다. 요리교실의 인기 비결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나?
잘 모르겠다. 처음에는 단순히 ‘우리집에서 하니까 임대비는 안 들겠지’, ‘안되면 안 하면 된다’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은 10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
소설가 은희경씨 등도 몇 년 전에 왔었고 다시 볼 예정이다. 요리교실은 사실 많다. 다른 곳과 달리 여기는 재료 다듬기부터 설거지, 뒷정리까지 시킨다.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 한데, 사람들이 주방에서 설거지하며 얘기하고 친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도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가 아닐까? 요리는 결국 수단일 뿐이고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다. 남자들도 저녁반에 종종 오는데 매우 적극적이고 대화를 즐긴다.
반에 한두 명씩은 남자 수강생들이 있다. 전직 외교관인 70대 남자분도 오셨는데 이탈리아에서 직접 산 앞치마와 비닐장갑도 갖춰 오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요리교실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재미있다.
Q. ‘飮食’은 최고의 휴식이자 소통, 그리고 행복'이란 지론을 얻기 까지 적잖은 시행착오도 겪었을 텐데.
예전에 직접 요리를 배우러 다닐 때는 매주 가는 것이 즐겁지 않을 때도 간혹 있었다. 지금 요리교실에서는 한 달에 한번 모여 후식 포함 4~5가지 메뉴를 배우고 간다. 다음 모임까지 4주간 집에서 복습해볼 수 있다.
요리는 사실 지금도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음식은 즐거움을 준다. 가르치는 일은 늘 해왔다. 대학 졸업 후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고 준비만 하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리는 끝나면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힘든 것은 요리가 노동이 될 때다. 장보기, 재료 손질 등. 그럼에도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재미있다. 요리가 천직이 아닐까.
Q. 한국에 귀화했다. 그럼에도 이방인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어떨 때 그런 감정을 갖게 되나.
일상생활에서는 잘 못 느끼지만 한국인들의 단결, 단합을 볼 때 그런 감정이 들었다. 정치, 사회적인 이슈로 함께 뭉치는 모습을 보면 객관적으로 현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외에는 오히려 일본에 갔을 때 더 이상한 느낌을 갖는다. 너무 오랫동안 일본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사람과 대화할 때, 가게 종업원과 말할 때, 문득 스스로 ‘내가 잊어버리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Q. 요리교실을 운영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인가
요리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다. 예를 들어 한 수강생이 여기서 배운 요리를 집에서 만들었는데 그 요리를 계기로 사이가 안 좋았던 시아버지와 화해를 하게 되었다던가 할 때.
요리가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줄 때 기분이 좋다. 또, 수강생 스스로 요리교실을 다니며 변화를 보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Q. 요리와 전혀 상관없는 언어학을 전공하셨다. 요리에 뒤늦게 눈을 돌린 이유는?
아버지가 프랑스 요리사셨지만 어릴 때부터 늘 요리는 힘들다고 생각했고 요리를 업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다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해외여행을 가거나 지방을 가면 처음 접하는 요리에 늘 관심이 갔고 집에 가서 꼭 다시 해봤다.
맛있다고 생각되면 그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고 호기심이 커졌다.
집에서 만들어 가족에게 먹이다 사람을 초대해서 함께 먹던 것이 요리교실로 발전됐다. 요리 속에서 재미와 즐거움도 얻었고 편한 마음으로 했다. 요리를 가르치다 보니 일본어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못 느끼게 됐다.
Q. 가장 먼저 만들어본 한국요리가 무엇인가? 또, 가장 즐겨 만들어 먹는 한국요리는 무엇인가? 반대로 가장 만들기 어려웠거나 먹기 힘들었던 한식 메뉴가 있다면?
가장 처음 해본 한국음식은 바지락 칼국수다. 큰 애를 임신했을 때 바지락 칼국수를 무척 맛있게 먹었다. 그때 기억을 더듬어 집에서 만들어봤다.
시아버지님께 해드렸더니 맛있게 드셨다고 나중에 어머님과 남편을 통해 들었다. 분가한 뒤에는 더 다양하게 시도해봤다.
이자카야(居酒屋)처럼 술 위주로 함께 먹는 음식을 즐겨 만든다. 자연산 굴에 보쌈에 넣는 무생채도 즐겨 만드는 데 사케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잘 맞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없는, 한국적인 음식이 좋다. 갈비찜처럼 일본에도 유사한 메뉴가 있는 요리는 안하게 된다.
Q. 당신이 보기에 가장 한국사람을 표현하기에 적합하거나, 가장 대표적인 한국음식 메뉴가 있는가?
왠지 비빔밥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은데, 나는 좀 의문이다. 불고기도 아닌 것 같다. 진짜 한국적인 음식은 삼겹살이라고 생각한다.
돼지고기는 다른 나라에서도 다 먹지만 불판에 구워 쌈에 싸먹는 음식은 정말 한국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요리가 생각 날 때면 늘 삼겹살이 먹고 싶어진다. 또, 김치보다는 매콤한 양념의 굴생채가 더 좋다. 서해안에서 나온 자연산 굴과 무로 만든 생채는 특히 좋다.
Q. 많은 이들이 ‘집밥’, ‘손맛’ 등을 강조한다. ‘내림음식’, ‘손맛’에 대한 생각을 알려달라.
내림음식에 관심이 많다. 요리교실을 운영하면서 음식에 대한 생각이 깊고 적극적인 젊은 수강생을 많이 만나는데 이런 사람들은 대개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들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
한국 엄마들 가운데 딸에게 자신의 요리 비법을 알려주지 않으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더 적극적으로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며느리들도 시어머니께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해야 한다. 이것이 내림음식이다.
Q. 최근 TV에서 요리경연이나 먹방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요리를 그렇게 긴장 속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누구를, 무엇을 위해 요리를 하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 하는 요리와 음식이 과연 행복을 주는가. 방송을 처음에 좀 보다 결국 채널을 돌리게 된다.
Q. 한국에서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어려웠던 적은 없는가? 설날 같은 명절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을 때 ‘시부모님께는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어머님의 행동이 나와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마음에 없는 말은 하지 않는데 이로 인해 어른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가할 때에서야 알게 됐다. 어머님께서 많이 이해해주셨다. 명절 때는 안 어렵다. 음식은 내가 다 한다. 어머님도 ‘너가 알아서 해라’라고 할 정도다.
큰 아들 첫돌 무렵 어머님 몰래 궁중음식연구원에 요리를 배우러 다셨다. 거기서 배운 궁중요리를 집에서 해드렸더니 아버님께서 좋아하셨다. 그러면서 일본인 며느리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신 것 같다.
Q. 세계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먹거리, 다이어트에 관한 내용이 TV나 각종 SNS매체에 넘치고 있다. 잘 먹고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얼마 전부터 한 대학병원과 함께 유방암환자를 위한 건강식 조리법을 소개해오고 있다. 암 전문의가 선정한 식재료로 암환자들에게 좋은 메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건강식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다. 신선한 제철 음식에 양념을 적게 해서 삶거나 쪄서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요란하게 지지고 볶을 필요도 없다. 유기농 재료를 너무 따질 필요도 없다. 뭐가 묻어도 잘 씻어서 쓰면 된다. 쉽고 간단해도 맛있게 만들 수 있다.
Q.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요리교실의 향후 계획도 알려달라.
그동안 바빠서 실행하지 못했지만 내림음식에 대한 프로젝트를 생각 중이다. 한국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내림음식에 대해 조사해 이야기를 엮어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수강생들 몇몇을 동원해서 경상도, 전라도 등 수소문해오고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단순히 요리비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친해져야 하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아는 기자를 통해 소개 받은 경주 출신의 전혜선 선생님에게 자문을 받으며 진행할 생각이다. 한식 전문가도 종갓집 맏며느리도 아니지만 이분이 만든 음식은 레시피가 없어도 늘 같은 맛이 나온다.
같은 떡국이라도 이분이 만드는 전복떡국이나 본인 만의 떡볶이 요리법, 반찬 등에 관심 있다. 김치 같은 어렵고 거창한 음식일 필요는 없다. 이런 분들이 각 지역마다 있을 텐데, 찾아 다니며 요리와 음식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