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총괄 셰프 프레데릭 에리에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 미쉐린 2스타를 안겨준 프레데릭 에리에(Frédéric Eyrier) 총괄 셰프. 세계적인 명성의 피에르 가니에르의 수제자인 그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5km 떨어진 로뇨나스라는 작은 도시 출신으로 2012년 6월부터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주방을 지휘해왔다.
피에르 가니에르와의 협업, 그가 애용하는 한국 식재료, 피에르 가니에르를 포함하여 버나드 루아조, 알랭 상드랑 등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얻은 배움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Q. 미쉐린 2 스타를 받은데 대한 소감부터 부탁드립니다.
영광이고 즐겁습니다. 미쉐린 스타가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한국인들에게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열심히 달려온 지난 8년간의 땀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은 직원 유니폼, 테이블 리넨, 커틀러리, 기물, 인테리어 등 모든 부분에서 피에르 가니에르 파리와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저의 전임자들이 레스토랑의 기반을 잘 닦아 놓아서 편하게 적응할 수 있었어요.
8년 전, 피에르 가니에르 스타일의 프렌치 파인 다이닝을 한국에 들여오고자 하는 일념으로 파리를 찾은 롯데 호텔도 인정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통 프렌치 파인 다이닝 자체가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이래저래 저희 레스토랑이 인정을 받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Q. 피에르 가니에르와 함께 일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피에르 가니에르 생테티엔 점이 문을 닫고 현재의 위치인 파리의 Rue Balzac 6번지로 이전 오픈했었을 때부터 함께 했어요. 1996년부터 함께 일해왔네요.
Q. 세계적인 명성의 피에르 가니에르와 오랜 시간 함께 일해왔는데 어떤 분인가요?
가니에르 선생님은 괴짜에요. 진정한 예술가죠. 그와 함께 일하는 이상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불가능이란 없다”는 신념이에요. 그를 만나기 전까지 저는 정통 프렌치 셰프들과 일했었어요.
그들의 세계에는 암묵적인 규칙이란 게 존재하고, 그 규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들이죠.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의 세계에서는 그 규칙이 깨지게 되어있어요. 그 점을 이해해야만 그와 함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프렌치 레스토랑 주방에서는 늘 페이스트리 반죽을 준비하죠. 겹겹이 층이 쌓인 퍼프 페이스트리, 과자처럼 부서지는 숏 크러스트 페이스트리 등 다양한 종류의 반죽이 있어요.
숏 크러스트 페이스트리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가 밀가루, 버터, 달걀노른자, 소금과 설탕이라는 사실은 요리사라면 다 알고 있는 상식이에요. 어느 날 커피를 마시던 가니에르 선생님이 스태프에게 물어봤어요. “파트 사블레를 만들 때 달걀을 쓰지?”
“네, 그렇습니다. 생 달걀노른자를 쓰죠.” 그랬더니 그가 답하더군요. “다음에는 삶은 달걀노른자를 이용해봐.” 선생님의 제안대로 만들어본 타르트 쉘은 제가 그때까지 먹어본 중 최고였습니다. 익은 달걀노른자는 반죽의 물기를 최소화하여 타르트 쉘이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파삭파삭합니다.
Q. 피에르 가니에르의 창의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가 일하는 스타일은 어떤가요?
동료와 혼연일체로 이룬 파워, 손님의 격려는 가속도
요리를 하다가도 지치고 두렵고 무서울 때, 동료들을 떠올리면 든든합니다. 한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여정이 즐겁거든요. 박성배 셰프는 든든한 지원군이죠.
두 사람이 다른 분야에 있다가 온지음에서 만났어요. 저는 교육계에 오래 있었다면 박셰프님은 현장에 오래 계셨어요. 두 사람의 손발이 참 잘 맞아요. 저는 정서적인 디테일을 챙기고 박셰프님은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역할을 합니다.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기에 닮아가는 것 같아요.
Q. 피에르 가니에르의 창의력은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가 일하는 스타일은 어떤가요?
그는 철저히 자신의 본능을 따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제가 또 다른 예를 드리죠. 월요일 점심시간이고 저는 선생님과 함께 피자와 샐러드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나흘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크리스마스 메뉴에는 어떤 요리를 넣으면 좋을지 물어봅니다. 그가 저를 쳐다보면서 답을 하죠.
“며칠 전에 먹었던 피자와 샐러드 기억 나나?” “네, 선생님.” “그 피자 말이야. 다음번에는 다른 접시에 서빙해봐. 샐로드도 다른 기물에 담아보고. 샐러드를 피자 위에 얹어도 되겠구먼. 크리스마스 메뉴에는 작은 바닷가재 요리를 넣자고.” 그는 요리에 대한 타고난 본능을 갖고 있어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하죠. 피자와 샐러드는 제가 예를 들기 위해 만들어낸 얘기지만 저였다면 이미 잊어버렸을 법한 식사에 대해 그는 나흘간을 고민합니다. 그게 바로 피에르 가니에르에요. 거기에 최고의 품질, 진정성, 진실성, 우아함까지 더해져 최고의 요리가 탄생하는 거죠.
Q.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의 총괄 셰프로서 그와 어떻게 협업하나요?
가니에르 선생님은 일 년에 두세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하세요. 그가 여기 있지 않을 때에는 스카이프로 매주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통화할 때도 있어요.
저희 레스토랑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반영한 “에스프리(Esprit)” 메뉴를 두 달 혹은 석 달에 한 번씩 바꾸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프랑스산 송로버섯 요리가 메뉴에 추가될 것입니다. 메뉴를 바꿀 때마다 저는 어떤 제철 식재료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메뉴 구성을 해요.
전채 요리 두 가지, 생선 요리 두 종류, 고기 요리 두 종류, 푸아그라 요리 한 가지 등 메뉴를 정리해서 선생님께 보내드립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메뉴를 검토한 후에 수정이나 보완할 부분들을 저에게 알려주시고 그걸 바탕으로 제가 메뉴를 수정해서 보내드리면 최종 승인을 해주세요.
Q.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식재료의 대부분이 한국산이라고 들었어요.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일부 제한적인 식재료 때문에 고민을 했었어요. 예를 들어 프랑스에는 감자 품종만300 가지가 넘는데 한국은 흰 감자가 대부분이고 품종은 서너 개뿐이죠. 딸기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부족한 식재료에 연연하지 않아요. 있는 식자재로도 충분히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재료가 좀 더 다양하고 고급 식자재를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어진 걸로 만족합니다.
Q. 특별히 애용하는 한국 식재료가 있나요?
몇 가지 있어요. 국산 재료는 아니지만 알래스카 킹 크랩 같은 경우 프랑스에서는 냉동 제품만 구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살아있거나 신선한 게를 공수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멍게와 키조개도 좋아해요.
한국인들은 키조개를 구워 먹던데, 키조개는 자칫 잘못 익히면 질겨질 수 있어서 저는 날 키조개로 카르파치오를 만들어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국산 식재료는 태안산 오솔레 굴이에요. 프랑스산 굴보다 더 훌륭하죠. 최고예요. 하지만 공수하기가 쉽지 않고 값도 비싸죠.
제주산 옥돔은 유럽에서 흔히 먹는 노랑촉수라는 생선과 맛이 상당히 비슷해서 자주 이용하는 편입니다. 제주 특산품인 한라봉과 감귤도 좋아합니다.
쌀 얘기가 빠질 수 없는데,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저는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쌀 품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어요. 끈기가 많고 기름져서 제 입맛에는 부담스러웠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쌀 품종 보다 이천 쌀을 선호합니다.
Q.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5년이 지나니까 익숙해지더라고요. (웃음) 쌀의 질감이 좋아요. 리소토를 만들기에 좋은 쌀이죠. 리소토 쌀이랑은 다르지만 맛있는 리소토를 만들 수 있어요. 이천 쌀로 최고의 리소토를 만들 자신이 있어요. 아르보리오 쌀이나 카르나롤리 쌀로 만든 정통 이탤리언 리소토보다 더 맛있을 수도 있어요. (웃음)
Q. 한국에 온 뒤로 새로 발견한 식재료가 있나요?
고추장이오. 한국에 오기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프렌치 요리에는 사용할 수가 없어요. 맛이 자극적이어서 실험을 할 때마다 실패해요. 인삼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접해봤었는데 끈적한 잼 같은 진액 형태는 본 적이 없었어요.
피에르 가니에르에서는 인삼 진액을 이용하여 인삼 수플레 디저트를 만들어요. 오미자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식재료인데 활용도가 굉장히 높아요. 칵테일을 만들 때 캄파리 리큐어 특유의 쌉쌀한 맛을 오미자로 대체하기도 하고, 여름에는 킹 크랩에 시원한 딸기 오미자 그라니테를 곁들어냅니다.
포도즙, 히비스커스, 오미자 인퓨전 젤리를 곁들인 푸아그라 요리도 있어요. 가니에르 선생님께서도 오미자를 무척 좋아하셔서 건 오미자 5킬로씩을 매년 보내드리고 있어요.
흑 마늘도 애용하는 국산 식재료에요. 프랑스에서도 흑 마늘을 구할 수 있긴 하지만, 비싸고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요리에 흑 마늘을 이용하는 레스토랑은 손꼽을 정도에요. 저는 흑 마늘로 아뮤즈 부슈를 만드는데 흑 마늘, 다크초콜릿, 푸아그라 가나슈를 곁들인 렌틸콩과 한우 요리에요. 아주 재미있는 조합이죠.
Q. 당신의 커리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멘토는 누구인가요?
제 고향 로뇨나스의 “오베르주 로뇨내즈”라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절 저의 스승이었던 죠세프 가페라는 분이 생각나네요. 그분은 저에게 셰프의 마음가짐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근면함, 절제력, 진실함, 열정, 전문성 – 이 모든 것을 갖추어야 셰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어요.
셰프가 된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게 아니에요. 셰프가 된다는 것은 글로벌한 시각을 갖고 글로벌하게 산다는 거예요. 일 할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못한다면 훌륭한 셰프가 될 수 없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베르나르 루아조 셰프는 조직 내의 소통과 조직 관리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팀과의 소통, 손님들과의 소통, 그리고 언론과의 소통에 대해 많이 배웠죠. 그분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12년의 경력을 쌓은 상태였고 업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웠었죠.
조리 실력도 꽤 좋았어요. 하지만, 소통과 조직 관리 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었어요. 루아조 셰프한테 바로 그런 부분을 배웠죠. 그가 조직의 원활한 소통과 관리를 위해 어떻게 하는지 열심히 보고 배웠어요.
주방팀은 단순한 동료 지간이 아니에요. 가족이에요. 제가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일한 지도 5년이 지났는데 레스토랑 스태프의 85%가 스타팅 멤버에요. 그들은 저에게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저는 그들을 지켜주고 그들은 저를 위해 희생하죠.
마지막으로 피에르 가니에르 선생님을 빼놓을 수 없어요. 그분은 저에게 요리의 예술성에 대해 가르쳐주셨어요. 첫 2년 동안은 힘들었어요. 제가 너무 존경하는 분이라 겁을 먹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고 그와 함께 일하는 동등한 파트너 관계에요. 이상적인 협업 관계라고 할 수 있죠.
Q.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 처음 오시는 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무런 편견 없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오셔서 드시고 싶은 음식을 고르시고, 마시고 싶은 음료를 선택하시고 마음껏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거나 이것저것에 대해 너무 분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찾는 분들 중 일부는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세요.
이건 한국뿐만이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예요.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행동하시는 분들을 보곤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저 같은 경우 레스토랑에 가면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맛있게 먹고 일어나요. 그게 다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