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양조장

♣ 리뷰

시인과 술은 마치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인 사이와 같다. 참 오랜 세월을 두고 역사 이래 많은 시인들이 술을 자신의 고독과 열정을 달래는 친구로 가까이 여기며 살아왔고, 지금까지도 시인들의 삶속에는 여전히 알콜 냄새가 난다.

그들에게 술처럼 애증이 섞인 다른 대상이 누구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시인이 강원도 정선에서 수제맥주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니,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열 일 제치고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 하여, 변덕스러운 봄 날씨가 사람의 마음을 바람에 맡겨 보라는 듯 유혹 하던 날, 시인이 궁금한 것인지 맥주 맛이 궁금해서인지 알 수 없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시인이 하는 맥줏집은 대충 어떠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던 나는 크고 대단한 양조 시설과 잘 갖추어진 시스템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정선군의 지원을 받아 4년 전 정선군 신동읍에서 수제맥주 사업을 시작 했다고 하는데, 그 규모가 소규모 시설이 아니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은 오전 10시~오후 6시, 토요일은 오전 12시~오후 6시에 1인 1만원으로 양조장 견학과 맥주 제조 공정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이 지역이 사라져간 폐광 지역이라는 흔적을 알리고 싶은 이유에서인지, 체험장 휴게실 벽에는 ‘폐광촌에서 맥주를 캐다’라는 글귀를 크게 써 놓고 있었다.(시인이 시어를 캐듯 맥아에서 술을 캔다는 의미라는 사장님의 설명이 있었다. 역시 시인은!)

이곳 수제맥주의 메뉴로는 ‘아리랑 IPA, 동강 에일, 곤드레 필스너, 윤 바이젠, 마인 스타우트’가 있다. 이 맥주들은 320ml 병에 담아서 직접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만 팔고 있는데, 가격이 수제맥주 치고는 저렴한 3천원이다.

이 중 ‘곤드레 필스너’는 곤드레의 어린잎을 동결건조한 후에 로스팅을 해서 만든 것으로, 바람에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는 것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묘한 여운이 느껴졌다.

‘윤 바이젠’은 홉과 효모의 풍미와 부드러운 신맛이 강조된 독일식 밀맥주의 맛이 났고, 영국식 흑맥주 ‘마인스타우트’는 오랜 전통의 ‘기네스’보다 맛이 훨씬 부드러웠고 맥아의 풍미가 살아 있었다. 사장님은 시집을 2권이나 출간한 시인이기도 하다.

사업이 단순히 경제 논리에 매몰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시를 쓰며, 역사 공부에도 사업만큼 공을 들인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양조 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전액 학비를 지원해 모두 ‘브루 마스터’라는 자부심을 갖고 훌륭한 수제맥주 맛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그런 이유가 삶의 여유로 오는 걸까? 직원들은 직장 밴드를 만들어 퇴근 후의 시간을 또 다른 즐거움으로 채우며 살고 있다. 역시 시인 사장님은 사람의 삶도 잘 빚은 에일 맥주 처럼 취하며 사는 방법을 아는사람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체험장 입구에 걸려 있던 사장님의 시 몇 구절을 옮겨 놓는다.

처음엔 이 노래 / 눈멀고 귀먹은 사람처럼 / 입 닥치고 조용히 살자고 / 굳게 결심한 사람들이 불렀다 / 세월이 지나 이 노래 / 산 넘고 물 건너 인구에 회자 되니 / 눈을 떠도 보이지 않고 /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 답답한 세상 원망하며 불렀다

(아리랑) 시의 일부이다. 좋은 시인과 좋은 술은 얼마나 닮아 있으며 또 이 둘은 우리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 산 벚꽃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기를… 시심(詩心)이 감은 눈을 살며시 뜨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오시는 길

‘아리랑 브루어리’는 영월, 정선, 태백이 모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정선이지만 영월을 통해 태백으로 향하는 끝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의 시.군을 넘나들며 다양한 관광지를 탐방할 수 있다. 특히 태백으로 향해 정암사를 지나 만항재는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역으로 야생화 및 가을 풍광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