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화려했던 우리 술의 전성기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쇠퇴기로 전환
○ 1916년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가정에서 제조되던 가양주 등의 우리 술이 불법으로 간주되어 단속 대상으로 전락
○ 세수 확보를 위해 우리 술을 탁주, 약주, 소주, 일본청주로 단순화하고 주막문화를 폐지
○ 양조장 통폐합을 통한 대형화로 안정적인 주세 징수체계의 구축과 술의 자가 제조를 금지
* 자가 제조 면허자(명) : 37만(’16) → 13만(’26) → 265(’29) → 0(’34)
□ 한국전쟁 이후, 식량과 원료 농산물의 부족으로 주류 생산이 제한되고, 세수 확보에 유리한 일제의 주세행정을 답습
○ 1965년 양곡관리법으로 술 제조에 쌀 사용을 금지하고 안동소주 등 증류식 소주의 제조를 금지
- 막걸리 제조원료로 밀가루 등 수입원료가 사용되었으며, 희석식 소주가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여 우리 술의 품질이 저하
○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대기업을 중심으로 맥주와 희석식 소주의 생산량이 급증
□ 1987년 맥주의 소비량이 사상 최초로 막걸리 소비량을 넘어서고,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양주 소비가 급증
○ 부담 없이 어디서나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로 맥주가 대중화
○ 경제호황으로 양주소비가 늘면서 폭탄주 등 왜곡된 형태의 술 문화가 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