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옛날 춥고 황량한 북방으로부터 이 땅을 찾아 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 새로운 땅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한 곳이었기에 부지런히 움직이면 풍부한 먹거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윽고 그들은 하얗고 아름다운 곡식을 알게 되었다. 이제 모든 것이 준비된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쌀과 밀로 만드는 누룩, 그리고 이 땅의 정갈한 물로 신에게 바친 신비한 액체를 만들기로 하였으며 그것을 그들은 술이라고 불렀다.
1. 마음 가다듬기
옛 사람들은 어떻게 술을 빚었을까? 사람들은 우선 술을 빚을 때 몸과 마음과 그릇과 물을 정갈히 하고 신께 제사를 드렸다. 그만큼 술을 빚는 마음가짐을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마음을 겸허하고 간절히 가지면 술을 빚는 것도 청결히 하게 되어 아마 잡균의 오염도 없었을 것이다. 자연을 두려워하고 아낄 줄 알면 자연도 인간에게 보답하는 법이며, 우리 조상들은 바로 그렇게 하였다.
2. 누룩딛기
우리 술빚기에서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누룩을 잘 만드는 것이다. 누룩이란 밀로 메주같이 덩어리지게 만들어 곰팡이와 효모를 잘 번식시키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밀을 껍질째 타개어 물로 되게 반죽을 하고, 이것을 누룩틀에 담고, 발뒤꿈치로 꼭꼭 밟아 디딘 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곰팡이씨와 효모씨를 앉혀 띄운다. 잘 디딘 누룩은 곰팡이가 속속들이 고루 피고 향긋한 냄새가 나야 한다.
밀을 껍질째 덩어리지어 뛰운 것을 막누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좋은 술을 담그기 위해 막누룩을 사용한다.
반면 일본술은 입국이라고 하는 쌀누룩을 쓰는데 요즘 청주라고 나오는 술들은 이런 쌀누룩을 쓰는 일본식 청주이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아직도 일본식 제조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3. 전통술 원료의 처리
우리 술의 주된 원료는 사람의 정성스런 손길로 수확한 곡물, 그 중에서도 쌀이었다.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기행문인 고려도경에 “중국과 달리 고려술은 주로 맵쌀술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술을 빚을 쌀을 처리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쌀을 어떻게 처리해서 사용하는가에 따라 술맛도 천차만별로 다르게 된다.
생 쌀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설익힌 상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백하주, 향온주 등 조선시대의 대표적 약주들에 널리 쓰이던 방법이다. 이 밖에도 시루에 쪄낸 밥을 쓰기도 하며 백설기를 찌거나 죽을 쑤는 등의 여러가지 방법으로 술의 원료를 처리한다.
4. 술빚기와 발효
술밥과 누룩이 준비되면 오염이 되지 않도록 끓여 식힌 물이나, 금방 길은 샘물로 술밥과 도토리알만하게 부순 누룩가루를 함께 버무린 후 술독에 켜켜로 넣어 술을 빚는다.
이때 술을 빚는 술독은 반드시 같은 것으로 사용하고 김치나 장항아리는 쓰지 않아야 한다. 이것도 잡균 오염을 방지하려는 배려이다. 특히 오래 쓰지 않은 술독을 소독할 때는 술독을 거꾸로 뒤집어 놓고 관솔에 불을 지펴 솔연기와 열로 소독한 후 써야 한다.
술을 빚어 놓은 술독은 너무 덥지도 차지도 않은 곳에 둔다. 그리고 일단 술이 끓기 시작하면 너무 더워지지 않게 바람을 쏘여준다. 술이 다 되어 술찌꺼기가 차분히 가라앉으면 또 한번 술밥과 누룩을 넣어 두번째 담금을 한다.
이렇게 다 된 술로 다시 술을 빚어 진하게 빚어내는 것을 중양법이라고 한다. 이런 중양법을 세 번 이상 거듭한 것을 춘주라고 부르고 최고급의 술로 친다.
자, 이제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짧게는 3일, 길게는 100일 동안 술이 익었다. 술이 다 익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술독을 두들겨 보아 맑은 소리가 나거나, 심지어 불을 켜 술독 입구에 넣어서 불이 꺼지지 않으면 바로 술이 다 된 것이다.
5. 약주 떠내기
이제 찌꺼기가 포함된 걸쭉한 술덧에서 노릇하고 맑은 약주를 받아 내야 한다. 술독 가운데에 용수를 박고 용수의 틈새로 스며들어 고인 전주를 조용히 떠내면 이것이 진짜 우리의 청주이고 약주이다.
이렇게 하면 아주 맛있는 약주를 얻게 되는데, 더 많은 약주를 얻으려면 처음부터 술덧을 모두 자루에 담아 약틀에 짜 내기도 한다. 약주만을 얻을 목적으로 술을 빚을 땐 분곡이라고 하는 밀기울을 골라낸 약주용 누룩을 사용하기도 한다.
6. 소주 내리기
소주는 술덧을 솥에 넣어 끓여 알코올 증기를 받아낸 것을 말한다. 이런 조작을 증류한다고 하는데 아라비아 향수 만들기로부터 발견한 기술이 몽고침략때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소주를 내리는 도구는 소주고리가 있다. 솥에 불을 때면 물보다 낮은 온도에서 끓는 알코올 증기와 향기 성분들이 먼저 기화되어 소주고리 윗부분에 부딪친다.
이때 뒤집어 얹어 물을 담아 놓은 솥뚜껑 바닥에 증기가 부딪히면 온도 차이 때문에 술방울이 맺히는데, 이렇게 맺힌 술방울들을 옆구리의 주둥이로 받아내면 바로 소주가 되는 것이다.
도수가 높은 소주를 얻고자 하면 이런 과정을 거듭하면 되고, 대개 이런 방법으로 소주를 내리면 45도 정도의 소주를 얻을 수 있다.
7. 탁주 거르기
앞에서 말한 약주를 떠낸 후 남은 술덧에 물을 부어 섞은 후 체에 바쳐 밥알을 으깨고 찌꺼기를 걸러낸 것이 바로 막걸리이다. 처음부터 막걸리만을 얻기 위해 빚은 고급 탁주를 순탁주라고 하는데, 숟가락으로 퍼서 먹어야 할 만큼 진한 이화주와 같은 막걸리가 이에 속한다.
8. 보관용기와 술병, 술잔
술을 빚고, 보관하고, 마시는 도구와 그릇은 여러가지가 있다. 먼저 술독은 크기에 따라 대독, 독, 큰항아리, 단지로 나뉘어진다. 술독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술 맛도 무궁무진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술을 마시는 그릇은 다양하지만 크게 배와 잔, 사발 등으로 나뉘며, 술병은 크게 나누어 주병, 오리병, 호리병, 각병, 자라병, 편병 등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슬기와 멋은 구석구석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으며 이는 술을 담거나 보관하는 도구 역시 조상들의 투박하지만 자연적인 멋과 실용적인 기능이 녹아있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반면 중국의 술병과 술잔은 술의 용도나 종류에 따라 그 기능성을, 일본은 인공적을 보여지는 美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간략하나마 우리 전통술의 모습과 술빚기에 대해 알아보았다.
언뜻 초라해 보이는 도구와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 술빚기에 여러분은 실망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이치에 맞게 창조된 우리의 술을 마음 가득히 느끼고 알아 나간다면 우리술의 진면목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의 합일속에 드러내지 않는 멋, 사람의 몸을 해치지 않는 음식과도 같으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신, 그리고 사람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약과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술이다. 약식주동원이라는 우리 조상님들의 술에 대한 생각을 오늘 우리는 그 근본에서부터 바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