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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0. 파란만장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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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파란만장, 막걸리의 흥망성쇠

□ (태동기) 막걸리는 삼국시대 이전 벼농사가 행해진 시기부터 빚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부터는 서민의 술로 자리매김

○ 삼국시대는 곡물발효주를 빚는 방법이 완성된 시기로 고구려의 곡아주, 신라의 신라주, 백제의 수수보리 양조주 등이 대표

○ 고려시대에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 형태가 완성되었으며, 국가행사를 위해 사찰 중심으로 대단위로 술이 제조

* 막걸리에 대한 기록으로 ‘고려도경’에는 탁한 술, ‘동국이상국집’에는 백주로 표현되어 있으며, 주로 서민들이 애용

□ (도약기) 조선시대는 유교 영향으로 가양주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막걸리 종류가 다양해지고, 재료도 고급화되어 꽃을 피운 시기

○ 집집마다 술을 빚어 제례 등에 사용하면서 수많은 가양주가 등장하였고, 멥쌀보다 찹쌀의 이용이 많아져 고급화

* 일일주, 계명주, 삼일주, 반야주 등 7일 이내에 빠르게 빚어지는 술들이 있었으며, 이것은 맑은 술을 거르고 남은 지게미에 물을 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탄산이 있는 청량한 막걸리를 먹기 위한 것(’10, 류인수)

○ 술 제조법이 많은 문헌에 소개되며, 19세기 말 춘향전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에 최초 한글 표현 ‘목걸리’가 등장

우리나라 누룩의 이용 역사는!

▷ 우리나라에서 누룩을 이용한 시기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측되고 있으나, 문헌상으로는 ‘고려도경’을 근거로 1123년경이라고 알려져 있음

- 이후 조선시대 ‘산가요록(1450년)’을 시작으로 ‘사시찬요초’, ‘음식디미방’, ‘증보산림경제’ 등에 막걸리 이름과 제조법이 상세하게 소개(’05, 한국의 전통명주)

누룩 발효실
<누룩 발효실>

□ (암흑기) 일제강점기 주세법의 시행으로 가양주가 밀주로 간주되고 주막문화가 사라져 우리 전통술의 맥이 끊기게 된 시기

○ 주세법 시행(1916년)으로 가양주가 밀주로 전락되었고, 다양한 전통술 제조의 맥이 단절

□ (소생기) 해방 후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용이 늘어 농주와 노동주로서 명실상부한 국민주의 자리를 유지하던 시기

○ 해방 후 1970년대 초반 까지 농민과 도시노동자들 사이에 노동주로서 인기가 많아 ‘74년에는 주류 생산의 77%를 차지할 정도

* 막걸리 생산량 변화(만kL): 4.7('16) → 27('35) → 62(‘67) →168(’74)

○ 양곡관리법(1965년) 시행으로 쌀 대신 수입 밀가루로 제조

□ (쇠퇴기) 1980~2000년대 초반까지 막걸리의 저온유통이 일반화 되지 않아 유통중 변질이 심했으며, 소득 향상으로 인해 맥주에 대한 선호가 높아져 소비가 급격히 감소

○ 농촌인구의 감소, 주류 수입개방과 통기타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탄생으로 맥주가 대중화되면서 막걸리 소비가 급감

* 전체 주류 중 막걸리 출고량(%) : 77(’73) → 53(’80) → 23(’88) → 20(’90)

○ 막걸리 부정유통 방지를 위해 판매지역 제한, 도수 제한, 면허 제한, 지역별 합동주조 유도 등으로 다양화에도 걸림돌

□ (중흥기)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문화와 웰빙 트렌드로 막걸리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국민주로서 재탄생

○ 칵테일 막걸리 등 종류의 다양화, 최고급 원료를 이용한 품질의개선, 막걸리 카페 등 새로운 소비문화의 등장으로 인기가 상승

막걸리 카페
<막걸리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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