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도량형은 조선시대부터 나라가 정한 단위가 있었으나 민간에서는 그에 가늠할만한 기구가 없어 주변의 생활용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우리의 옛술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용기(容器)에 대한 이해과정이 필요했으며, 집집마다 사용하였던 용기들의 오차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오차를 일일이 적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시간과 노력 또한 상당히 요구된다. 따라서 이 책자를 쓰기에 앞서 가장 신뢰성 있는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도량형 기준 설정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도량형에 관한 자료조사를 하였고, 마침내 적합한 기준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세종실록(세종28년)」의 양기(겷器)의 용적에 관한 것이었다. 본 책자는 이를 근거로 하여 전통주 복원작업을 하였고, 그 기준은 아래의 표와 같다.
<표1> 조선전기 양기(겷器)의 용적1)
1) 출처 : 이종봉, 2004. 조선후기 도량형제 연구. 역사와 경계, 부산경남사학회. Vol.53, No.0. p64.
『세종실록에』서는 양기의 용적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한 조선후기의『속대전』과『대전회통』에서도 양기에 있어서 위 표와 비교하여 큰 변화는 없었다. 따라서, 집필진은 위의 표를 근거로 하여 ‘1되의 용적은 570mL’이라는 공식으로 전통주 복원작업을 하였다.
또한, 전통주의 원료 중에는 쌀은 물론이고, 그외 여러 가지 곡물들이 등장한다. 복원 작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1되 즉, 570mL 용적에 대한 원료의 무게를 전자저울로 측정하여 표를 작성하였고, 이를 근거로 복원 작업을 하였다.
<표2> 복원에 사용된 원료별 1되(570mL) 용적의 무게
한편, 일제에 의한 식민지 시대에는 통감부 설치 이후 일본의 도량형3)으로 강제 개정(1909년 도량형법 개정)되면서 오늘날과 유사한 용기 단위에 이르게 되었다. 즉, 1되는 1.8L가 되면서 조선시대보다 무려 3배 이상의 용적으로 바뀌었던 것이다.「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1924)」은 ‘1되=1.8L’를 적용하였으며, 집필진은 이 책에 맞추어 아래와 같이 각 원료의 무게를 측정하여 표시하였다.
<표3> 일제시대의 원료별 1되(1,800mL) 용적의 무게
즉,『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을제외하고는모두조선시대의도량형을적용하였다. 그러나, 어떤 도량형을 선택하든 각 원료의 배합비율을 고려했을 때 동일하게 증감되므로 술을 빚은 결과는 같을 것이다. 한편『산가요록』에서는 조선시대 양기들간의 크고 작은 관계를 자세히 수록하였다. 이 덕분에 고문헌 도량형 해석의 돌파구를 찾게 되었으며, 이를 토대로 현대적 부피 단위로 환산할 수 있었다.(<표 4>)
2), 4) 일의 자리에서 반올림 한 수치
3) 출처 : 이규철, 전봉희. 2009. 개화기 근대적 도량형의 도입과 척도 단위의 변화. 대한건축학회문집 계획서. 제25권 제11호(통권253호)
<표4> 고문헌에서 사용된 도량형의 해석 (단위 : mL)
* 전통주 “조선시대 360여종”의 제조법.유래 등은 ‘전통주 전체’에서 한번에 확인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