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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주제조 기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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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3. 가향 전통주 제조 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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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전통주의 역사적 흐름

♣ 삼국시대

• 유양잡조(단성식(段成式:?~863)이 지은 중국 당나라 때의 수필집)이 주식편에 낙랑주법이 나온다.

• 재료 및 술 빚기는 기록이 없으나 술 빚기의 체계가 잡혔음을 알 수 있다.

• 일본의 (고사기)에는 응신천황(270-312)때 백제에서 인번(仁香:수수보리 또는 수수코리)이라는 사람이 와서 누룩을 써서 술을 빚는 새로운 법을 가르치고서 일본의 주신(酒神)이 되었다고 한다.

• 응신천황은 수수코리가 빚은 술에 취하여 “수수보리가 빚어 준 술에 내가 취했네 / 마음을 달래 주는 술 / 웃음을 주는 술에 내가 취했네” 하고 노래를 불렀다 한다.

• (삼국지)(고구려전)에 고구려의 건국 초기인 28년에 지주(旨酒: 맛있는 술)를 빚어 한 나라의 요동태수를 물리치는 등 양조 기술이 뛰어 났다고 한다.

• 백제 사회의 주조 기술이 중국과 대등할 정도로 그 틀이 갖추어져(주서) 등을 통하여 준류 문화, 예(감주) 문화가 정착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

• (해동역사)와 (지봉유설)에는 시인 이상은의 시가 기록 “한 잔의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쉽게 사라질 것이 두렵구나”라고 하였으니 상류사회에서는 신라주의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삼국시대에는 발효원인 주국(酒麴)과 맥아(麥芽)로 빚어지는 주(酒)와 예(醴:단술)가 정작 되었다.

♣ 통일신라시대

•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음용이 성행되고 있었으며, 주류 문화.예 문화가 그 뿌리를 그대로 이어 받아 신문왕 3년의 폐백음식 속에

장: (醬: 젓갈, 간장, 된장),

시: 시란 콩 찐 것에 소금을 혼합하여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 청국장, 된장의 원료가 되는 짠맛의 메주덩이를 말한다.

혜: ‘절인다’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젓갈, 김치 류의 총칭

주: 예류가 포함되고 있었던 사실이 전해진다.

♣ 고려시대

• 고려 전기 중에 청주류, 중양주류, 탁주류, 제주류, 감주류 등의 전통주류의 양조 기술과 종류가 심화되었다.

• 고려시대에는 송나라와의 교류가 있었고 사원은 오늘날 여관업을 겸해 술을 빚어 팔기도 하였다.

•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잡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는 중국에서는 잡쌀로 술을 빚었으나 고려에는 맵쌀로 술을 빚은 것 이다.

•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라는 것은 중국의 덧술법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 (고려사) - 궁중의 양온서에서는 국가의 의식용 술을 빚기도 하였다. 왕이 마시는 술은 양온서에서 다스리는데 청주와 법주의 두 가지. “질 항아리에 넣어 명주로 봉해서 저장해 둔다” 라고 하였다.

♣ 고려의 소주

• 고려를 지배한 몽고는 일본 침략을 위한 병력의 전초기지를 제주도, 안동, 개성에 두었다. 병사들은 소주를 술병에 넣어 다니면서 마셨다. 이고장에서 소주를 만들어 몽고군에게 보급하게 되어서 그 전통이 그 지역에 남게 된 것이다.

• 본초강목에는 “소주는 예로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원대에 비로소 만들어 지게 된 것이다”

• 소주는 화주(火酒), 아라길주(阿喇吉酒)라고 하였고, 소주를 만주어로 ‘아래기(araki)’, 개성에서는 ‘아락주’, 아라비아어로 ‘arag’라고 하였다. 아라비아에서 원-만주-고려로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 (사원) 내에서는 술, 누룩제조 판매, 음주, 훈재 사용을 금함

• 승려들은 사원에서 숙박업을 하고 술제조, 판매 등 금지령에도 아랑곳없이 술을 팔고 있는 주점 이었다.

♣ 고려의 술

◈ 포도주

• 양주(海州)지방에 포도의 재배와 포도주 빚기가 성행, 당태종(627~649)은 고창국을 정복했을 때 그 양조법을 익혀와서 8종의 술을 빚어 군신들과 같이 마셨다 전해짐.

• 고창국:중국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투르판에 5~7세기경에 번영한 나라

• (고려사) 충렬왕(1285)에 원제가 고려의 왕에게 포도주를 보내왔다고 한다.

◈ 도소주

• (동의보감)의 도소주에 대한 설명은 백출, 대왕, 길경(도라지 뿌리), 천초(초피나무) 방풍, 호장근을 썰어 주머니에 넣어 12월 해일에 우물 속에 넣어 두어번 끓여서 남녀노소 모두 동쪽으로 향하여 한 잔씩 마신다고 함.

• 중국 후한의 화타가 만들었다고도 하며 당대의 손사막이 만들었다고도 한다. 중국에서 고려로 전해진 것으로 본다.

• 도소(層蘇)라는 말은 소(蘇)라고 하는 악귀를 물리친다는 뜻으로 술을 설날 아침에 차례를 마치고 세찬과 함께 마시면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오래 산다고 한다.

고려의 술 ‘도소주’
▲ 고려의 술 ‘도소주’

▤ 상세정보

◈ 계향어주

• 송나라 때 궁중에서 사용한 술 계실(繼室)을 넣어 만든 감미로운 술.

• 이자겸이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계향어주를 내놓은 연회석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 “황하의 물은 천년의 상서로움을 보이고 계향주 만수상(술잔)에 떠 있네, 오늘 외국 손 이 여기 참여하였는데 하늘이 보우하여 길이 잊지 말자”

◈ 유주

• 몽고의 술로 양유(羊乳)를 발효시켜 만든 양주(羊酒)나 마유(馬乳)로 만든 마유주.

◈ 감향주

• 잡쌀로 구멍떡 - 누룩가루를 넣어 만듬 - 3일 후 잡쌀로 고두밥 - 누룩가루(여름)

◈ 향감주

• 멥쌀로 구멍떡 - 이화국 가루를 넣어 빚은 단양주

◈ 이화주

• 막걸리형 술이 보급화와 정작

- 중국과의 교섭이 활발해지면서 외래주의 유입이 시작됨을 알수 있다. 후기에는 송, 원나라의 양주법이 도입되었다.

• 증류주의 유입으로 1차 증류법을 거쳐 홍로가 나왔고 고차 증류법으로 감홍로가 나왔다.

• 고려시대를 우리나라 전래주의 정착기라고 할수 있다.

♣ 고려시대 시문속의 술

• 한 림 별 곡 - 황금주, 백자주. 송주, 예주, 죽엽주, 이화주, 오가피주

• 이규보의 시 - 이화주, 화주, 백주, 춘주, 천일주, 천금주, 자주, 초화주, 파파주, 방문주, 녹파주

• 파 한 집 - 녹주, 청주, 국화주

• 목 은 집 - 부의주, 창포주

• 포 은 집 - 창포주

• 동 문 선 - 유하주

• 성사달의 시 - 신풍주

• 삼 도 부 - 구하주

• 근 제 집 - 포도주, 도소주

• 도 은 집 - 도소주, 탁주, 황봉주

• 이자량의 시 - 계향어주

• 고려사 - 죽엽주, 오가피주, 이화주, 예주, 황금주, 백자주, 송주

• 이와 같이 성숙기를 맞이 하였고 감주, 청감주,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 조선시대

• 고려시대의 주품이 이어지면서 양조 기술의 고급화를 보여 주었다.

• 초기 우량주: 삼야주, 이화주, 청감주, 유의주, 향온주, 백자주, 호도주, 하향주, 춘주, 청감주, 국화주 등이 유명

• 말엽 우량주: 충청의 노산춘, 평안의 벽향주, 금천의 청명주등이 유명.

◈ 청명주

• 청명(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이므로 태양의 황경(黃經)이 15°에 있을 때) 날 밑술. 곡우(태양 황경이 30도가 되는 때이다. 양력으로는 4월 20일경) 덧술

◈ 감홍로

• 소주를 한두번 고아서 마지막에 소줏고리의 바닥에 꿀과 자초를 깔고 이슬을 받음.

◈ 죽력고

• 소주에 왕대를 쪼개서 불에 구워 스며 나온 즙과 꿀을 알맞게 넣어 그 그릇을 끓는 물에 넣고 중탕.

◈ 이강고

• 배 껍질을 벗기고 기왓장 위에서 갈아 즙을 내어 고운 헝겊으로 받쳐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받친다. 그 즙과 꿀을 소주병에 넣고 중탕한다.

• 새로이 발효주와 증류주를 조화시킨 후약주류가 든작했다. (송순주, 과하주) 특히 제조법이 기록된 문헌이 많이 나오게 되어 술 빚는 체계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주 원료로 하는 곡주가 150여종이 수록 되 있다.

◈ 추로백(秋露白) : 가을에 이슬을 많이 받아 술을 빚는다.

♣ 일제시대

• 조선총독부는 1907년 7월 주세령을 공포 - 세금원의 대상.

• 9월에 주세령의 강제 집행으로 전래주의 잠적이 시작.

• 청주의 상품인 정종이 청주의 통칭명이 되었다.

• 1916년 일본이 주세법을 제정하여, 술의 자가 제조 금지와 양조장을 통폐합 시킴

• 자가 제조 면허자: 1916년 37만명에서 1934년 0명으로 됨

• 1917년, 자가양조는 전면적으로 금지

• 1920년, 재래식 누룩을 사용하던 방법에서 흑국, 황국의 배양균을 사용하는 입국법이 활용

• 1930년 집에서 담는 술은 완전히 사라지고 주조업이 산업으로 발전. 품질 개량의 노력은 소홀.

♣ 해방

• 1937년 주정 생산 시작.

• 1965년 - 증류식 소주 금지로 희석식 소주로 전환.

• 해방과 6.25를 거쳐 식량 부족으로 인해 주질의 저하가 초래

♣ 현 재

• 1960년대 이전까지는 제조 및 판매업의 면허가 자격요건이나 기준 없이 부여

• 1973년~ - 주류 제조장 통폐합과 신규제조면허 불허

• 1976년 - 주류 도매장 통합 및 신규 도매면허 불허를 강력히

• 1990년 - 술 제조에 쌀 사용 허용, 주류도매면허 개방,

• 1991년 부터의 제조면허의 단계적 개방

• 1992년 - 자도소주 판매제 폐지,

• 1993년 - 약주공급구역폐지와 소주용 주정배정제 폐지

• 1995년 - 주세법 제정되어 술의 자가 제조 허용

• 2002년 - 주류의 알코올 도수 폐지,

• 2005년 - 출고가격 표시제 폐지

• 국실 폐지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 식생활의 변화로 쌀의 소비가 줄어 들어 정부에서는 소비를 늘리고 한식이 세계화 물결로 전통주의 변신을 시도 하고 있다.

• 집에서 빚는 술을 허락, 앞으로는 양조용 쌀도 싼 가격으로 보급해 준다고 한다.

• 지역특징을 살려 체험 마을로 하여 판매 까지 허락을 한다 하니, 우리의 전통 술을 맛과 질에서 우수하게 개발될 것이다.

◈ 우리술 품평회

• 전국의 우리술이 한자리에 모여 품질을 겨룬다.

• 보다 나은 품질의 고급화 유도. 국민에게 축제를 통한 홍보.

◈ 지역축제

• 중부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시, 축제를 지방으로 개최,

• 전국의 우리술 홍보유도. 순수한 미생물에 의해서 자연 발효시킨 자연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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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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