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맥주산업의 부흥 속에서 보리 산업도 ’80년대까지 동반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이후 외면을 받기 시작
○ 1933년 일본에 의해 조선맥주주식회사, 같은 해 12월에는 소화 기린맥주주식회사가 설립
- 초기에는 고급술로서 번화가에서만 판매되었는데 맥주 3상자 반의 가격이 쌀 한 석(144kg)과 같을 정도(OB맥주 홈페이지)
- 광복과 더불어 두 맥주회사는 적산관리공장으로 지정되었다가 1952년에 민간에 불하되어 동양맥주와 조선맥주가 탄생
일제강점기 이전 우리나라에도 맥주가 있었다고?!
▷ 조선왕조실록 영조 86권에 ‘麥酒’라는 단어가 나오며 1755년 영조가 금주령을 내릴 때에도 탁주와 맥주를 제외했다고 기록(’10, 고나무)
- 군사들에게 음식을 주어 위로할 때에는 탁주만을 쓰고, 농민들의 보리술과 탁주 역시 금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명
- 당시의 맥주는 ‘모미주(牟米酒)’라 하였는데, 여기서 모미가 보리를 뜻하는 말
- 보리쌀을 밥 짓듯 잠깐 익게 하여 물에 사흘간 담가 굵은 보에 건져 볕에 돌같이 굳게 말려 다시 옥같이 찧어 술을 빚으면 좋다는 기록이 전함
○ 1960~70년에는 맥주 2사가 모두 맥주보리, 호프 등의 원료를 국산화하기 위해 노력
- 최신 품종이 도입되고, 재배기술의 전수뿐만 아니라 계약재배와 수매 등을 통한 농가 소득의 향상이 잘 이루어지던 시기
* 1975년 동양농산(現두산타워)이 설립되어 농가 소득 증대와 주류 원료의 국산화를 목표로 포도.맥주보리.호프 등의 국내 자급 생산에 투자
- 당시에 두산 1호부터 36호까지 다양한 맥주보리의 품종이 개발 되었고, 최근까지 두산 8, 22, 32호 등이 많이 재배
* OB맥주는 ’63년 맥주보리 계약재배를 시작으로 66년 경남 사천에 맥주보리육종장 개설, 36개 계통의 맥주보리 품종을 육성(’66.6.19, 한국경제신문)
○ 80년대에는 국내맥주용 맥주보리의 자급률이 100%에 달할 정도였으나 이후 수매에 대한 정부지원이 없어지면서 빠르게 하락
-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맥주가 소개되면서 점차 품질 차별화, 비용절감의 목적으로 맥주사(社)의 맥아 수입이 증가
* 홉의 경우는 국내 생산량을 전량 수매하였으나 품질과 수량이 모두 부족하여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
□ ‘12년 현재 국내 맥주에 대한 수입산 맥아(麥芽)의 비율이 약 95%에 이르는 상황(’13.4.1, 뉴스1 코리아)
○ 3~4년 전만 해도 우리 보리의 비중은 40%에 달하였으나 UR, FTA 등에 의해 수입산 가격의 하락으로 급격히 하락
- ’07년 수입산 맥아의 수입량은 13.4만 톤이었던 것이 ’13년 18.2 만톤으로, 금액은 ’13년 1억 8백만 달러로 68%가 증가
○ 국내산 맥주보리는 ‘85년 23만 톤에 버금가던 생산량이 ’14년에 이르러 10분의 1 수준까지 큰 폭으로 하락
- ’14년 맥주보리는 5,732 ha에서 22,963 톤이 생산되고 있으며, 전체 맥류 생산량의 17.5%(’85년 28.5%) 수준까지 하락
맥주회사가 말하는 국내산 보리맥주 사용 비율이 떨어지는 이유는?
▷ 맥주를 만드는데 있어서 수입산에 비해서 품질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비싼 것이 현실(’13.4.1, 뉴스1 코리아)
- 생산량도 점점 줄어들어 맥주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물량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산 맥주보리로 전체 원료 소요량의 5%를 채우는 것도 정부의 중재 하에서 계약 재배한 것을 전량 구매하고 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