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 아시아 > 전라도 > 전라남도 장성 |
분류 | 발효음식 > 장아찌 |
자료보유 | 전라남도 장성군 김인후 종가 |
자료기록 | 장성 울산 김씨 김인후 종가 |
제작년도 | 2014 |
제작기관 | 세계김치연구소 |
레시피 기초 | |
1 | 감장아찌 | |
2 | 곶감배추김치 | |
3 | 멸치액젓 | |
4 | 홍갓무김치 | |
5 | 무장아찌 | |
6 | 풋마늘대장아찌 | |
7 | 매실장아찌 | - |
8 | 마늘장아찌 | |
9 | 깻잎장아찌 | |
박차임 종부의 친정은 진원 박씨의 시조인 죽천 박광전의 차종가로, 어릴 때부터 친정어머니가 가문의 살림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 때문에 처음 종가로 시집을 가야 한다고 했을 때, 친정어머니도 결혼을 반대하고 그녀도 울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친정에서 보고 자란 것이 있어 적응하기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마음 따뜻한 시어머니 황주남은 음식에 관해선 종부에게 모두 맡겨 두고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늘 며느리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며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세월의 부침을 겪으며 종가의 살림이 어려워져서 화려하고 비싼 음식은 제대로 만들어 본 적이 없던 시어머니는 오히려 며느리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다며 미안해했다. 그럴 때면 종부도 거친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눈물지었다. 그처럼 고부 사이의 이해와 애정이 깊으니 지금은 하서 선생의 후손으로서 종가를 돌볼 수 있음에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낀다.
박차임 종부의 음식 솜씨는 친정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늘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분주했던 친정어머니는 칼 솜씨가 야무지고 김치 맛도 좋기로 유명했다. 특히 동치미를 특이하게 담갔는데, 절인 배추의 속을 벌려서 당근과 배, 대파, 밤채 등을 켜켜이 넣고 석류를 올렸다. 이렇게 양념을 채운 배추를 짚으로 묶어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 익히면 모양도 예쁠 뿐 아니라 맛도 시원하고 좋았다. 그녀도 기억을 더듬어 한번 따라 재현하려고 했으나 친정어머니의 깊은 손맛은 쉬이 나오지 않았다.
박차임 종부는 종가의 음식이라 해서 꼭 옛 방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도 맞아야 종가 음식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때문에 이런저런 재료들을 가감하며 창의적인 레시피를 연구한다. 거즈를 이용해 멸치액젓을 좀 더 맑게 내리고, 발효된 모과주와 복분자주를 장아찌에 넣는 것도 이러한 연구와 실험의 결과다.
그녀는 종부들의 모임에도 자주 참여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역할을 고민한다. 아직 며느리를 보지 못했지만 나중에라도 억지로 가르칠 생각은 없다. 다만 가족을 위해 건강한 재료를 고르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하는 자세만큼은 다음 세대에도 꼭 전하고 싶다.
♣ 종가의 공간과 조리 기구
사적 제242호로 지정된 전남 장성의 필암서원은 호남의 유림들이 하서(河西) 김인후(1510년~1560년)의 학문과 인품을 추모하고자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인후는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1501년~1570년)과 함께 학문을 닦았고, 중종 35년(1540년)에 문과에 급제해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치며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가르친 인종이 즉위 8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고향인 장성으로 돌아와 학문에 정진하였다. 당시 그가 쓴 시 ‘자연가(自然歌)’를 보면 정치와 속세를 떠나 자연과 벗하며 여생을 보내려는 은거의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후 조정에서 여러 차례 그를 불러들였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는 학문에 더욱 정진하여 성리학적으로 높은 경지에 이르러 후학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필암서원 경내에는 김인후의 위패가 봉안된 사우와 인종이 하사한 목죽판각이 보관되어 있는 경장각, 강당인 청절당과 유생들이 거처하던 진덕재와 숭의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전각은 모두 좌우 대칭으로 배치했으며, 정면 중앙에 누문인 곽연루(廓然樓)를 두어 빼어난 균형미를 뽐낸다. 곽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1607년~1689년)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본래 장성 울산 김씨 종가는 필암서원 옆에 자리했으나 60여 년 전 화재로 종택이 모두 불에 타면서, 울산 김씨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금의 백양산 자락으로 옮겨왔다. 주변에 가문의 후손들이 많다 보니 박차임 종부가 처음 시집왔을 때만 해도 하서 선생의 기일이면 300여 명의 손님을 대접하였다.
하서 김인후 종가는 호남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5대 봉사 국불천위(國不遷位)다. 불천위(不遷位)란 국가 공신이나 혹은 덕망이 높은 자를 나라에서 정하여 4대 봉사를 지나 사당에서 영구히 제사를 지내도록 허락한 것이다. 불천위에는 국불천위 외에 유림불천위(儒林不遷位=향불천위), 사불천위(私不遷位=문중불천위)가 있다.
종가의 크고 작은 제사를 모두 도맡아서 준비하는 박차임 종부는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대로 전통 방식에 따라 음식을 준비한다. 가문의 중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과정에 정성을 다하고 몸가짐을 정갈히 하는 것도 가르침 그대로다. 장성 울산 김씨 종가의 제사에는 김치 국물이 있는 동치미 또는 나박김치를 제물로 올린다.
장성 울산 김씨 종가의 앞마당에 들어서면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종가의 내림 김치 중 하나인 곶감배추김치에 들어가는 곶감은 이 나무에서 열린 비단시를 활용한다. 박차임 종부에 따르면 비단시는 씨가 없고 빛깔이 비단처럼 고와서 곶감을 만들기에 최고의 재료가 된다. 곶감에 당분이 하얗게 올라오면 ‘분이 난다’고 하는데, 이 나무에서 열린 비단시로 곶감을 만들면 하얗게 당분이 많이 나기에 그 맛이 좋다.
종가의 앞마당과 뒤뜰에는 오랜 세월 김치와 각종 장아찌 재료들을 키워내는 든든한 텃밭이 자리한다. 뒤뜰의 작은 밭에는 해마다 배추를 200포기 정도 심어 김장 재료로 쓴다. 먹거리가 풍부해진 요즘이지만 박차임 종부는 부지런히 이 텃밭을 일구어 사시사철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들을 수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