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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2. 면/만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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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칼국수

칼국수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칼로 가늘게 썰어서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까지의 문헌에는 국수를 가리키는 글자가 보이지 않다가 고려시대에 접어들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의 국수가 어떠한 종류의 것이었는지 밝혀주는 구체적 자료가 없어 칼국수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없다.

칼국수는 조선시대 최고(最古)의 한글조리서인 『규곤시의방 閨壼是議方』에 절면(切麵)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주재료로 메밀가루를 쓰고 연결제로 밀가루를 섞고 있다. 『주방문』에서는 메밀가루를 찹쌀 끓인 물로 반죽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의 칼국수는 오늘날과는 달리 메밀가루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밀가루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려도경』의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의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내용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메밀은 흉년으로 기근이 들면 심는 구황식품으로 밀가루가 귀했던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 대신 메밀을 이용해 국수를 만드는 것이 더 발달했던 것이다. 밀가루 대신 메밀이나 녹말을 이용해 면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면서 제면기술 역시 메밀과 녹말의 물성에 적합한 방법이 훨씬 더 발달하게 되었다.

즉 점성이 부족한 메밀은 압출식으로 만들거나 칼싹두기 형태로 만들었고, 녹말면은 바가지에 구멍을 뚫어 찬물에 굳혀, 사면의 형태로 만들어 먹는 것이 더 발달했다.

밀가루를 이용한 반죽을 칼로 썰어서 만드는 현재의 칼국수 조리법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 볼 수 있다.

“양밀가루를 물에 반죽할 때에 장을 조금 쳐서 주무르고 여러 번 친 뒤에 방망이로 얇게 밀어 잘게 썬다. 밀가루를 뿌려 한데 붙지 않도록 한 뒤에 끓는 물에 삶아내어 물을 다 빼버리고 그릇에 담은 뒤에 맑은장국을 끓여 붓고 국수장국에 얹는 고명을 얹는다.”고 하였다.

『간편조선요리제법 簡便朝鮮料理製法』에서는 “밀가루에 소금을 조금 뿌려 물에 반죽하여 오랫동안 주무르고 쳐서 반죽을 극히 되게 한 뒤에 방망이로 얇게 밀어서 잘게 썰어서 끓는 물에 삶아 내어 냉수에 헹구어서 물을 다 빼서 버리고 그릇에 담는다. 맑은장국을 끓여서 붓고 국수장국에 얹는 고명을 얹는다.”고 하였다.

여기서의 칼국수는 오늘날과 같이 밀가루를 쓰고 있으나 국수를 찬물에 헹구어 국수장국을 만들어 붓는 것이 특이하다. 요즈음의 칼국수는 주로 장국에 넣어 그대로 끓여 먹는다. 이것은 국물이 탁하기는 하나 구수한 맛을 살릴 수 있다.

칼국수 맛있는 한식이야기

지금 분식집 등에서 싼값에 먹을 수 있는 칼국수는 우리 조상들에게는 진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칼국수가 있기는 있었으나 지금 같은 밀가루 칼국수는 서울 양반가에서나 해먹은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시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칼국수는 메밀을 주재료로 하고 있다.

칼국수는 6·25전쟁 이후 미국의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밀 재배 북방한계선이 충청도를 넘지 못하는 까닭에 미국의 원조 밀이 들어오기 전만 해도 밀은 꽤 귀한 식재료였다.

일부 농민, 시민단체에서 이 원조 밀을 계기로 우리의 식량자급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엔 미국에 식량주권이 종속됐다고 주장하지만, 한편으로는 값싼 밀 덕분에 조선 양반가 음식이던 칼국수가 대한민국 서민음식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국수를 먹던 특별한 때가 있었다. 부리와 밀 수확이 끝나는 무렵인 음력 6월 15일 유두에 햇 밀로 칼국수와 부침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던 풍습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무병장수가 최고의 덕으로 여겨지면서 긴 국수 가락이 장수를 가져온다는 믿음도 생겼다. 고려시대부터 생일이나 회갑 등 경사에 국수를 먹는 관습은 이러한 믿음에서 비롯됐다. 결혼식 날에 국수를 대접하는 풍습도 부부간의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수는 매우 다양한 맛을 자랑한다. 예부터 농촌지역에서는 닭 육수에 애호박과 감자 등을 넣어 만들었고 해안지방에서는 바지락 등 해물육수, 해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산간지역에서는 멸치 육수 등이 선호됐다.

불경기에 추운 겨울에는 칼국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영하권의 추위가 지속되면서 부담없이 속을 뜨끈하게 채울 수 있는 것으로는 칼국수만한 게 없다.

지난 98년 외환위기 때에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부담이 적은 칼국수집이 불경기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을 받았다. 요즘에는 매운 맛의 칼국수가 더 잘 팔린다고 한다. 불황기일수록 맵고 자극적인 것을 찾는 성향 때문일 것이다. 칼국수에도 세태가 반영된다는 점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칼국수가 반드시 서민음식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칼국수가 서민의 음식이란 통념을 깬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청와대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칼국수를 대접하기까지 했으니 대단한 칼국수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멸치나 호박 정도로 맛을 내는 가정용 칼국수가 아니라 김전대통령이 즐겨 드시던 칼국수는 사골칼국수로 쇠고기 사골로 육수를 만들어 끓이고 고명으로 쇠고기를 얹어내는 고급 칼국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칼국수는 국물 맛을 어떤 재료로 내느냐에 따라 그 종류도, 가격도 다양해진다. 잘 살던 집에선 이런 사골 칼국수를 끓여 먹는가 하면 일반 가정에선 멸치로 국물로 내 끓여먹던 멸치 칼국수가 있었다.

닭 칼국수 맛있는 한식이야기
▲ 닭 칼국수

이외에도 닭 칼국수를 비롯해 사골칼국수, 멸치칼국수가 대표적인 3대칼국수에 해당한다. 여기에 팽이 느타리 등 다양한 버섯을 넣어 함께 끓인 버섯칼국수와 그릇 가득 조개껍데기 채 담아내는 바지락칼국수가 더해져 5대 칼국수가 되며 특별한 메뉴에 속하는 팥칼국수 연칼국수 등도 있다.

아마 밀가루 음식이 당기는 장마철 내내 점심시간마다 칼국수만 골라 먹어도 물리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칼국수가 있을 것이다.

칼국수는 집에서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음식이지만 이 칼국수의 다양한 성격을 멋지게 고급화시킨 예는 많다. 지금도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원조 명동칼국수를 선두로 하여 1990년대 들어서는 지역의 유명 칼국수 집 브랜드를 이용한 프랜차이즈 점포가 주택가 곳곳을 점령했다.

그러면서 버섯칼국수, 해물칼국수, 바지락칼국수 등 메뉴도 다양해졌다. 이들 프랜차이즈 칼국수집의 특징은 전골냄비를 올려 버섯이나 채소 먼저 먹고 칼국수를 먹은 뒤 그 국물에 볶음밥이나 죽까지 해먹음으로써 ‘싸게, 그러나 배부르게 먹었다’는 포만감을 주었다.

즉 ‘서민음식’이라는 컨셉트에 충실하면서도 맛깔스러움을 느끼게 하여 성공한 것이다.

♣ 곧! 중복이라 닭칼국수인데 특이한 닭칼국수 알려 드릴게요 [백종원의 쿠킹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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