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이 시려도 따뜻한 곳을 생각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 하여도 밥을 생각하지 말지니라.
* 「 발심수행장 」 원효(元曉, 617~686 신라의 고승)
탁발을 하는 문화권에서는 아침에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서 공양물을 얻었다. 수행자가 먹는 음식은 이웃들이 먹는 것보다 좋을 수 없다. 흉년이 들면 얻는 공양물도 빈약해질 것이고 풍년이 들면 덩달아 풍요로울 것이다.
북방으로 전래된 불교도 탁발은 아니었지만 역시 지역의 생산물을 공양 받아 공동체를 유지했다. 먼 거리를 운반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제철에 난 제지역의 수확물밖에는 얻을 수 없었다. 선종사찰이 노동윤리를 정립하면서 수행공동체는 생산의 주체가 되었다.
땅을 일구고 씨를 뿌린 뒤 경작하여 수확물을 얻는 전 과정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울력으로 참여했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대해 일하는 자의 수고로움과 이를 유통하여 주는 이의 고마움을 당연히 잘 알게 된다.
절 밑 마을 사람들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게 된다. 사회가 급변하는 동안에도 한국 전통 사찰은 여전히 농경문화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문명에서 배제된 전근대적인 공간에서 불편함을 감수하는 ‘느림’의 세계다.
사회는 산업화 시대를 맞이했지만 산중 사찰은 농경문화의 전통이 이어져오고 전기와 기름이 에너지의 대세로 바뀌고 있을 때도 절 집안은 아직도 아궁이에 장작을 넣고 호롱불을 켜기도 한다. 그 고집스러움이 다시금 주목받으며 새로운 문명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명의 편리에 길들여진 젊은 출가자들에게 나이 든 스승들은 ‘중물’이 덜 들었다며 ‘절에서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가르친다. 스승들은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라도 낭비하는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다.
쌀 한 톨에 농부의 손이 88번 간다고 해서 쌀 미(米, 八+十+八)자라고 한다는 가르침, 떠내려간 상추 잎 한 장을 건지기 위해 계곡 물길을 따라 10리를 걸어 내려간 도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양간 바닥에 쌀 한 톨이 떨어져도 건져내서 먹도록 시킴으로써 베풀어준 시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게 했다. 무엇보다도 절 집안의 식사법인 발우공양은 먹고 난 그릇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아끼고 욕심을 절제하게 가르친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다. 행이란 꼭 가부좌 틀고 앉아 단전호흡을 하거나 특별한 기도를 하는 등의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사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뜻한다. 먹고 사는 문제야말로 자신의 행을 닦는 가장 기본적인 수행의 주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