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의 사찰음식은 된장과 간장에서 시작한다. 출가하고 3년 동안 된장과 간장만 배웠다는 주지스님은 요즈음 대중들이 와서 자주 묻는 사찰음식이 된장찌개라고 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정암사 된장을 가져가 끓여도 사찰에서 공양 받던 된장찌개 맛이 안 난다”며 된장찌개 끓이는 방법을 다시 묻곤 한다고 하였다.
된장만 넣고 끓이면 된다는 대중들의 생각은 재료의 성질을 파악하지 않고 앞뒤 재료를 넣는 순서도 고려하지 않아 정암사 된장만으로는 절대 제대로 된장찌개를 끓일 수 없다고 하였다. 된장찌개 하나에도 부처님의 이치가 실현되어야 제대로 된 된장찌개가 된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수행을 된장찌개에서 찾아야함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주지스님은 “아무리 된장찌개를 잘끓여도 찌개와 같이 올릴 밥상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찌개가 제대로 맛을 낼 수 없다”고도 하였다.
한 상에 올려진 음식들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공양을 통한 힐링이 된다는 말이다. 특히 된장찌개는 밥과 반찬을 다 만든 다음 끓여야 한다고 하였다.
된장찌개에 넣을 채소무. 호박. 고추등를 먼저 가지런히 썰어두고 다시물을 끓여, 썰어 놓은 무, 호박, 고추 중 가장 많이 익혀야 할 재료를 순서대로 넣고 한 소끔 끓인다. 그리고 된장을 넣고 살짝 끓여내야 야채가 익어도 색이 파랗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된장찌개가 된다.
된장은 오래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때문에 한번만 살짝 끓여야 한다. 오이나 호박과 같은 나물을 볶을 때는 소금으로 살짝 절인 후 물기를 짜고 사리와 같이 건조된 묵은 나물은 무르게 삶아 볶는다.
스님은 “볶는다고 하면 세간에서 기름에 볶는 줄로 오해하는데, 실제 기름에 볶는 것이 아니라 약한 불에 들기름과 간장을 넣고 푹 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고사리대나 나물 잎이 물러 터지지 않고 형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속은 부드럽고 겉은 탱탱해지기 때문이다.
시래기도 “잘 말려야하는 일이 먼저이고. 삶을 때 불을 약하게 해서 오래 동안 삶아야 부드럽게 풀어져 맛있는 시래기가 된다”며, “식품의 성질을 알고 바르게 조리한다면 최상의 소임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사찰음식은 원인과 과정을 중시하는 것이지 결과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원인은 식품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고, 과정은 식품의 성질에 맞게 행하는 것이다.
스님은 “현대음식은 결과에 너무 집착하여 무리하게 고가의 재료를 총출동시키지만 사찰음식은 소박한 재료로 재료가 가지고 있는 성품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기에 음식에 대한 맛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된장과 들기름, 표고버섯 가루에 무친 건조나물 무침의 부드러움이 ‘마음의 맛’으로새겨진다. 주지스님은 “나물전은 얇게 부치고 녹두전은 도톰하게 부쳐야 본래의 음식 맛을 알 수 있고. 음식을 만들 때 간단하게 하거나 대강 만들면 안 된다”고 하였다.
덧 붙여 “요즈음 음식이 산해진미의 모든 재료를 동원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음식이 없다는 것은 간단하고 대충 한 끼 때운다는 생각으로 음식을 하찮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찰을 방문하는 불자들이 “왜 사찰에는 특별한 재료가 없는데도 마음에 남는 음식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지 그 이치를 깨우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음식을 할 때도 일종의 의식이 있어야 한다.
세간의 음식문화는 그저 한 끼를 때우거나, 음식체험의 즐거움만 논한다. 음식이 주는 가치를 생명유지에 필요한 영양학적 효용과 쾌락의 도구로만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정성이나 재료의 성질, 과정의 절차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닫고는 있으나 정작 음식을 만드는 실행 단계에서 그 가치는 효율의 논리에 의해 순위가 밀리는 것이다. 근본을 중시하는 불교의 법도가 사찰음식에서 묵묵히 실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