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흥암을 찾았다. 백흥암의 도감스님은 “아마 주지스님이 은해사 암자 중 비구니 사찰이 이곳이 유일해서 뭔가 있을 거라 판단하시고, 가보라 하신 것 같다”며 “그런데 별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왕 왔으니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차려놓은 다반에 올린 매화꽃 가지가 봄을 전한다.
맑고 청아한 녹차 잔에 매화향이 보태진다. 차를 마시며 “요즈음 사찰음식이 퓨전화가 되어간다”며 염려하는 말씀을 화두로 던졌다. 비구니수행도량인 백흥암에도 동안거, 하안거를 위해 찾아오는 수행스님들이 “전통 사찰음식은 맛이 별로 없다”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전통 사찰음식은 발효음식이고 짠맛이 기본이다. 도감스님은 짠맛에 대해 현대인들이 지나친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 “우리 전통의 맛인 짠맛이 음식에서 사라지고 달고 매운 맛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며 사찰음식의 변화를 우려하였다.
예를 들어 10년 정도 간수를 뺀 소금은 ‘약’이며 소금에서 단맛이 난다고 하였다. 사찰음식은 간장, 된장, 고추장이 기본인데 이 모든 것이 소금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였다.
아울러 “기본이 짠맛인 사찰음식을 건강음식이고 웰빙음식이라 한다면, 현대의학과 모순이 생기지 않느냐”며 반문하였다. 음식문화는 단순한 산술적 수치나 행위로 해석할 수 없다.
행위 발생의 환경 원인 때문이고 그로 인해 고통이나 문제가 발생하면 자동적으로 행위는 소멸한다. 결과적으로 고통은 사라지고 진리의 행위만 남게 된다. 음식문화에도 부처님의 사성체四聖諦 진리가 실현되는 것이다.
도감스님은 “사찰음식은 따로 조리법을 기록하지 않고 그저 수행으로 익힌 음식이라 세세한 조리법이나 음식문화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시간이 되면 ‘짠무’ 담그는 날 다시 찾아오라고 하였다.
‘짠무’는 백흥암에서 해마다 한 번 담가 사시사철 공양하는 기본음식이다. 짠무를 담글 때는 무를 씻지 않고 흙이 묻은 그대로 천일염에 절이는데, 이틀 정도 지나 뒤집어서 다시 절인다. 물과 무가 같은 높이가 되면 그 물에 무를 씻고 항아리에 넣어 둔다.
씻고 남은 흙물을 가라앉혀 맑은 물만 항아리에 붓는다. 그 위에 무가 보이지 않도록 말린 고추씨를 덮어 둔다. 그렇게 1년 정도 숙성시킨다. 1년 후 그대로 건져서 썰어 먹었는데 요즈음은 너무 짜다고 해서 청량고추 하나 띄운 물에 짠물을 조금 빼서 공양한다.
짠무로 공양을 마무리하면 입안이 깔끔하고 아무리 묵은 체증도 내려간다고 하였다. 고추씨 탓에 노르스름 하게 물든 ‘짠무’는 시원한 맛을 낸다고 하였다. 소금이 좋으면 소금만 들어가도 맛있어지는 것이 사찰음식 이다. 그 중 하나가 동치미다.
소금, 배, 청각만 있으면 정말 맛이 좋은 동치미가 된다. 시원한 동치미국물을 다 먹고 나서 무만 남았을 때 스님은 무를 햇빛에 3~4일 말려서 된장에 박았다가 장아찌로 드시는데 그 맛이 깔끔하다고 하였다.
도감스님은 김치를 담글 때도 집 간장을 조금 넣는다고 하였는데, 젓갈의 단백질 발효를 콩 간장의 단백질 발효로 대체한 것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돋보이는 음식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