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는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다. 신라41대 현덕왕은 조카인 40대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즉위하였다. 이 과정에서 숨진 원혼을 달래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된 사찰이 해안사海眼寺이고 은해사의 시초이다.
그러므로 809년 혜철국사師가 창건한 해안사는 왕의 참회를 담고 있다. 1270년 홍진국존 혜영惠永스님과 1275년 원참元旵스님이 주석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혜영스님은 유가종 소속으로 동화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원참스님은『현행서방경現行西方經』의 저자로 알려졌는데 13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이후 1485년 죽청스님과 의찬스님이 묘봉암妙峰庵을 중창하였고, 1545년 화재로 사찰이 전소되었다.
이듬해 1546년 천교화상이 지금의 장소로 법당을 옮겨 새로 절을 지었다. 그때 법당과 비석을 건립하여 인종의 태실을 봉하고 은해사라고 명명하였다. 1712년 일주一珠스님은 은해사를 종친부宗親府에 귀속시키고, 사찰에 부여된 잡역을 경감시켰다.
갑계甲契를 통한 사찰 재산의 유지와 증식에 노력한 자료도 남아 있다. 조선시기 주요 인물로는 영파성규影波聖至, 삼담의연三潭義演 스님이 있다. 1000년 고찰 은해사는 조선시대의 명필 추사 김정희와 인연이 있어, ‘불광佛光’ ‘대웅전大雄殿’ ‘보화루寶華樓’ 등 추사선생의 글씨로 편액을 만들어 걸었다.
그래서 은해사는 서예가들이 “추사선생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며 오랜 동안 사랑해온 고찰이기도 하다. 추사선생의 편액은 은해사 암자인 백흥암에도 주련과 함께 남아 있다. 백흥암은 현재 비구니스님 수행도량이다.
* 한기문 경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