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사계는 음식을 통해 공양으로 담긴다. 봄이 오면 승가대학에서는 사찰주변 산과 계곡으로 소풍을 간다. 소풍은 어른스님도 같이 참여하므로 어른스님을 위한 점심공양과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야외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공양한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경외로움과 존귀함으로 가득한 자연을 도량삼아 진달래 화전을 공양하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운문사 지천에 널린 상수리나무가 도토리를 내어준다. 가을 찬바람에 떨어지는 도토리를 그대로 둘리 없는 어른스님들이 이목소가 내다보이는 뒤뜰에 큰 물통을 네 개 비치한다.
수행스님들은 아침저녁 포행길에 도토리 줍기를 경쟁하며, 물통 가득 도토리를 주워 담는다. 모아진 도토리는 이목소 물길에 띄어 두었다가 가을 햇살에 말려 거피해 도토리떡으로, 도토리묵으로, 도토리묵 잡채로 스님들의 공양이 되어 되돌아온다.
겨울 초입에는 운문사 스님들이 총출동하여 겨우내 공양할 김장을 담근다. 김장을 할 때도 승가대학의 역할분담은 체계적이다.
1년차 스님들은 보조와 운반을 맡는 소임을 수행하고, 2년차 스님들은 키운 배추를 소금절이하고 김장을 위한 기초준비를 완료하며, 3년차 스님들은 김치의 소를 만들고, 4년차 스님은 소를 배추에 버무린다. 사찰행사에 빠지지 않는 부각도 계절마다 준비한다.
부각은 겨울철 신선식품이 부족할 때 사찰의 행사음식으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졸업반 학인스님들에게는 훌륭한 간식으로 그 소임을 다한다. 여름에는 감자를 수확해 감자부각을 준비해 두고, 가을철 채소밭을 정리하며 거둬들인 깻잎과 깻잎순, 고추는 각각 깻잎부각과 고추부각으로 준비해 둔다.
여름을 지나며 색이 바랜 김은 가을 햇살 좋은 날 찹쌀 풀에 고추장, 간장, 다진 생강으로 양념하여, 김의 앞뒷면에 고루 발라 꾸덕꾸덕하게 말려 김부각을 위해 준비해둔다. 채식 위주의 사찰음식은 나름의 보양식 문화도 만들었다. 겨울이 되면 무곰국이 공양된다.
추운 겨울 쇄약해진 원기를 보충하고자 들깨와 쌀을 갈아 들기름으로 볶은 통무와 함께 걸쭉하게 끓여 드신다. 들깨와 쌀을 걸쭉하게 끓여 만든 사찰음식은 스님들이 수행이나 계절의 변화로 허약해진 체력을 보양하는데 자주 활용된다.
또 기름진 음식이 부족해서 기력이 떨어지면 전을 부쳐 드신다. 봄에 여린 가죽 잎을 전으로 부쳐 허기진 체력을 보충하는데, 가죽 나물은 전뿐만 아니라 장아찌와 부각, 채수 등 사찰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식재료이다.
찰밥과 미역국은 한 달에 2번 삭발하는 날 ‘골을 메운다’며 기를 보양하는 공양이라 하였다. 사찰음식들의 섭식은 제각기 소임을 가지며, 신체뿐 아니라 마음을 위해 공양되고 있다. 사찰음식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양은 국수이다.
운문사에서 국수를 ‘성소’라고 칭하는 것은 ‘국수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난다’라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다. 어른스님들의 국수사랑은 남다르다. 출타했다가 공양 때를 놓치고 사찰에 돌아오게 되면 “밥이 남았느냐”고 물으시고, 없다고 하면 국수를 하라고 하실 정도다.
그러나 ‘점심공양에 국수를 먹었다’고 하면 내심 서운해 할 정도라 하였다. 신세대 학인들은 ‘라면 한 그릇’이면 병도 털어낸다고 할 만큼 면 음식에 대한 선호가 높다.
사찰음식 내 면문화가 국수에서 라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운문사 방문일의 점심공양은 흑미밥과 만둣국, 김장아찌와 샐러리장아찌, 김치가 기본 찬으로 공양되었고, 느타리버섯과 감자, 딸기가 계절 찬으로 공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