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으로 마련하는 공양의 기본음식은 저장식품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각종 부식의 채소들이 산이며 청암사 주변의 공터에 널려 있지만 겨울철 청암사는 눈과 추위로 부식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찰에는 장아찌가 많다.
장아찌는 저장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밥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에서 발달한 주요 부식이다. 사찰음식 문화의 대표적인 장아찌음식은 공양간의 비상음식으로 물류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험지의 사찰에 현실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이다.
수확이 왕성한 봄, 여름, 가을철 잉여농산물을 장아찌로 저장해두면 부식 걱정은 덜 수 있다. 공양의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좋은 도구이다.
과한 것을 과하지 않게 하고 부족한 것을 부족하지 않게 하는 장아찌는 공양간의 균형을 맞춰주고 소식小食의 실천을 이끌어 낸다. 스님들은 새벽예불을 마치고 아침은 죽으로, 점심은 밥으로 발우공양을 한다.
발우공양의 의미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 평등공양’ ‘철저히 위생적인 청결공양’ ‘낭비가 없는 절약공양’ ‘공동체의 단결과 화합을 고양시키는 공동공양’을 일컫는다. 발우공양의 ‘발’은 '적당한 양을 담는다’는 뜻이고 ‘우’는 ‘밥그릇’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양을 그릇에 담는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알고 과하지 않게 절제한다. 사찰에서의 셀프공양도 자신에 대한 이해와 절제를 실행하는 하나의 장으로써 스님뿐만 아니라 일반신자들에게도 지침이 되는 규율이다. 스스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덜고 남김없이 비우는 것이 원칙이라 셀프배식에도 스님들은 밥 한 톨 남기는 법이 없다.
청암사의 일반 신도를 위한 점심공양으로 상추무침과 된장에 박은 깻잎장아찌, 고추전, 오이와 무, 당근, 고추가 들어간 챗국, 표고버섯찜, 오이무침, 김치. 시래깃국이 점심공양으로 올려졌다. 표고버섯은 민둥하고, 챗국도 양념이 없다.
고추전도 밀가루 옷이 최소한 걸쳐져 있다. 시래깃국도 된장으로만 간을 맞추었다. 식품의 자연적인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음식이 된 것이다. 맛을 위해 인위적으로 첨가하고 모양을 위해 다듬고 가꾸는 치장이 부질없는 허위임을 깻잎장아찌 한 장을 입에 담는 순간 깨닫는다. 이보다 더 맛있을 수는 없다.
청암사의 점심공양처럼 스님들도 꾸밈없는 실체, 참 모습 그대로 직선적으로 말을 하는 것이 수행의 단련인 듯하다. 일상에서 누군가로부터 “밥값 해라”란 말을 들었다면 무척 많이 서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청암사에서 “밥값 해라”라는 말은 애정이 담긴 꾸지람이다.
꾸지람도 관심이 없으면 하지 않는 법. “게을리 하지마라” “너는 충분히 할 만하다” 그런 격려의 밥값이다. 밥만 축내는 비렁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아닌 진실로 수행정진을 구하라는 수행자의 간절한 염원이 느껴지는 한 말씀이다. “밥값하고 있느냐.’
♣ 청암사 점심공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