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은 인도에서 불교가 발상할 당시 상가에서 연원한다. 상가는 승려의 수행집단으로 共同體를 의미한다. 그 후 수행과 예불 공간인 石(奇)로 그 유형이 성립되고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관청 시설인 寺가 먼저 예불, 수행 공간이 되면서 寺院으로 칭하게 되었다.
사원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예불을 위한 佛地영역과 승려들이 수행과 생활공간인 강당과 요사 등이 성립되면서 僧地공간이 들어서고 이를 지원할 俗地시설도 성립되었다. 禮佛과 修行생활에 필요한 음식의 조달을 위한 부엌공간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를 뒷받침할 경제기반도 국가나 세속 개인의 布施로 갖추어졌다. 이를 관리할 조직도 성립되었다. 이러한 배경 하에 승려의 수행과 공동생활, 세속인의 사원과 맺은 발원과 불사, 국가의례로서 정기적인 불교의례 등 음식 문화의 다양한 발전이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원은 건립 주체의 사상적 배경이 작용되어 그 立地가 정해 진다. 신라 불교 수용기에는 기존 신앙을 대체하려는 의도와 불교와의 인연을 강조하려 하였다. 통일기에는 새로운 왕실의 권위를 위해 成典사원이 건립되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血族기반을 다양화하려는 의식이 작용되었다. 이처럼 사원의 입지는 당시 사원 건립을 주관한 집단의 이념이 작용되고 불교 敎團의 성향에도 영향을 받았다.
사원에는 승려들의 수행과 생활을 위한 생활시설을 갖추었다. 신라, 고려시기까지 승단 규모와 사원수는 당시 인구와 대비하면 비중이 컸다.
하지만 조선시기에는 척불로 크게 위축되었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승군의 활동으로 다시 불교계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되어 활기를 다소 회복하였다. 일제시기 일본불교의 진출에 자극받아 다시 승단이 개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