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슬이 마르기도 전인 이른 아침 차나무의 어린 새싹을 일일이 한 잎 씩 딴다. 전통적인 한국의 차 제조법은 아홉번 찌고 아홉 번 말리는 구증구포(九蒸九曝)다. 첫 번 덖을 때와 마지막 9번째 덖는 일은 특히 차의 향을 좌우한다. 지나치게 볶으면 쇳내가 나고 덜 볶이면 풋내가 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얻은 차 잎은 손이 간 정성에 비하면 양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 귀한 차를 부처님 전에 올려 감사하고 스님들이 수행 중에 혹은 손님들과 함께 귀하게 마시게 된다. 차 한 잔의 향기는 그렇게 널리 퍼진다. 역사 깊은 절 뒷산에는 차나무가 많다.
오래전 스님들이 씨앗을 뿌려 길러낸 것들이다. 세월이 흘러 야생화 되었지만 매년 봄이면 싱그러운 새싹을 아낌없이 피어낸다.
♣ 차(茶)와 선은 하나
차는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전해졌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외국에서 수입하여 절이나 왕실에서만 마실 수 있는 귀한 것이었지만 차나무를 심어 기르면서 점차 민간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불교가 융성하던 고려시대를 거치며 차에 대하여는 중국 못지 않은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의순 선사이다. 한국 차문화(茶文化)의 중흥조이며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로 불린 초의선사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一枝庵)에서 열반했다. 스님이 계시던 일지암은 지금도 차에 조예가 깊은 스님으로만 암주를 계승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스님이 지은 「동다송」은 해거도인 홍현주(海居道人 洪顯周)가 초의 선사에게 차에 대해서 묻자 지어 보낸 글로서 동다(東茶)라는 말은 동국(東國) 또는 해동(海東)의 차, 즉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를 말하며 이것을 게송(偈頌)으로 읊었다고 해서 동다송이라고 했다.
이 동다송에서는 차를 즐겨 마시라고 권하며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로 차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좋은 약과 같은 것이니 차를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둘째로 한국 차는 중국차와 비교해서 약효나 맛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육안차(六安茶)의 맛이나 몽산차(蒙山茶)의 약효를 함께 겸비하고 있다. 셋째로 차에는 현묘(玄妙)하고 지극(至極)한 경지가 있어 다도(茶道)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초의 선사는 다론(茶論)에서 ‘8덕(八德)을 겸비한 진수(眞水)를 얻어 진다(眞茶)와 어울려 체(體)와 신(神)을 규명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고 나면대도(大道)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차를 통해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바라밀(婆羅密)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니 선을 통한 깨달음과 다를 바가 없다는 극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