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에서의 소중한 경험
상채공 스님들은 5인조로 구성이 되어 3박4일 동안 소임을 행하였다. 상채공 기신반, 중상채공 사집반, 중하채공 사집반, 김소중한 경험 치채공 치문반, 상 놓는 채공 치문반으로 구성이 되었고, 3일 등안 한방에 함께 있으면서 서로 격려하며 상하반의 소임을 이행하였다.
채공들은 170명의 대중을 위한 음식 준비하는 일을 담당하였기에 항상 긴장하였으며 원주 스님, 별좌 스님, 공양주와 상의를 해서 공양 준비를 하였다. 채공들은 3일 동안 긴장을 하며 소임을 살았기에 누구보다도 친숙해지고 서로를 챙기는 선후배가 되었다.
한편 강원 생활이 익숙해지다 보면 윗반이 아랫반을 알고 또 아랫반이 윗반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서로 일을 빠르고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길 원하고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채공의 조 편성으로 인해 그 한 철의 희비가 엇갈리기도 하였다.
채공 소임의 마지막 날 아침에 다음 조 스님들에게 인수인계를 한 후 전원 산행을 하며 피로를 풀었다. 이때는 입선 시간까지 오면 점심 발우공양에 불참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며 과일과 차 등을 원주 스님께 받아 산행 중에 먹을 수 있었다. 한 철에 한 번 정도 상채공이라는 소임이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두 번 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신반이 된 봄철, 나에게 마지막 소임으로 상채공을 살아야 하는 차례가 왔다. 상채공을 살던 중간 날에 별좌 스님이 취가 들어 왔다면서 아침 발우공양상에 취나물 반찬을 내라고 하였다. 억센 취였기에 채공들이 서로 의견을 내어 잘 삶아서 무쳐 내야 했다.
새벽에 국을 먼저 올려놓고 취나물을 삶아 한번 행구어서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나물은 썰지 않아야 맛있다고 하나 발우공양에서 음식의 길이가 너무 길면 공양 시간이 끝난 후 바로 윗반 스님들께 경책을 받았다. 대중을 생각하는 그 마음이 음식에 스며져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다.
다음으로 취나물 무칠 양념을 만들어야만 했다. 간장, 참기름, 다진 풋고추, 깨소금을 넣고 간을 보니 2퍼센트가 부족했다. 만든 양념을 취나물에 넣고 무쳐도 맛이 나지 않아 고민을 하다가 매실청을 넣었다. 이렇게 취나물 무침을 완성하여 상놓는 채공에게 올려 주어 발우공양으로 들어갔다.
아침 공양이 억센 취나물 무침에 대한 경책 없이 조용하게 끝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반스님들이 나와서 다 나에게 “좋겠어!”라며 한 마디씩 하였다. 상반 스님들도 어깨를치면서 엄지를 치켜 올렸다. 경책만 안 돌아오면 다행인 상채공인지라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반 스님들은 오늘 학장 스님께 칭찬받았으니앞으로도 계속 맛있는 공양 부탁한다고들 하였다. 아침 발우공양에서 모든 대중이 공양을마치고 어른 스님의 말씀을 기다리는데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가 제일 어른 스님이신 일초학장 스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동학사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이렇게 맛나게 무쳐진 나물은 처음 먹어 본다.” 칭찬에 인색한 어른 스님의 말씀에 학인들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갔다. 난 마음속으로 학장 스님 고맙습니다. 아! 내가음식에 남다른 재주가 있나? 란 생각을 하였다. 대중 속에서 한 개인을 칭찬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억센 취나물 무침에 대한 학장 스님의 칭찬은 내가 사찰음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숙연해지 던 능이버섯 다듬기
사집반이 지나고 또 봄철이 지나고 여름철도 지나서 가을철의 별좌 소임을 맡았다. 전 대중의 밑반찬과 별식을 해야 하는 중소임이었다, 후원의한 철 소임 가운데 대중의 음식을 전담하는 소임은 원주 소임과 상별좌, 하별좌의 소임이 주어지며 이루어졌다.
가을에는 많이 거두어들이는 소임이기 때문에 사중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많이 썼다. 유난히 가을비가 많이 내리던 날, 절의 거사님이 산에서 따온 능이버섯을 향적실에 두었다고 소리쳤다. 능이버섯이 어떤 버섯인가는 일찍이 은사스님에게 듣고 보았는지라 1초를 다투면 안되는 약재이기에 원주 스님과 함께 향적실로 가보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 있었다.버섯 가운데 왕이요, 스님들의 감기약이기도 한 아주 중요한 약재이기에 환희심을 내어 다듬어 손질하려고 보니 비가 많이 온탓인지 유난히 벌레들이 많이 보였다. 오동통하게 살이 쪄서 밖으로 기어 나오는 놈들이 많아 난 빨리 손질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손이 하나라도 아쉬운데, “이 일을 우짜노!” 원주 스님은 징그럽다고 달아나 버렸다. 별좌 스님과 함께 살아 있는 벌레는 털어 버리고 흙이 많이 있는 부분도 떨어내고 가마솥에 물을 부어 바로 데쳐 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능이를 데칠 때 보이지 않았던 많은 벌레가 함께 데쳐질 수도 있어서 나무아미타불을 얼마나 불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벌레를 다 살리기엔 역부족이 었다.능이버섯은 어느 것 하나 버리면 안 된다고 들었기에 데쳤던 물을 사용하기 위해 버섯과 같이 데쳐진 벌레를 물에서 다 건졌다. 데쳐낸 버섯 속에서도 벌레를 없애는 일을 저녁 늦게까지 하였다. 새벽에 상채공 스님에게 능이버섯을 많이 넣어 무와 콩나물과 함께 끓이라고 보내 주었다.
아침 발우공양이 끝나고 스님들이 능이버섯국을 많이 드셨기에 다른 날보다 남은 국이 없다고 하였다. 국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능이버섯이 그만큼 귀하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발우공양시간이 끝나면 채공들은 그날 무슨 찬을 대중이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해 했다.
국을 제일 많이 먹었다고 하여 능이버섯을 손질한 나로서는 무탈함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능이버섯국을 맛있게 먹었다고 한 도반 스님들의 인사에 나는 능이버섯에 벌레가 어마어마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때 물에서 건져 올린 벌레가 한 소쿠리는 되어 산에 가서 묻어 주었고, 버섯을 함께 손질한 스님과 기도를 하고 내려 왔었다.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도 숙연한 일임을, 하물며 수많은 생명이 내 손에서 뜨거운 물에 데쳐진 사건은 대중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기억될 일이었다. 능이버섯은 대중들에게 몸을 위한 음식의 귀한 재료이지만 난 지금도 능이버섯을 먹지 않는다.
드물고 귀하기 때문에 끌리는 음식보다 된장국에 콩밥처럼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처럼 늘 함께할 수 있는 음식들에 감사했다. 대중의 발우공양은 스스로 숙연해지는 수행의 한 과정으로 공양의 준비 또한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강원 생활을 하는 동안 공양 준비와 나눔을 위해 대중들과의 화합, 어른 스님들의 가르침이 수행자로서의 여법함을 갖추게 하였다.
그 여법함은 큰스님도 작은스님도 갓 들어온 행자도 똑같이 나누어 먹으며, 도를 이루게 하는 음식을 만들게 하고 있다. “저마다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생긴 모양이 다르고 주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나물을 하나 무치는 것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고 자신의 습관이 들어가 대중을 헤아리는 마음을 내지 못한다. 고집과 아상을 없애고 대중을 먼저 생각하고, 음식 속에 만드는 이의 섬세함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어른 스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