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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5. 여름철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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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소림사 여거스님

♣ 세검정 언덕 바지 아름다운 절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이토록 가까이에 좋은 사찰이 있어 아름다운 절 도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나가다 “저기 절이 있네?”라고 하곤 잊어버리기 일쑤다. 어떤 산도 올라오지 않는 자에게 그 산의 매력을 보여주는 법은 없다. 절도 마찬가지. 가봐야 비로소 그곳의 아름다움과 향기로움을 알 수 있다.

소림사가 그랬다. 전화로 위치를 들었을 때는 이곳이 늘 보던 그 절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찾아가서야 “아, 이곳이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상명대학교 왼편의 산중턱, 제법 가파른 언덕길 위에 앉은 자그마한 사찰은 북한산 자락의 맥을 등에 업고 백악산과 인왕산의 상서로운 풍광을 눈앞에 뒀다.

누구나 이 자리에 오르면 “아니, 여기 이런 절이 있었어?’라고 감탄할 만한 그런 절이다. “오랜만이네요.” 옥동식 셰프의 반응은 달랐다. 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했던 1993년부터 1998년까지 그는 세검정 인근의 부대에서 근무했다고. 종종 지나다니며 보던 절이라 생소하지 않다고 했다.

되레 반가운 표정이었다. 절 마당에 서서 익숙했던 동네 모습을 둘러보며 뇌리에 꼭꼭 담아두는 듯했다. 절은 그자리 그대로지만 대학가가 되어 버린 주변은 낯설게 다가온다는 게 그의 감회다. 옥 셰프는 “도심에 있는 사찰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환경의 한계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세검정 소림사
<세검정 소림사>

소림사는 그 유명한 중국의 숭산 소림사와 같은 이름이다. 그런 이름이 붙은 기원부터 중국 소림사의 명칭을 따왔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 절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행적에 그 시원을 기대고 있다. 조선을 건국 하기 전 이성계는 얼마나 큰 염원을 품었던지 전국 곳곳에 머물며 기도를 올린 흔적을 남겼다.

소림사가 있는 이 자리 역시 이성계가 기도를 올려 개국의 뜻을 이뤘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 자리에 1396년, 그러건한 인물은 혜철 스님으로, 창의문 밖에 관음보살을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한다. 선조 때는 이곳에서 수륙재도 설행했다.

수륙재는 절집 모든 의식의 종합판으로 이뤄지고 몇날 며칠을 이어서 행하는 것임을 상기했을 때 소림사는 당시만 해도 결코 작은 사찰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817년(순조 17년)에는 관해 스님이 중건하면서 소림사로 명칭을 바꿨고, 1913년 두삼 스님의 대방 불사가 있었다.

1933년에는 칠성각, 1935년에는 대웅전, 1942년에는 대방과 산신각을 각각 용호 스님이 중수했다. 근래에는 비구니 도량으로 1979년부터 2003년 사이에 혜윤 스님의 원력으로 중창불사를 행하고 지금에 이른다. 소림사는 규모가 큰 사찰은 아니지만, 나름의 내력과 서울이 숨겨둔 비경을 끌어안은 사찰이다.

♣ 요리사가 사찰음식을 배워 야 하는 이유

1933년에는 칠성각, 1935년에는 대웅전, 1942년에는 대방과 산신각을 각각 용호 스님이 중수했다. 근래에는 비구니 도량으로 1979년부터 2003년 사이에 혜윤 스님의 원력으로 중창불사를 행하고 지금에 이른다. 소림사는 규모가 큰 사찰은 아니지만, 나름의 내력과 서울이 숨겨둔 비경을 끌어안은 사찰이다.

오늘 옥 셰프와함께 할 분은 여거 스님이다. 스님은울진 불영사를 본사로 오랜 시간 사찰의 음식문화를 익혀온 전문가다. 소림사에 도착했을 때 스님은 분주하게 음식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리 채수를 만들어 두고 음식에 쓸 식재료를 준비하느라 바빴다.

“여기 이런 절이 있는지 아셨어요? 보통은 잘 모르고 있다가 한번 와보곤 경치에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이곳은 절이 크지는 않지만 텃밭도 만들어서 직접 필요한 식재료를 거둬 먹는 곳이에요. 소박한 곳이지만 아름다운 곳이에요. 종종 놀러 오세요.”

옥동식 셰프는 챙겨온 조리복과 칼 가방을 들고 공양간으로 들어섰다. 한 번에 스무 명 정도가 나눠 앉아 공양을 할 수 있을 법한 자그마한 공양간이다. 오늘 만들 음식은 역시 세 가지. 감자보리밥과 호박만두, 그리고 도토리묵밥이다. 스님과 옥셰프가 한 공간에 마주 서서 인사를 나눴다.

여거 스님은 진짜 요리 전문가가 함께 있으니 적잖이 긴장된다며 수줍게 웃었다. 하지만 사찰음식이라는 분야에서는 스님이야말로 전문가. 사찰음식에 대한 둘의 생각을 물었다. 사찰음식이란 무엇인가? 스님은 지체 없이 답을 주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노라고.

여거 스님과 옥동식 셰프
<여거 스님과 옥동식 셰프>

“사찰음식은 화려한 음식이 아니에요. 그때그때 나오는 식재료를 잘써서 만들어 먹는 음식일 뿐이죠. 우리 고유의 음식이 대체로 그렇듯이 소박하게 만들어 먹는방식이 사찰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대해서는 옥동식 셰프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사찰음식이 특별한 음식이긴 하지만 그건 레시피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사찰음식은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리어 이제는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옛 조리법이나 메뉴가 사찰음식에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메뉴의 독특함이나 레시피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관과 철학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요리사에게는 사찰음식이 더욱 중요하다. 옥 셰프는 과거 사찰음식을 잠시 공부했던 바 있다. 스님을 만나 사찰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 과정을 함께 진행하면서 이해도가 높았던 이유는 과거의 경험 덕택이다. 그는 요리사라면, 특히 우리 음식을 한다면 사찰음식은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찰음식이 우리 음식의 기본에 충실하고 재료의 특성을 잘 살리기 때문이다. 식재료를 다듬는 과정에서 칼질을 할 때 다듬기나 썰기를 할 때는 허투루 하는 게 아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사찰음식을 배우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을 터득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옥동식 셰프가 사찰음식 클래스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요리사를 대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요리사가 바뀌어야 식문화가 바뀌고, 차츰 일반 가정의 식문화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혼밥족이 빠르게 증가하고 집밥을 먹는 것보다 매식을 선택하는 비중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요즘 세태에 대중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건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 간단하지만 재료를 살리는 요리

간단하지 만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제일 처음 선택한 요리는 과정이 간단하되 밥을 재료를 살리는 요리 짓는 시간이 필요한 감자보리밥이다. 스님은 감자밥을 하면서 찰보리와 맵쌀을 섞어서 준비했다. 일반적으로 보리만 넣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맵쌀을 넣었을 때 씹는 식감이 훨씬 살아나는 느낌이 좋아서 스님은 보리와 맵쌀을 섞어 쓰는 편이라고 했다.

여름은 햇보리가 나오는 계절. 식재료는 제철에 나온 게 가장 맛있는 법이다. 밥과 함께 넣을 감자는 조금크게 썰어서 전분을 씻어내는 편이 좋다. 전분을 제거해야 팬에 달라붙지 않고 텁텁한 뒷맛이 덜하다.

호박만두도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애호박과 당근, 표고버섯만 있으면 되고 준비과정도 간편하다. 보통 만두를 만들 때는 재료를 다져서 쓰는 경우가 많지만, 스님은 가늘게 채를 썰어서 속을 만든다. 애호박이나 당근은 익은 후에 식감이 무른 편이라 씹는 맛을 더해주고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주기 위한 선택이다.

다진 소를사용하면 찐 후의 색도 탁해지기 마련이다. 호박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옥동식 셰프의 화려한 칼질이 시작됐다. 스님은 사찰 공양간에서 배운 칼질보다는 매일 치열하게 현장에서 연마한 칼질이 훨씬 나을 거라며 옥 셰프에게 만두소의 손질을 부탁했다. 칼가방에서 애용하는 본인의 칼을 꺼낸 옥 셰프의 칼놀림이 일정한 장단을 형성한다.

옥동식 셰프 썰기
<옥동식 셰프 썰기>

다다다다다다, 속도와 빠르기를 일정하게 예리한 칼날이 도마에 부딪히자 그 소리가 타악기 연주 못지않다. 옥동식 셰프의 칼솜씨는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그의 가게 ‘옥동식’에서 곰탕을 낼 때도 아주 얇게 채를 친 쪽파가 올라가는데, 쪽파의 가늘기와 채를 쳤음에도 아삭함이 살아 있는 치감으로 많은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남보다 늦게 시작한 요리지만, 옥동식 셰프는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왔다. 쉬는 날에도 칼 쓰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산에 올라 잡풀이나 나뭇잎을 뜯어서 다양한 칼 기술을 연마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채를써는 과정에서도 서로 다른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당겨서, 초반부가 지나면 밀어서. 모든 선택에는 이유가 있는 법. 처음에는 식재료가 흐트러지기 좋아서 당겨 썰며 모양을 유지하고, 어느 정도지나고 나면 겹쳐 놓은 재료의 두께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밀어가며 썬다. 그 칼놀림에 스님이 연신감탄을 터뜨렸다.

♣ 요리사를 놀라게한 재료 참죽나물

손질이 끝나면 소금과 후추를 넣고 살짝 볶아서 만두피에 넣어주면 준비는 끝난다. 그 다음에는 10분 정도 쪄주기만 하면 된다. “저는 다 찐 만두에 참기름을 발라줘요. 그러면 서로 들러 붙지도 않고 만두피의 쫀득함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거든요.

한 번에 만두를 많이 만들었다가 냉동실에 얼려두면 언제든 필요할 때 꺼내서 익혀주기만 하면 돼요. 한 번 찐 상태의 만두는 얼렸다가 녹여도 그 모양을 유지하지만 익히지 않은 밀가루 피 상태의 만두는 얼렸다가 녹이는 과정에서 터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소소하지만 아주 유용한 노하우예요.” 여거 스님은 불영사에 있을 당시 먼 곳에서 오는 손님을 위해 늘 만두를 준비해 두었다. 식사를 하지 못하고 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스님의 만두는 당시부터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마지막 요리는 도토리묵밥이었다. 맛있는 채수만 있다면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스님은 여기서도 본인만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채수를 만들 때 말린 참죽(가죽나물)을 함께 넣는다는 것. 일반적으로 다시마나 표고버섯으로 향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참죽이 더해지면 채수의 맛이 훨씬 풍부해진다.

옥동식 셰프 시식
<옥동식 셰프 시식>

옥동식 셰프는 여거 스님이 만든 채수의 맛을보고 깜짝 놀랐다. 참죽나물이 마치 소고기의 감칠맛과 같은 효과를 내고 채수 전반의 밸런스를 무겁게 잡아주고 있다며 놀란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거 스님이 준비한 요리 세 가지를 다 하는 데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불과 한 시간 반 남짓이면 족했다.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하나씩 맛본다. 감자보리 밥은 담백하고 보리알 하나하나에 고소한 맛이 들어찼다. 호박만두는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신선함이 있었다. 무겁지 않은 경쾌한 맛이 자꾸만 젓가락을 부른다. 애호박과 당근은 각자의 단맛이 잘어우러지고 그 사이의 빈 공간은 표고버섯의 향이 채워주고있었다.

스님이 직접 도토리를 줍고 쑤어서 만든 차진 묵은 향긋하고 새콤한 채수에 담겨 여름날 먹기 좋은 훌륭한 한 끼식사가 됐다. 여거 스님의 음식은 화려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스님은 돌아가는 일행의 손에 이것저것 들려주었다. 손수 찌고 말려서 만든 유자, 무차 같은 귀한 것을 거리낌 없이 담아 나눠주신다.

푸근한 절집 인심에 드린 것 없어 받기만 하니 송구하면서도 감사한 마음 한 가득이다. 가파른 언덕 위에 서서 다시 세검정 풍경을 돌아본다. 그 새 뒷산 너머로 해가 저물어가며 오렌지 빛 노을이 하늘을 천천히 물들이기 시작했다. 서울 하늘 아래서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할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 절 소림사에서 보낸 하루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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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대한불교조계종 •동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심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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