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우
발우는 네 개나 다섯 개로 짝을 이루며 크기가 조금씩 달라 차곡차곡 포개 놓으면 그대로 하나가 된다. 제일 큰 발우는 ‘어시발우’라 하는데 그곳에는 꼭 공양(밥)만을 담는다. 그 다음 크기의 발우는 ‘국 발우’, 다음이 ‘천수 발우’, ‘반찬 발우’ 순서로 이루어진다. 또는 제일 큰 발우를 ‘불(佛) 발우’ 다음을 ‘보살 발우’, ‘성문발우’, ‘연각 발우’라고도 한다. 다섯 개로 이루어진 발우에서 가장 작은 발우는 지옥, 아귀, 아수라에게 공양하기 위한 발우로써 ‘시식 발우’라고 하는데 자주 쓰이지 않는다.
스님들의 공양태도는 극히 조용하다. 그래서 엄숙하기까지 하다. 입안에 식물(食物)이 들어가면 그 식물이 보이지 않도록 입을 꼭 다물고 씹는다. 훌훌거리거나 쩝쩝거리지 않고 우물우물 씹어서 삼킨다. 그렇다고 잘 씹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오래 씹되 조용히 씹고 숟가락 젓가락 소리가 없어야 하고 발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극히 위생적이다. 발우는 자기 발우를 사용하고 또 자기 손으로 씻어 먹는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넣은 집이 천으로 되어 있고 발우 보자기와 발우닦개가 있어서 식사도구에 먼지 같은 건 침입할 틈이 없다. 발우닦개는 며칠 안에 빨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다. 발우는 가사와 함께 언제나 바랑 속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그래서 몇 대를 물린 발우도 있다. 대를 거듭한 발우일수록 권위가 있다.
♣ 산사의 발우 공양
발우 공양은 아주 단순한 식사법이다. 크고 작은 네 개의 그릇에 밥과 국과 반찬과 물을 나누어 담는다. 밥에 욕심내면 반찬이 부족하고 반찬에 욕심내면 밥이 부족해 나중에는 짜디짠 반찬만을 먹는 곤욕을 치른다. 딱 필요한 만큼만 받아 남기지 않고 다 먹는 것, 이것이 발우공양의 요체다.
먹고 난 뒤에 아무 것도 버리는 것이 없기에 발우공양은 가장 친환경적인 식사법이다. 수십 명의 발우를 헹궈 낸 천수물이라도 맑기만 하다. 바로 먹고 바로 헹구기 때문에 더러움이 붙을 틈이 없다. 주기적으로 태양볕을 쬐어 소독하므로 일반 설거지 이상으로 훨씬 위생적이다.
♣ 발우공양의 순서와 방법
1. 죽비를 세 번 치면 합장한 뒤 발우를 편다.
2. 발우단(발우 깔개)을 펴고 발우를 꺼내어 차례로 놓는다.
3. 죽비를 한 번 치면 소임자들이 청수, 밥, 국, 반찬 순서로 음식을 돌린다. 제일 처음 받은 청수로 발우를 순서대로 헹궈 내 천수 그릇에 담아 놓고 음식을 발우에 담는다.
4. 죽비를 한 번 치면 어시발우를 높이 들고 봉발게를 외운다. 다음 죽비 소리에 발우를 내려놓고 오관게를 외운다.
5. 배고픈 모든 중생에게 밥을 나누는 의미로 약간의 밥알을 따로 놓는 헌식(獻食)을 한다. 죽비를 한 번 치면 출생게를 외운 뒤 헌식기가 돌면 떼어 놓은 밥알을 담는다.
6. 죽비를 세 번 치면 합장한 후 공양을 시작한다. 공양할때는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며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먹는다. 나중에 발우를 닦기 위한 김치 한 쪽은 반드시 남겨둔다.
7. 죽비를 두 번 치면 식수를 돌린다.
8. 공양이 끝나 죽비를 한 번 치면 소량의 물과 함께 김치 한 쪽을 이용해 빙글빙글 돌리면서 발우 안쪽의 음식 찌꺼기를 닦는다. 다 닦으면 김치를 먹고 발우 닦은 물은 마신다.
9. 죽비를 한 번 치면 청수를 이용해 다시 발우를 닦고 헹군다. 퇴수 걷는 스님이 청수를 걷을 그릇을 들고 오면 퇴수를 가만히 붓는다. 이때 그릇 밑바닥에 가라앉은 찌꺼기는 남겨서 마신다.
10. 죽비를 한 번 치면 절수게를 외운다. 발우수건으로 수저와 발우의 물기를 닦고 발우를 처음처럼 묶어둔다.
11. 죽비를 한 번 치면 공양을 마치는 식필게를 외운다.
12. 죽비를 한 번 치면 발우를 들고 일어서서 선반에 발우를 올리고 죽비를 세 번 치면 마주보고 합장 반배하며 공양을 끝내게 된다.
♣ 발우 공양에 담긴 뜻
평등(平等)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똑같은 밥과 반찬을 대중이 차별 없이 나누어 먹는다.
청결(淸潔)
늘 깨끗하게 관리한 개인 발우, 각자 먹을 만큼만 덜어 먹는 식사예절이 깨끗한 발우공양의 모습이다. 오직 죽비소리에 맞춰 공양 절차를 밟을 뿐 말없이 고요하니 인적 그친 산마루에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 같다.
청빈(淸貧)
자신이 받은 음식은 양념 한 조각 조차 남기지 않는다. 마지막 그릇 씻은 물까지 먹음으로써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생태주의 사상도 깃들어 있다. 여럿의 발우를 헹군 물조차 수행자의 마음처럼 티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하다. 맑고 잔잔한 물그릇에 천정에 붙여 놓은 천수다라니(千手陀羅尼)가 뚜렷하게 비추니 천수물이라고 부른다.
공동체(共同體)
대중 스님이 같은 곳에서 같은 때에 한 솥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들어 공동체를 확인한다. 공양을 마친 자리에서 절의 크고 작은 일을 논의하고 결정하니 민주주의 정신도 담겨있다.
복덕(福德)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생한 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하니 늘 복을 짓고 덕을 쌓는 복덕 사상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