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생활
완고하게 전통을 지켜온 절 집안의 보수적인 생활방식이 요즘 들어 비로소 재조명되고 있다. 건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절 집안의 생활방식이야 말로 그들이 추구하던 웰빙의 모범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되돌아 살펴보니 불교적 생활방식이 가장 우수한 생활방식 이더라는 것이다.
첫째는 식재료와 조리법이 특별하다. 절에서는 음식을 가려먹는데, 살생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채식중심의 식단이 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수행자는 돈 주고 사야만 하는 비싼 식재료를 식탁에 올리기 어렵다. 근처에서 직접 뜯어온 산나물과 스스로 기른 채소로 반찬을 만들고 직접 담근 장으로 만든 된장찌개를 주로 먹는다.
성인병과 비만의 원인이라는 육식이 없을 뿐 아니라 각종 화학첨가제와 조미료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 식단이야말로 요즘 사람들이 비싸게 돈 들여 사먹는 유기농 웰빙 식단보다 더 좋지 않은가? 그래서 절에서 먹듯이 집에서 먹으면 웬만한 병은 물리칠 수 있다.
둘째는 욕심을 버리는 마음가짐이다. 불교 건강식의 요체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음식을 놓고 영양을 따지고 맛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깃들어 모든 이의 정성을 감사하는 것이 사찰 식사법의 핵심이다. 그렇게 먹게 되면 무엇을 먹어도 건강식이 되고 맛있는 음식이 된다.
셋째는 맛있게 먹는다. 사람들이 절밥을 맛있게 여기는 까닭은 단순하다. 특수한 음식재료나 요리 방법에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 맑은 산길을 땀 뻘뻘 흘리며 걸어 올라와 시장한 속에 식사를 하기 때문이다. 빈속에는 맨 밥에 간장만 비벼 먹어도 맛있다. 무공해 나물까지 곁들이면 당연히 꿀맛이지 않을까?
♣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
민중의 화려하지 않고 질박한 음식문화는 사찰음식 속에 면면히 이어진다. 조선왕조 5백년의 억압 속에서 불교는 가장 낮은 민중 속에서 살아 남으며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국가적 수탈과 박해 속에서도 수행을 이어온 불교는 민중들의 얼마 안 되는 보시와 주변 산과 들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이용하는 지혜를 발달시켰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때 풀과 나무껍질까지도 이용한 민중들의 생존지혜는 사찰로 이어지고 사찰에서 쌓은 생존의 지혜는 민간으로 다시 전파되었다.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을까?”하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사찰음식 재료들은 이런 지혜의 결정판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현재의 사찰음식으로 정립되었다.
음식에 담긴 생명의 가치와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 화려하지 않고 검소 소박한 식탁, 그리고 수행을 제일가치로 두는 정신이다. 비록 맛과 모양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담긴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풍족하다. 직접 담근 장류와 제철 야채, 정성을 다한 조리법이 곁들여져 특별해진다.
높은 자들의 향연에 봉사하는 음식이 아니라 스스로 힘써 일한 자들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 계절에 따라 근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일상음식 문화는 사찰음식 속에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한국의 전통문화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변화 되면서 농경사회의 지혜는 대부분 단절되었다. 주요 식품들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시장에서 유통된다. 장을 담고 김치를 만드는 어머니의 지혜가 딸들에게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여전히 우직하게 장을 만들고 김장을 담그며 예전에 먹던 나물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사찰만이 여전히살아있는 생활문화 공간으로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면서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 계절이 담긴 사찰음식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수목의 식생이 다채롭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어획량이 풍부하다. 일찍부터 정주농업이 발달하여 쌀과 여러 가지 잡곡을 많이 생산하여 왔고 채소류 등을 이용한 조리법이 다양하게 개발되었다.
또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 암각화에 호랑이와 사슴 등을 사냥하는 모습은 물론 고래를 잡는 모습까지 새겨져 있어 오랜 옛날부터 사냥과 어업이 발달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미역, 다시마, 김과 같은 해조류도 식재료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소의 경우 120여 가지로 고기 분류가 세분화될 정도로 육류와 새고기 요리도 발달하였다. 장류, 김치류, 젓갈류 등의 발효식품의 개발과기타 식품의 저장기술도 일찍부터 잘 이루어졌다. 이러한 환경과 역사 전통 속에서 한국 사찰음식은 또 다른 고유한 특징을 길러왔다.
무엇보다도 자비사상에 입각한 순수 채식과 수행을 돕는 음식이라는 특징이 강조되어온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전통음식의 장점을 나름대로 살려 사찰음식에 적용해왔다. 직접 노동하여 작물을 기르는 사찰에서는 계절의 독특한 산물을 이용하여 철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 왔다.
상업적 작물 재배가 아니라 스스로 길러 먹기 위한 자연친화적이고 생태환경적인 농업이다. 원료의 생산부터 다듬고 조리하여 먹는 모든 행위는 스님들의 수행생활일 뿐 아니라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 생태계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져 왔다.
사찰음식이야 말로 지속가능한 순환생태계를 구현하는 문명사적 사건이다. 깊은 산중의 수도처에서는 저장식품을 준비하여 긴 겨울을 대비했다. 생물을 이용한 젓갈 같은 저장식품은 사찰에 발붙일 수 없지만 채소류를 이용한 사찰만의 식품 저장 기술은 민간보다 더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사찰 저장식품으로는 각종 김치류, 된장·고추장·간장 등의 장류, 가죽장아찌·산초장아찌 등의 장아찌류를 들 수있다. 이밖에도 한국 사찰에서는 초절임·소금 절임·장절임류 등 다양한 저장식이 발달했으며, 사찰마다 지역의 흔한 재료를 이용해 독특한 저장식품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저장식품은 영양소의 파괴 없이 오랜 기간동안 보관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며 채소만으로는 부족한 영양을 장류가 보충해주기도 한다.
♣ 천년의 지혜
친환경적 식생활, 꼬투리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활용하는 절약정신, 청수물까지 마시는 발우공양 등은 인류미래를 위해 사찰음식이 던져주는 대안이다. 수행자가 받아 사용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수행에 도움을 얻으라고 주신 시주의 은혜이기 때문에 더 없이 소중하다.
여기서 시주란 돈으로 물건을 사서 가져다 준 남녀 신도만이 아니다. 작물을 길러주신 농부들, 그 작물을 길러낸 땅과 물, 작물이 성장하도록 볕을 내려준 태양, 때에 따라 비를 내려준 구름까지도 다 그 소중한 인연을 뒷받침한 시주인 것이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말씀하셨다. 수행에 철저하지 못한 수행자는 죽은 뒤 아랫마을에 내려가 소가 되어 노동으로 시주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노동으로 손마디가 굵어진 스승이 밭에 나가 일하고 절 마당을 쓰는 것을 볼 때 어느 수행자가 감히 게으름을 피울 수 있으랴.
천년을 이어온 지혜는 경전 글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끼고 노동하는 스승님들의 평소 행동과 손짓 발걸음 하나하나에 다 담겨 있다. 사찰음식은 일반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처럼 맛이나 향, 모양을 추구하는 음식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선불교의 수행이란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黙動靜, 가고 오고 앉고 눕고 말하고 침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모든 일상생활)이 모두 수행이라고 여긴다. 비록 수행을 돕기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써 음식을 다룬다고 하여도 그것이 나의 삶과 결합되어 있는 이상 재료를 다듬고 조리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기울였다. 그럼으로써 선수행이 완성되고 사찰음식이 완성되어온 것이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려가며 풍요와 쾌락만을 추구할 때 사찰음식은 먹는다는 일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며 성찰하게 한다. 현대의 편리와 풍요로움과 결별할 각오를 다지고, 작고 소박한 처소에서 농약을 뿌리지않은 건강한 먹거리를 스스로 재배하여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이야 말로 산 속 맑은 옹달샘이 아닐까?
♣ 사찰음식의 특징
첫째,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범망경」에서는 “너희불자는 고기를 먹지 말지니 어떤 중생의 고기라도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고기를 먹는 이는 대자비의 불성 종자를 끊는 것이어서 중생들이 보고는 도망가나니, 그러므로 일체의 보살들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느니라.” 라고 가르치고 있어 한국을 포함한 대승 불교권에서는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둘째, 채소 중에서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신채(五辛菜)는 오훈채(五葷菜)라고도 하는데, 마늘(大蒜), 부추(茖葱), 파(慈葱), 달래(蘪葱), 흥거(興渠)를 말한다. 이중 흥거는 한국에서 자라지 않지만 희고 마늘냄새가 나는 채소이다.
맵고 냄새가 강하며 자극적이며 다른 음식에 곁들이면 맛을 강하게 하는 식물들로써 한번 맛을 들이면 자꾸 찾게 되어 음식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또 매운맛 때문에 혈기를 왕성하게 하여 도를 닦는 몸을 불안하게 한다. 또 몸과 입에서 냄새가 풍겨 공동체 생활에 불편을 끼치기 때문에 수행인에게는 절대 금하는 식재료이다.
셋째, 사찰음식은 영양만이 아니라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약리작용을 갖도록 세심하게 발전해왔다. 건강한 몸이어야 건강한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찰 음식에는 산중에서 자라는 약용식물이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이는 요즘 흔히 발병하기 쉬운 성인병을 예방해주는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관심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각종 식재료의 약리작용에 대한 지혜가 풍성하여 균형 잡히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단 구성에 활용되고 있다.
넷째, 천연조미료만 사용한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다시마, 버섯, 들깨, 날콩가루의 천연 조미료만 사용하여 영양상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깔끔,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다섯째, 제철 음식이 발달해 있다.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고 제철식재료를 이용함으로써 재료 구입에 따른 경제적인 부담도 경감하고 있다. 또 철이 지나도 먹을 수 있도록 장기 저장할 수 있는 지혜가 발달하여 사찰마다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형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