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과 다담에 동원된 찬품들이 철저히 육류가 배제되고 곡류와 채소류가 중심 식자재가 되어 만들어진 것은 청태종의 사망에 따른 조선정부의 배려로, 이는 임금이 최복차림으로 편전에서 접견하고 백관들이 성복례 등을행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불교 전개 거점이 되었던 중국 불교계에서는 불살생계(不殺生戒)를 오계(五戒)의 필두로 하는 교의로 하여 채식(菜食)을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5세기 초엽에 중국에 전해진 『대반열반경(大般涅盤經)』은 육식의 전면 금지를 기록한 최초의 교전(敎典)으로 되어 있고 중국에서 찬술된『범망경(梵網經)』역시 엄격하게 육식금지를 기록하고 있다.
518년경 양(梁, 재위 502~558)무제는 승려의 전면적인 육식금지를 제창하여, 불교도에 대한 불교적 윤리실천을 정치적으로 요청하기에 이르러 살생금지를 명했다. 제사 지낼 때에도 희생수 대신에 곡물, 채소, 과일 등의 사용을 명령하였다.
우란분재(孟蘭盆齋)를 공개적으로 거행하게 된 것도 이 무렵부터로 알려지고 있다.18) 백제에서 공식적으로 살생금지령을 내린 것은 성왕 19년(541)의 일이다. 왕사(王使)를 양(梁)나라에 조공한 다음 불경 등을 요청하여 가지고 온 이후19) 약 60여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다.
불교계에서 육식금지가 더욱 활성화된 것은 선종(禪宗)에 의해서 였다. 양(梁)대에 보제달마(菩提達磨, ?~528)에 의해 시작된 선종은 혜능(慧能, 638~713)과 백장대지(百丈大智, 720~814)에 의해 확립되어 선덕여왕(780-785)전후에 신라에 전파되었다.
왕즉불(王卽佛)사상이나 윤회전생사상(輪廻轉生思想)에 근거를 둔 화엄종을 대표로 하는 교종(敎宗)과 달리, 복잡한 교리를 떠나서 좌선(坐禪)을 통해 심성을 도야함으로써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주지로 삼는 선종은20) 누구나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될 수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선승(禪僧)들의 실천수행방법으로는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선정(禪定), 반야바라밀(般若波羅密), 정진(精進)이 있다. 이상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六波羅密)은 생사의 고해를 넘어 이상경인 열반세계에 이르기 위한 보살의 수행방법이다.
불도에 정진(精進)하기를 다짐하면서 몸을 청정(淸淨)하게 하기 위하여 어(魚)와 육(肉)을 피하고 해초, 곡류, 채소가 중심 재료가 되어 만들어진 음식을 정진음식(精進飮食)이라 하고 또 소선(素譜)이라고도 하였다. 어와 육을 사용하지 않는 대신 식물성기름을 많이 사용하고 곡류로서 교묘하고 아름답게 또 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 정신을 가다듬어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닦음
• 잡념을 버리고 한 마음으로 불도를 닦아 게으름이 없음
•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음
• 어육을 삼가고 채식함
해석한다면 정진생활을 위한 정진음식인 소선은 채식이 기본이 된다. 통일을 완수한 왕건은 불교,즉 제석(帝釋)세계를 이 땅 위에 실현하고자 하였다. 왕은 천사라고하는 중간자를 내세워 제석궁과 궁중 사이를 통하는 자격을 부여받고 있었다.
왕의 이승이 궁전이라면 왕의 저승은 제석천의 선견성이었다. 왕 자신은 정진생활의 실천을 통하여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하였다.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존경과 신앙의 대상이 되고 권위도 생겨나기 때문에 엄격한 정진생활을 통하여 통치하고자 하였고, 백성들의 정진생활도 강요되었다.
도살금지와 어(魚), 육(肉)을 배제한 소선(素膳)음식에 대한 권장은 농산물증산정책으로 직결되어21) 밭, 산, 논에서 생산되는 채소, 나물, 과일, 쌀, 잡곡이 정진음식을 위한 식재료가 되었다. 도살 금지에 따라 육식섭취의 금지는 채소, 나물, 과일, 쌀, 잡곡을 이용한 다양한 음식개발로 직결되었다.
고려시대의 정진음식은 농사장려정책에 따라 생산된 농산물을 재료로하여, 왕실 보호하에 사찰에서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한 결과물이다. 여기에는 공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였던 송대(宋代)의 금속제 조리기구 보급이 영향을 미쳐, 볶음음식과 튀김음식 발달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고려사절요』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정진음식을 위한 식재료는 쌀, 좁쌀, 보리, 밀, 콩, 해조류, 산채, 인삼, 메주이고, 정진음식은 죽, 떡, 국수[麵], 두붓국, 나물류, 간장, 된장, 귤, 감자, 유밀과, 차[茶]였다.
조선왕조에서 중국사신을 영접할 때「소선(素膳)」이라고 이름 붙인 연회상차림을 올린 것은 1643년 외에 1634년에도 있었다. 1643년에 차린「소선」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1634년의「소선」을 <표 1>을 통해서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