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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 배가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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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서양배와 동양배

♣ 서양배

발원지인 코카서스 지역에서 서쪽 지중해 연안, 서남아시아 등 서쪽으로 전파된 서양배는 조롱박 모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중요한 과일이다. 유럽에서 개량되어 현재 세계 생산 35%를 차지한다. 서양배의 다수 품종은 후숙을 거쳐야만 먹을 수 있고 후숙한 후의 육질은 비교적 치밀하고 부드러워지며 동양배와 달리 향기가 있다.

서양배는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과일로 여겨졌으며 그 형상은 여신의 유방에 비유되고 과즙은 비너스의 눈물로 불리었다. 진주를 뜻하는 영어단어 Pearl은 ‘여신의 눈물’이 어원이라고 하는데 배즙이 여신의 눈물로 비유되어 Pear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현재의 종으로 분화된 지역은 중앙유럽, 동유럽, 서남아시아 등지로 스위스의 석기시대 동굴 주거지에서는 얇게 저며 말린 배와 사과조각이 발견되는 등 기원전 2,000년 전에 배가 널리 재배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리스의 시인 호머(Homer)는 배가 신의 선물 중 하나로 여겨져 왕궁에서 재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역사는 3,000년 전 이전부터라고 일리아드에 기록하고 있다. 로마에서는 플라이니 디 엘더(Pliny the Elder, 23~79)시대까지 세 가지 품종의 사과만이 기록되어 있는 반면, 배는 최소 35개 품종이 재배되었다.

당시 품종들의 과실 특성은 오늘날 재배되는 것들과 비슷하다. 중세에는 중앙 유럽과 서유럽에서 배가 널리 재배되었다. Cordus는 독일의 배 품종이 부드러운 육질을 제외하고 근대 품종이 갖고 있는 과실 특성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16, 17세기까지 주요 배 생산국이었으며 신품종 육성을 주도하였다.

1628년 아마추어 과수 수집가인 Le Lectier는 정원에 254점 이상의 배 품종을 보존하고 있었고, 1800년대 초기에 약 900여 품종이 프랑스에 있었으며 대부분이 아삭한 육질을 갖고 있었다. 18세기부터 벨기에는 Nicolas Hardenpont, Jean Baptiste Van Mons 등에 의해 배 재배와 품종개량의 중심이 되었다.

벨기에 육종가들은 최초로 부드러운 육질의 과육 품종을 개발했다. 지금도 재배되는 ‘Beurre Bosc’, ‘Beurred’ Anjou’, ‘Winter Nelis’ 등은 그 당시에 육성된 품종들이다.영국은 배의 자생지는 아니지만 로마시대 이전에 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서의 상업적인 배 재배는 약 1200년대에 시작되어 1826년에는 622품종이 Royal Society of London의 상품소개 책자에 기록되어 있다. Hooker 등에 따르면, ‘Williams Bon Chretien(Bartlett)’ 은 1706년 경 실생에서 선발되었으며 1816년 까지 영국에 널리 퍼졌다.

이 품종은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주요 서양배 품종 중의 하나이며 19세기에 선발된 ‘Conference’ 역시 현재까지 비중 있는 재배품종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의 품종개량은 P. communis (일반적인 서양배)와 P. nivallis 2개 종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1800년 경 영국의 Knight는 계획교배를 시도하였지만 개량된 종의 대부분은 기존 품종의 방임수분 실생에서 얻어졌다.

19세기 후반,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 Gregor Mendel도 우수한 품질의 만생품종을 육성하기 위해 Brno에서 계획교배를 하였다. 중세 이후로는 점차 유럽 전역으로 재배가 확산되고 생활 속의 중요한 과일로 자리 잡으면서 여러 이야기 속에 배가 등장하게 된다.

16~19세기에 이르는 동안 배 품종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르로이는 1867년 900여 재배종과 3,000여 품종을 기록하면서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품종들을 언급하였다. 북미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품종 ‘Bartlett’은 1770년 영국에서 발견되어 ‘Williams Bon Crétien’이라고 이름 붙여진 품종이며, 지금도 유럽에서는 ‘Williams’라고 불리며 널리 사랑받고 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Conference, 이탈리아에서는 Williams, Cosia, 프랑스에서는 Doyenne du Commicé 품종들을 선호한다.

서양배 주요 품종
[그림 2.3.] 서양배 주요 품종

서양배의 다양한 이름들

영명(영명) Pear인 배는 앵글로색슨어족의 Pere, Peru hu 가 변형된 것으로 라틴어인 Pera 또는 Pira에서 유래

프랑스에서는 poire, 독일 peer, 덴마크 paere, 스웨덴 paron, 스페인과 이탈리아 pera로 불림(독일과 덴마크에서는 Biirne라는 단어도 쓰고 있으나 어원은 같음)

그리스에서는 야생배를 acras, 재배종은 apios라고 하였는데 플루타크 영웅전의 저자 플루타크는 야생배의 어원을 그리스의 peloponnesus반도를 의미하는 고어 Apia에서 왔을 것이라 이야기하였음

배 이름 앞에 붙은 Beurre는 Butter라는 뜻의 이태리어로 서양배의 부드러운 과육을 상징함

♣ 동양배 1.

동쪽으로 온 배는 중국의 허베이(河北)지방과 북동부, 우리나라 북부에 자생하는 산돌배로 진화하였다. 동양배는 중국(북방형)과 한국(또는 일본배, 남방형)으로 전파되었다. 중국은 유전자원의 발상지답게 세계 최대의 배 생산국이기도 하다.

세계 생산량의 67%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자국에서 생산한 배의 83%를 중국 내에서 소비하고, 생산량의 17%만을 수출한다. 즉,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배 생산국인 동시에 최대의 소비국인 셈이다. 중국배의 작물화는 약 3,30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상업적 과수원은 2,000년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배 육종은 1956년 이후에야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시경(诗经)에 「산유포체(山有苞棣),습유수수(隰有树檖); 산에는 포체(苞棣)가 있고, 습지에는 수수(树檖)가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포체가 바로 배다. 진, 한나라 시대의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货殖列传)에는 「涂山有梨大如瓜; 도산에는 멜론처럼 큰 배가 있다」 라는 기록과 한(漢)나라 유흠(劉歆)이 짓고 진(晉)나라 갈홍(葛洪)이 모은 것으로 알려진 서경잡기(西京雜記)에도 한무제가 처음 상림원(上林園)을 건조했을 때 여러 신하들과 먼 나라의 왕들이 각자 진귀한 과수나무와 진기한 나무를 헌상했는데 그 중 자리(紫梨), 청리(靑梨), 방리(芳梨), 대곡리(大谷梨), 세엽리(細葉梨), 표엽리(縹葉梨), 금엽리(金葉梨), 한해리(瀚海梨), 동왕리(東王梨), 자조리(紫條梨) 등 배나무 10종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 당시 중국이 이미 배를 중요 경제 작물로 여겨 황하 유역에서 활발하게 재배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삼진기(三秦記), 화경(花鏡) 등의 고서에도 여밀리(如蜜梨), 홍리(紅梨), 백리(白梨) 등의 배 이름이 언급되었다.

이당고(梨糖暠)
[그림 2.4.] 이당고(梨糖暠)

당 나라 재상 위정(魏征)은 어머니의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배즙에 꿀을 첨가한 후 끓여 반고체 상태로 만든 이당고(梨糖膏)를 제조하였다. 송나라 시대 매조신(梅尧臣)은 시에 “명과(名果)는 서주(西周)에서부터 나오고, 서리가 내리기 전에 마침내 수확하였네. 오래도록 이가 차고 시린 것을 싫어하고 갈증이 나면 달콤한 것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을 좋아했네. 하얀색이 옥쟁반에 보내지니, 그 달콤함이 확실히 부의주(浮蚁酒)와 서로 잘 맞네. 신선이 먹는다 하는 복숭아도 이에 비할 바 못되니, 어린 아이가 훔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네.” 와 같이 노래하며 배의 특징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였다.

한국에서는 배가 불교와 관련하여 ‘충절과 사랑’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반면, 중국에서는 배가 ‘헤어짐’을 상징한다. 이는 ‘헤어지다(离, lí)’와 ‘배(梨,lí)’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특히 배를 나누는 것을 ‘分梨(fēnlí)’라 하여 ‘이별(分离, fēnlí)’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배를 나누어 먹지 않는다.

청나라 때의 학자 기윤(纪昀)은 건륭황제(乾隆皇帝)를 모시고 민심을 살피러 암행을 나갔다. 두 사람이 길을 걷고 있다가, 배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고, 마침 목이 말랐던 기윤은 배를 하나 따서 급하게 혼자서 먹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황제는 기윤에게 “공융(孔融: 후한의 학자)은 네 살 때 배를 양보했다고 하던데, 어찌 경은 양보는커녕 혼자서만 먹는 것인가?” 하고 비난하듯 물었다.

이에 기윤은 “그럼, 배를 나누어 먹는 것이 좋겠습니까? 어찌 감히 폐하와‘分梨(离)’하겠습니까?”하고 대답했고, 황제는 그것을 듣고 기윤을 더 이상 탓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흔한 배의 품종은 백리(báilí)다. 백리는 한국의 배와 비교하여 크기가 작고, 껍질이 얇으면서, 더 부드럽다.

중국에서 조금 특별한 배 중에는 달콤한 향이 나는 향리(xiānglí)가 있다. 백리는 기온이 서늘한 중북부지방에서 잘 자라는 반면, 향리는 고온 건조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주로 재배된다. 1986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베이징에서 향리를 맛본 후에 ‘과일의 왕자’라고 불렀고, 인도에서는 향리를 “지나라불라명(支那罗弗罗明)”라고 부르는데, 이는 ‘중국의 왕자’라는 뜻이다.

옛날, 애려만(艾丽曼)이라고 불린 아가씨가 마을 사람들에게 배를 먹이기 위해 그녀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쪽으로 99개의 큰 산을 넘고, 99개의 지역을 거쳐 99마리의 나귀를 타고 99종류의 배나무를 고향에 실어 날라 99개의 배나무를 심었는데 그 중 98개의 품종이 모두 죽고, 1개의 품종만이 살아남았는데 접목된 배가 익었을 때 그 향기가 진하고, 바람 따라 발산되어 마을사람들이 기뻐하며 그것을 ‘내서모제(奶西姆提)’라 칭하였는데, 의미는 ‘향기가 진동하는 배’란 뜻이다.

새콤달콤한 맛이 사과와 비슷하면서 과즙이 풍부한 특징을 갖는 사과배(苹果梨)는 ‘연변 사과배’라고도 하며 연변 조선족 자치구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1921년 최범두(崔范斗) 선생이 함경남도에서 6그루의 배나무를 들여와 연변 용정시 도원향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중국의 배나무와 접붙이기를 시도해서 성공한 것이 사과배의 시작이다.

사과배는 추운 날씨에도 강하고, 저장하기도 용이하며, 맛도 매우 좋아서 ‘북방리중지수(北方梨中之秀); 북방지역 배 중 으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동북지방의 대표 과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압리 또는 야리라고 하며, 중국에서도 오래된 품종이다.

하북 진주(河北 晋州)는 ‘중국 압리의 제 1 고향’이라고 불린다. 이 과일은 거꾸로 세운 계란형 모양으로, 꼭지 부분이 오리 머리 모양처럼 튀어 나오고, 형태가 오리 머리와 비슷하여 명압리(名鸭梨) 또는 주로 텐진 항구 출구에 있어 텐진 압리라고도 불린다.

중국의 배 품종
[그림 2.5.] 중국의 배 품종

현재 중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배의 품종은 크게 추자리(秋子梨), 백리(白梨), 사리(砂梨)의 3개군(群)으로 나눌 수있다. 북방의 한랭지대에 적응한 추자리(秋子梨)는 개화기가 빠르고 내한성, 내건성, 병해에도 강한 것이 특징이나 품질은 열악하다. 백리(白梨)는 세계 각국의 우량 배 품종에 필적할 정도로 우수하며 과피가 녹색인 중대과 종이다. 압리(鴨梨), 자리(慈梨), 은리(恩梨), 추백리(秋白梨) 등이 대표적인 품종이며, 오랜 개량에 의해 탄생한 품종으로, 주 생산지는 허베이, 산둥, 산시의 3성이다. 사리(砂梨)는 양자강 일대가 원산으로 온난하고 비가 많은 지방에 적응하여 중국 중남부 지방에서 많이 재배된다.

♣ 동양배 2. - 우리배와 일본배

배나무는 수령이 500여년 정도로 길다고 알려져 장수를 상징하며 상서로움, 희망, 건강, 지혜, 벼슬 등을 상징하는 과일로 인식되어 지역별 명품배는 진상품으로 쓰이거나 귀한 선물로 활용하였다. 꿈에 보이는 과실은 그 사업이나 일의 진전 정도, 성과, 결실, 재물 등을 상징하게 되고 꿈에 등장하는 과실이 싱싱하고 탐스러울수록 좋은 꿈으로 여겼는데 그 중에서도 배를 따거나 얻는 꿈은 태몽일 확률이 높다.

배나무에 배가 주렁주렁 달려 있거나 배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광경을 본 꿈은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고 안정될 것을 예견했다.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내 자식을 남보다 아낀다), 배 먹고 이 닦기(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얻음) 등 귀중함, 좋은 것에 배를 비유하며 민간에 구전되는 속담도 다양하다. 그만큼 우리 배는 친근하고 익숙한 과실로 생활 속에서 사랑받아 왔다.

포은 정몽주(1337~1392) 생가에도 배나무가 있었다.(성씨잡록; 영일 정씨 연원)

- 우리나라 성리학의 창시자이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 단심가(丹心歌)의 주인공인 포은 정몽주선생 생가에도 배나무가 있었다.

- 어머니가 난초꽃 화분을 안았다가 놀라 떨어뜨리는 꿈을 꾸고 깨어나 그를 낳았다고 하여 정몽주의 아명은 몽란(夢蘭)이라 불렸다.

- 정몽주가 9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배나무 위에 검은 용(龍)이 올라가 웃고 있는 꿈을 꾸고 깨었을 때 몽란이 배나무 위에 올라가 용처럼 웃고 있었던 것을 보고 이름을 몽룡(夢龍)이라고 고쳐 불렀다.

- 몽룡이 18세 되던 해에 아버지 운관의 꿈에 중국의 옛 현인 주공(周公)이 나타나 몽룡을 가리키며 후세에 이름이 빛날 아이니 잘 키우라고 부탁하여 이름을 주공의 주(周)자를 따서 몽주(夢周)로 고쳤다.

포은 정몽주(1337~1392) 생가

문헌상에 남아 있는 가장 맛있는 배로는 함소리(含消梨)와 교리(交梨)에 대한 내용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서거정은 ‘향기로운 배 살지고 부드러운 것이 함소리로다. 한입 씹으니 혀 밑에 파도가 이는 것을 알겠다.’라고 기록하였고,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는 ‘교리를 깨물어 먹으면 눈을 입에 머금은 듯하고 삼키면 서리를 먹는 것 같다. 속세의 번뇌가 사라지니 굳이 신선의 음료를 마실 필요가 없다.’고 읊었다.

우리나라로 전해진 배는 크게 산돌배와 콩배 2종류로 분류되며 두 종간의 교 잡종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근대적인 배 품종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봉리’, ‘팔달’, ‘세검’ 등이 육성되었지만, 당시 일본에서 도입한 ‘장십랑’, ‘금촌추’ 등에 밀려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에 의한 배 품종육성의 효시는 1960년대 원예시험장에서 육성한 ‘단배’ 품종이다. 이후 육종연구자들의 계속적인 노력으로 원예연구소에서 ‘황금배’, ‘추황배’, ‘원황’, ‘만풍배’ 등 일본 품종보다 우수한 품종들을 다수 육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배를 합쳐서 학술적으로는 보통 일본배라 칭하는데 이는 최초 우리나라의 배 분류 체계를 정립했던 사람이 일본인이기 때문이다. 200~300년경의 배 씨앗 유물이나 7세기경 역사서 ‘일본서기’를 볼 때 일본으로 전래된 시기도 상당히 빠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는 8세기 이전에 재배되었으나 1868년까지는 규모화 된 재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행수’, ‘이십세기’, ‘풍수’가 주품종이며 내한성 때문에 북부지역에서는 추자리 품종을 재배한다. Kikuchi는 1915년 최초로 육종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으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야생배
[그림 2.6.] 일본 야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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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소 •전남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송원대학교 •제주농협 •(사)제주감귤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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