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훈련을 겸한 궁중의 사냥
강무는 다섯가지 핵심적인 국가의례인 오례(五禮) 즉 길례(吉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흉례(凶禮) 중 군례에 속하는 의례이다. 군례를 제외한 나머지 네가지 의례는 민간의례의 관혼상제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군례는 임금이 활쏘기나 무예행사, 군대사열에 참여하는 등의 군과 관련된 의식을 말한다. 강무는 임금이 대군 이하 여러 관원과 장수, 병사를 거느리고 사냥을 하며 무에를 단련하는 의식이다.
강무 때에는 짐승을 사냥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예를 단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무리지어 쫓기는 짐승들을 다 잡지는 않고, 이미 화살에 맞은 짐승은 쏘지 않으며, 짐승의 면상을 쏘지 않고, 그 털을 자르지 않으며, 사냥터 밖으로 나간 것은 쫓지 않는 등 잔혹하게 사냥하는 것은 금하도록 하였다.
강무 때 포획한 짐승 중 크고 좋은 것은 종묘에 보내 제사에 올리도록 하였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조리하여 관원들에게 잔치를 베풀었으며, 작은 짐승은 개인이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 또한 강무때에는 궁중의 악사와 악공을 데리고 가서 행사의 흥을 돋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강무가 자주 시행되던 사냥터로는 경기도의 광주.양주.이천과 강원도의 철원, 평창, 횡성 등이 있다. 조선의 왕중 사냥을 가장 즐겼던 왕으로는 성종과 연산군이있다. 두 왕은 사냥을 갈 때마다 주연을 베풀고 시와 음악, 기생들의 연희를 함께 즐겼는데 신하들은 이것이 지나친 유흥이 되지는 않을까 늘 염려하였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도 사랑받던 냉면
현재 우리가 먹는 냉면과 유사한 형태의 음식에 대한 묘사는 1849년 정조대의 학자 홍석모가 쓴『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것’을 냉면이라고 하면서, 음력 11월의 시절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1896년 작성된 저자미상의 조리서인 『규곤요람』(연세대본)에는 냉면에 대해 ‘싱거운 무김칫국에 화청(和請)해서 국수를 말고 돼지고기를 잘 삶아 넣고 배, 밤과 복숭아를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넣어 먹는 옴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냉면은 궁중 잔칫상에도 올랐다. 궁중 잔치에는 주로 따뜻한 온면을 차리지만 딱 두차례 냉면을 차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종 15년(1848) 현종의 할머니이자 순조의 왕비인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60세 생일과 어머니인 왕대비 신정왕후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창경궁 통명전에서 잔치가 열렸는데 그 과정을 기록한 『진찬의퀘(進饌儀軌)』에 따르면 메밀국수 다섯서리와 돼지 다리, 양지머리, 배추 김치 그리고 배와 잣등의 재료로 냉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고종 11년인 1873년, 고종에게 존호를 올리기 위해 잔치를 열었는데 그 『진작의궤(進爵儀軌)』에도 냉면이보인다. 신하들의 교자상에 차릴 냉면을 준비했는데 메밀국수 30사리와 돼지 다리, 배, 잣 그리고 고춧가루를 고명으로 얹었다고 나와 있다.
♣ 달콤한 배맛이 일품인 고종의 동치미국수
면을 특히 좋아했던 고종은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국수를 밤참으로 자주 들었다. 맵거나 짠 것을 못 먹었던 까닭에 고종이 즐긴 냉면은 그릇에 면을 담은 후 배를 한켜 깔고 열십자로 편육을 얹은 것이었다. 배와 잣, 편육, 달걀지단, 오이 외에 다른 고명은 얹지 않았다.
고명으로 얹은 배는 칼로 썰지 않고 수저로 얇게 져몄으며, 배를 많이 넣어 담근 동치미국물은 메우 달고 시원했을 뿐만 아니라 생유자를 넣어 향이 좋았고, 석류를 넣어 색이 고왔다고 한다. 고종의 후궁인 삼축당(三祝堂) 김씨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릇에 담았을 때의 모양은 아래 사진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