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시대부터 먹은 만두
만두는 메밀가루나 밀가루를 반죽하여 소를 넣고 빚어 삶거나 찐 음식이다. 중국에서 전해진 음식으로 진래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사」에 충혜왕 5년(1343)에 궁의 주방에 들어가서 만두를 흠쳐 먹는 자를 처벌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고려 시대에 이미 만두를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가요인 ‘쌍화점(雙花店)’에 나오는 ‘쌍화’가 밀가루를 발효시겨 소를 넣고 찐 음식임을 생각하면 당시에 이미 만두가 대중적인 음식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에 이르면 만두는 완전히 토착화하여 최초의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이나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 허균의「도문대작」(1611) 작자 미상의 또 다른 한글조리서인「주방문」(17세기 말)에도 언급된다.
특히「음식디미방」에서는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여 만두피를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오이와 함께 표고버섯, 석이버섯을 가늘게 썰어 넣고 만드는 수교의, 숭어를 만두피로 사용한 어만두 등 다양한 만두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금영이 빚은 보만두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24), 장금이 만든 숭채만두는 「증보산림경제」(1766)에 소개된 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궁중의궤에 나오는 만두의 종류는 육만두, 어만두, 골만두(骨饅頭), 양만두, 천엽만두, 생치(꿩)만두, 생합만두, 병시(餠匙), 침채만두, 동아만두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밀가루를 발효시켜 만두피를 만드는 방식의 만두는 중국에서 전래하여 고려 시대에는 상화(想花) 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조선 왕조의 궁중 연희 의궤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 하는 잔치기록인 1643년의「영접도감의궤」에는 상화가 나오며, 1867년 편찬된 「욕전조례」에도 ‘상화는 그 모양과 성질이 중국인의 기호에 맞는 관계로 중국 사신이 오면 그들을 대접하는 데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궁중의 여름 만두로 조선조의 마시막 주방상궁인 한희순 상궁이 전수해 준 규아상이 있다. 해삼 모양올 닮았다고 해서 해삼의 옛말인 ‘미’자를 붙여 미만두라고도 한다. 오이, 표고버섯, 쇠고기를 넣고 해삼 모양으로 빚어 찜통 밑에 담쟁이 잎을 깔고 쪄서 조리한다.
♣ 밀만두, 어만두 등 각양각색
만두는 피의 재료, 소의 재료, 조리법 및 빚는 모양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밀만두, 어만두, 메밀만두는 피의 종류에 따라, 호박만두, 고기만두, 버섯만두, 김치만두는 소의 종류에 따라 나눈 것이다.
빚는 모양에 따라 세모 모양으로 빚는 변씨만두, 해삼 모양으로 빚는 규아상, 작은 만두 여러 개를 싸서 만든 보만두가 있다. 지금은 밀가루가 흔해져서 만두피를 밀가루로 만드는 것으로 아는 경우가 많으나, 예전에는 굉장히 귀한 식재료였다.
그 예로 어선 경연을 준비하던 장금이 진가루(밀가루)를 잃어버리고 당황하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밀가루를 의미하는 단어인 진말(眞末)의 진(眞)은 참기름을 뜻하는 진유(眞油), 준치를 일컫는 진미(眞味)에서 처럼 귀한 음식올 수식하는 한자였다는 사실을 통혜서도 알 수 있다.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인 「고려도경」에도 ‘고려에는 밀이 부족하여 중국에서 사들여 오므로 면의 값은 매우 비싸다. 그리므로 성찬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