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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4. 수라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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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왕에게 올리는 식사

♣ 왕의 일상 식사, 수라상

왕의 일상 식사, 수라상
▲ 수라상은 드라마 <대장금>에 자주 등장한 상차림이다.

궁중 음식은 크게 일상식과 연회식으로 나눌 수 있다. 평소 왕에게 올리는 밥은 특별히 수라라 하고 그 상차림을 수라상이라 한다. 수라라는 단어는 고려 시대에 유입된 몽골어에서 기원하여 조선 시대에 임금의 식사를 가르 키는 뜻으로 정착하였다.

궁중은 현물을 세금처럼 겉어 올리는 공상(供上)제도를 통해 전국의 농수산물이 한자리에 모이는 곳이므로 식재료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일상식은 왕의 기호에 따라 사치스리운 산해진미를 즐기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검박한 식단을 선호하는 왕도 있었다.

궁중의 식사는 본디 하루 다섯 번이 기본이었던 것으로 여져지나 임금의 취향이나 손님맞이 등의 사정에 따라 끼니수는 유동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아침과 저녁은 수라상을 들었고, 점심에는 면상으로 하는 낮것상, 식간에는 다과상, 새벽에는 죽상, 밤에는 야참을 수시로 올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하루 다섯번이 아닌 일곱 번인 예도 있다. 반면에 식사 횟수나 음식 가짓수를 줄인 예도 보인다.

왕은 사랑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자신의 부덕함을 이유로 자책하고 백성의 어려음을 위로하는 수단으로 음식 가짓수를 줄이는 감선(減膳)을 시행했다.

육선(肉膳)을 금하고 소선(素膳)을 통헤 절제와 감소를 몸소 실천하니, 보통은 3일에서 5일 정도를 감선하는 기간으로 정한다, 한재, 수재, 천둥, 난리, 상중이나 제사 때에도 음식이나 식사의 갯수를 줄였다.

가뭄이 매우 심한때 각전의 낮수라에는 어육을 없애고 단지 수반(水飯 물만밥) 또는 수요반(水澆飯 물에 삶은 밥)만 올린 예가 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재현, 수라상
▲ 원행을묘정리의궤 재현, 수라상

궁중의 일상식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은데, 다행히 정조 20년(1795) 혜경궁 홍씨의 회갑올 기념하여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을 방문했을 때 남긴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 의궤에는 왕이 자궁(혜경궁 홍씨)과 그의 여동생들과 함께 창덕궁을 출발하여 화성에 가서 진찬을 베풀고 다시 환궁할 때까지의 8일간의 식사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일상식에 해당하는 수라상과 죽상, 미음상 그리고 다소반과(茶小盤果) 등 다양한 상차림이 실려 있어 궁중의 일상식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기록에는 정조가 백성들에게 민폐를 안 끼치고 덕을 보여 주는 왕으로서 음식 사치를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

또 정조는 수라상에서 실제로 그 검박함몰 보여 주었는데, 어머니 혜경궁 흥씨의 수라상에는 15그릇이 올랐지만 자신의 수라상에는 7그릇을 넘지 않도록 명하였다.

한 예를 들면 윤 2월 9일 혜경궁 홍씨의 아침 수라에는 두 상이 올랐는데, 본상에는 홍반, 어장탕과 함께 조치 두 그릇, 구이 한 그릇, 좌반.생치병.젓갈.채 및 담침채가 각 한 그릇 그리고 장 세 그릇이 올랐으며, 겉상에는 별찬으로 전복찜, 양만두, 각색구이가 올랐다. 정조의 상에는 별찬이 오르지 않았다.

원행을묘정리의궤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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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 전통한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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