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왕의 보양식
‘타락’은 우유를 일컫는 말로, 조선 시대에는 우유 제품을 통틀어 타락이라 불렀다. 우유로 만든 타락죽은 조선 시대에는 궁중과 양반 계층 사이에서 즐겨 먹던 보양식이었다.
지금은 우유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조선 시대에는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귀한 식재료로 임금이 신기가 안 좋거나 병이 나면 특별히 약처럼 사용되기도 하였다. 왕실에서 사용되던 우유는 지금의 종로구 창신동 지역인 낙산(駱山)의 목장에서 공급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우유와 타락죽에 대한 기록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특히 인종 2년(1545) 2월 10일에는 “상의 옥체가 몹시 쇠약하고 몹시 손상되시어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열(心熟)이 이미 일어났는데 다른 증세가 또 일어날까 염려스러워 신들은 몹시 민망함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전에 아뢴 타락(駝酪)을 이제는 반드시 드셔야 하겠습니다.”와 같은 기록이 나타나는 등 조선 시대 왕들의 보양식으로 널리 활용 되었음올 알수 있다.
조선 시대 왕실에 필요한 약의 조제를 도맡았던 내의원은 보양의 기능올 하는 탕류의 입맛을 돋우는 장류를 직접 제조하기도 하였는데, 우유로 만든 타락죽 역시 소주방이 아니라 내의원에서 처방에 따라 직접 만들어 임금께 올렸다. 또한 타락죽은 왕이 왕족이나 나이 든 대신들에게 내리는 하사품 역할을 하기도 하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내의원에서는 10월 삭일부티 정월에 이르기까지 우유락을 만들어 국왕에게 진상하고, 또 기로소(耆老所)에 보내 기신(耆臣)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가로소란 대조 3년에 개국 공신들의 말년을 대우해 주기 위해 만든 일종의 명예 기구로 여기에는 70세가 넘는 정2품 이상을 역임한 문관 출신만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겨울의 시작으로 여겼던 음력 10월부터 보양식인 타락죽을 나누어 주어 노인들이 추운 겨울을 잘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 궁중여인을 보살피는 의녀
내의원은 궁중 전속 의료 기관으로 궁에 상주하면서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과 고관들의 치료를 주된 임무로 하는 의원들이 속한 기관이었다.
내의원에서는 당대 최고 수준의 의학 지식을 동원하여 왕의 건강을 돌보고 질병을 치료하였으며, 이러한 지식을 집대성하여 책으로 편찬, 민간의료에 보급하는 역할올 담당하기도 하였다. 의녀는 하급직에 속하는 궁녀로 지금의 조무사, 간호사, 의사에 해당하는 특수 직무를 수행하였다.
조선 시대 의원은 중인 이상 신분의 사람들은 종사하지 않는 직업이었기에 관비 중에서 차출하였다. 그들에게 간단한 진맥이나 침술법 등 의술을 가르쳐서 의녀로 삼아 비, 빈, 궁녀 등에 침을 놓아 주고 출산 때는 조산부 역활을 하도록 하였다.
여성이 많고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궁에서는 궁중의 여자들이 병들었을 경우를 대비하여 의녀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의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의술을 가르쳐 내의원 소속으로 두고 나머지는 지방관아로 보냈다고 한다.
예쁘고 나이가 어린 의녀는 궁중 연회에서 춤을 추는 무희(舞姬)도 나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궁녀들의 비리를 알아내기 위해 몸수색을 하는 수사관 역할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