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료, 식치, 약식동원의 사상과 철학
음식을 통한 몸의 치료가 ‘식료’이다. 또한 음식을 통한 몸의 조섭은 ‘식치’라고 한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식료나 식치는 조선시대에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그 뜻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반면 의약으로 치료하는 것을 ‘약치’ 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약치 보다 오히려 식을 통한 식료나 식치가 더욱 강조되었다.
식료는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어선식료御膳食療’ 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식료 즉 치료를 위한 임금님의 음식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리고 조선중기이후 사대부인 미암 유희춘은 선조 때에 병의 치료를 위해 ‘식료단자食療單子’를 임금님께 올릴 것을 진언하고 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인 찬품 단자 외에도 식료단자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어선식료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게 식료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중요한 것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조선시대에 사용되는 용어였다. 식치 또한 먹는 것인 식食과 다스림인 치 治의 합성어로서 성리학이념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김호, 2008)
전통사회에서는 식치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무질서를 질서로 질병을 무병으로 바꾸는 행위와 연관되어 있다. 치治가 잘 되면 개인은 훌륭해지고 집안은 평화로우며 사회는 정의로워지고 국가와 천하는 태평성세를 이룬다고 보았다.
현재 들어 한국에서는 약식동원 이라는 말이 가장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한식의 건강성의 장점을 표현하는 대중적인 인기어로까지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식료나 식치 그리고 약식동원, 양생, 섭생, 식양, 보양식 이라는 의미들은 다 음식이 질병치료에 있어서 약과 동일하게 아니 약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담론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개념을 통틀어 한국인의 음식관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음식관인 식료나 약식동원 사상의 연원은 어디에 두고 있으며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고 있으나 이론적인 체계는 중국의 철학적.사상적 이론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다. 식이요법적인 사고는 이론의 성립과 관계없이 그 뿌리가 깊은데 중국과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먼 옛날 중국인은 농업과 약은 모두 신농씨에 의해 창제된 것으로 믿고 있는데 입을 통해 들어간 것이 몸에 미치는 기전과 영향에 대해 알 수 없는 시대에선 어쩌면 당연한 믿음이나 막연한 기대의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중국에서의 미식의 개념은 요리의 건강성을 강조하고 지나치게 먹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위로 보고 있다. 이는 중국인이 가지고 있는 미식의 개념 바탕에 그들의 우주론적 철학이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중국인들의 미식이란 요리의 재료, 배합, 조리 기술의 문제만이 아니라 각 재료가 가진 맛의 기운과 배합과 조리 과정에 따른 조화까지 확장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병이란 조화가 깨진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음식을 통해 다시 조화를 이루려는 것은 그들의 철학에서 당연한 해결책인 것이다. 이는 특정 음식물이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어, 먹으면 몸이 어떻게 반응을 한다.’라는 식의 서구적 관점의 설명과는 다른관점이다.
적어도 1세기경 로마제국시대에는 음식은 미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자, 쾌락 추구의 방편으로 생각하는 담론이 주류였다. 그런데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주치의였던 갈레노스는 음식을 치료와 예방의 수단으로 역설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음식을 다루면서 지적인 관점에서 지식 전달을 주된 목적으로 쓰는 사조는 1천 년간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13세기경에 이르러 요리책이 탄생함으로써 다시 미식의 시대로 회귀하게 된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 들어오게 되면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이 지닌 ‘맛’과 ‘건강’, 이 두 가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통해 볼 때 이 두 가지 요소가 늘 동시에 사람들의 관심을 다 끌었던 것 만은 아니었다. 개인이 처한 여건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였고, 사회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는 음식과 그것을 섭취하는 사람들을 둘러 싼 환경, 시대 상황에 따라 맛이냐 건강이냐의 어느 한쪽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오래 전 우리의 전통 식문화에서는 음식을 통한 치료의 개념인 식치(食治: 식료)의 전통이 강하였다. 물론 이러한 생각의 근원에는 무엇보다 중국 식이요법의 특징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준 중국 식이요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오랜 역사적 전통 속에 농업과 약은 모두 신농씨에 의해 창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중의약학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형성되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인식을 가지고 성립되었으며 음양오행설에 기초하여 인체와 음식은 자연과 상응한 상태에서 조화를 이루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각 인체부위와 음양오행은 서로 배합되어 있는데 이 조화가 깨지면 병에 이르는 것이다. 먹을거리와 약물 모두 음양오행의 특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에 의거하여 조화를 이루어 쓰지 않으면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식보(좋은 음식을 먹어서 원기를 보충함)는 약치(약으로 병을 고침) 위에 있고 예방은 치병위에 있다는 그들의 인식체계이다.
몸을 편안하게 하려면 바탕은 반드시 식에 있다. 질병을 낫도록 하려면 약에 의지해야 한다. 어떻게 먹어야 알맞은지 모르는 이는 생명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의 근원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치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식이요법의 특징과 한국의 ‘약식동원’ 사상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한국은 한국의 독자적인 약식동원 사상체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즉, 그것이 실천되는 과정 즉, 향약의 사용이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주로 이용한, 친환경적인 자연관에 기초하여 우리나라 사람에게 적용하는 방식에 있어 중국의 것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독자적인 실천양상을 보이며 변모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