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근죽(藕粉粥) 현대식 레시피
□ 우분죽
연뿌리를 뽑아서 중간에 해당하는 가는 줄기는 버린다. 양쪽 끝부분 만을 잘라 깨끗이 씻어 껍질은 벗기고 얇은 편으로 썰어 햇볕에 말린 후에 맷돌에 간다. 이것을 체에 내려 가루 약 1냥과 엿가루 2전을 그릇에 담아 찬물을 조금 넣어 고르게 섞은 다음 뜨거운 물을 흘려 부으면서 젓는다. 그 모습이 우리나라의 의이죽과 같거나 혹은 우뭇가사리가 반 응고된 것과 같다. 원래 이 가루에 대하여 알지 못했는데 양주부 고우현에 사는 자가 만든 것을 김수장이 진정부에 보고 하였다. 이것과 같은 「죽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본초서에 없다고 하고, 이 가루에 대한 설명이 막연하여 알지 못했다. 을미년에 내가 연행사로 부임했을 때 왕을 가까이에서 수행하였다. 여름에 부름을 받고 나아가는데, 병을 얻어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번 침을 맞은 뒤였다. 매번 이 죽을 먹었다. 또 내가 먹도록 도와주었고 자못 좋아졌다. 집에 돌아와 우연히 좋은 의서를 펼쳐 보고서 알았다. 거기에는 만력 연간에 사람들에게 비로서 이 가루만드는 법이 있었다 하였다. 가루를 취해서 천화분(天花粉)과 같이 수비하여 녹말을 만들 시기 쯤 해서, 선왕이 뜻밖에 여러 해 동안 입이 깔깔해서 음식을 먹지 못하셨고 또 오줌에 피가 나오는 병을 얻으셨다. 내가 도시에 사는 어른(아버지) 이상국에게 말씀을 올렸다. 아버지는 역뢰관 김수장에게 명령하였다. 요동에 도착한 우분을 손에 넣고 먼저 선왕에게 보냈다. 몇차례 올리려고 했지만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시므로 올리지 못하고 그만 두었다.
♣ 재료 및 분량
□ 원전(原典)
연뿌리가루 1냥, 엿가루 2전
□ 현대적 재현(4인분)
연근 10뿌리 또는 연근가루 2컵, 물 10컵, 엿가루 6큰술
♣ 만드는 방법
❶ 연근의 껍질을 벗겨서 얇게 편으로 잘라 채반에 널어 햇볕에 말린다.
❷ (1)을 믹서에 곱게 갈아서 연근가루를 만들고 2컵을 취한다.
❸ (2)를 냄비에 담아 엿가루를 섞어 물을 부어 죽을 쑨다.
♣ 음식 이야기
대개의 경우 연근의 껍질을 벗겨서 갈아 앙금을 가라앉힌 다음 깨끗해질 때까지 웃물을 갈고 앙금을 말려 가루로 만들지만, 『수문사설』에서는 햇볕에 말린 연근편을 갈아서 물을 부어 죽을 쑤고 있다.
왕을 측근에서 보필하였던 을미년(乙未年)은 숙종 41년(1715)이다. 이 해 여름에 지은이는 병이 나 침을 맞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나 연근죽을 먹고 치료가 빨리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러한 지은이의 체험을 바탕으로 선왕(先王, 경종, 재위 1720~1724)께도 이 죽을 권하였지만 선왕이 드시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爺는“부(父)야”“노인 야”이므로 여기서는 문맥상 아버지를 가리켰다고 보았을 때 숙종 43년(1717) 당시 내국(內局)의 도제조판부사(都提調判府事)22)였던 이상국(李相國)은 지은이의 아버지일 것이다.
경종을 선왕(先王)이라 한 것으로 보아『수문사설』은 영조(재위 1724~1776) 대에 쓰여 진 것이다. 만력(萬曆) 연간(年間)이란 명(明)나라 신종(神宗, 재위 1573~1620)의 치세연호(治世年號)를 말함으로, 이 때에 연근가루 만드는 방법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이다.
22) 도제조(都提調) : 조선조의 벼슬의 하나. 승문원(承文院)·봉상시(奉常寺)·종묘시(宗廟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군기시(軍器寺)·군자감(軍資監)·사역원(司譯院)·전함사(典艦司)·종묘서(宗廟署)·사직서(社稷署)·경모궁(景慕宮)·영희전(永禧殿) ·장생전(長生殿)·선혜청(宣惠廳)·준천사(濬川司)·훈련도감(訓練都監)·금위영(禁衛營)·어영청(御營廳)·비변사(備邊司)·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문조전(文照殿)·경리청(經理廳) 등에 각각 딸린 벼슬. 의정(議政)이나 의정을 지낸 사람을 임명했음. 판부사(判府事)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말하는 것으로 중추부의 종 1품 벼슬이다. 내국(內局)이란 내의원임으로 여기서는 내의원에 속해 있는 종1품의 판중추부사로 재직하고 있던 이상국(李相國)이 지은이의 아버지임을 밝히고 있다.
♣ 고조리서 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