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이탈리아 라치오(Lazio) 주의 아리차(Ariccia). 인구 2만의 이 소도시는 포르케타(porchetta)의 탄생지다.
소금, 후추, 마늘, 생 허브로 양념한 돼지고기를 원통으로 말아 장작불 오븐에 장시간 구운 포르케타. 그 역사는 고대 로마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치오, 아브루초(Abruzzo), 움브리아(Umbria)를 포함한 이탈리아의 중부 지방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음식이지만, 북쪽으로는 베네토(Veneto), 남쪽으로는 시칠리아(Sicilia) 섬까지 이탈리아 전역에서 즐겨 먹는 대표적인 돼지고기 요리다.
포르케타는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먹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다. 아리차 시내에는 ‘프라스케테(fraschette)’라 불리는 선술집들이 널려있다. 과거 한국에 ‘주막’이 있었다면 로마에는 프라스케테가 있었다.
여인숙의 기능까지 했었던 프라스케테는 와인 메이커들이 갓 생산한 포도주를 배럴째 실어와 목을 축이거나 하룻밤 몸을 뉘일 목적으로 찾아오는 행상인들에게 선 판매하던 곳이었다.
한국의 주막과는 달리 주방이 갖춰지지 않았던 프라스케테에서 요깃거리로 제공됐던 음식은 투박한 빵 사이에 얇게 썬 포르케타를 끼워 넣은 파니노(이탈리아어로 샌드위치를 뜻함)였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로마 지역에서 포르케타와 프라스케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베네토 주에 위치한 트레비소(Treviso)에서도 포르케타는 흔한 길거리 음식이다. 시내 어딜 가나 포르케타 푸드 트럭을 볼 수 있다. 아리차식 포르케타는 통돼지로 만드는 게 정석이다.
먼저 1년가량 된 암퇘지 (크기에 따라 30-50kg 정도)의 배를 갈라 뼈와 내장을 모두 제거한다. 속이 빈 돼지의 안쪽 살코기에 칼집을 골고루 넣은 후 소금, 후추, 마늘, 허브로 속 전체를 양념하는데, 이때 (생) 로즈메리는 필수 재료다.
양념한 돼지는 간이 골고루 배도록 하룻밤 (최소 6시간) 숙성시킨다. 오븐에 넣기 전 마지막 단계는 조리용 노끈으로 돼지를 단단히 묶어주는 것. 이는 모양새를 잡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조리 과정에서 수분의 손실을 최대한 막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준비된 돼지는 기름받이가 장착된 장작불 오븐 안에서 굽는다. 이때 온도는 100도에서 180도 사이로 낮게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돼지가 구워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시간에서 7시간 정도. 물론 돼지의 무게나 굽는 온도에 따라 조리 시간이 더 짧아지거나 길어질 수 있다.
오븐에서 꺼낸 포르케타는 실온에서 식힌다. 뜨겁게 먹는 경우도 있지만, 완전히 식힌 후 썰어 내는 게 일반적이다. 잘 구워진 포르케타는 연하고 촉촉하다. 살코기는 연분홍색을 띠며, 풍미가 좋고, 껍질은 수일이 지나도 바삭바삭하다.
베네토 지방에서는 통돼지를 사용하지 않고 1년 된 암퇘지의 다리를 이용한다. 뼈를 제거하지 않은 채 다리를 통으로 굽는 트레비소식 포르케타는 통돼지보다 지방 함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담백한 편이다. 또한 로즈메리, 세이지, 화이트 와인으로 양념해 고기가 향긋하다. 향긋하되 허브의 존재감이 과하게 느껴져서도 안 된다.
지역별 특색이 존재하지만, 소금, 후추, 마늘, 로즈메리는 포르케타 양념에 꼭 들어가는 필수 재료이다. 페페론치노, 레몬 제스트, 야생 펜넬도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다. 움브리아 지방에서는 미리 제거한 내장을 다져 돼지 속을 채우기도 한다.
아리차에서는 1950년부터 해마다 포르케타 축제 (Sagre della Porchetta di Ariccia)가 개최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2011년 6월 14일, 아리차식 포르케타는 유럽의 원산지 명칭 보호 상품으로 공식 인증을 받았다.
가정집에서 통돼지를 구울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통 삼겹살로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공유한다. 서울 이태원에 본사를 둔 케이터링 업체 ‘크레이브(Crave)’는 연말 케이터링 메뉴로 포르케타 및 포르케타 샌드위치를 메뉴에 추가했다.
20년 경력의 캐나다 교포 출신 총괄 셰프 스티븐 권(Steven Kwon)의 포르케타는 시간이 다소 걸리기만 오븐만 있으면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다만 보다시피 양이 꽤 많다. 포르케타가 파티나 명절용 음식으로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다. (파티를 열자!)
그는 맛있는 포르케타를 위해 몇 가지 조언을 한다. 양념한 돼지고기를 덮지 않은 채 냉장고 안에서 최소 하룻밤에서 최대 48시간 동안 숙성시킨다.
껍질의 수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정인데, 결과는 과자처럼 바삭한 껍질이다. 숙성시키는 동안 돼지고기 껍질에 레몬즙을 수시로 발라주면 레몬의 산에 의해 단백질이 분해되어 더욱더 얇고 바삭한 껍질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 필요한 도구
• 전자 저울
• 조리용 노끈
• 장갑 (거친 노끈으로부터 손 보호 용도)
• 가위
♣ 재료 및 분량 (12인분~14인분)
• 껍질 있는 통삼겹살 3kg
• 돼지 어깨살 1kg
드라이 럽
• 굵은 소금 60g
• 통후추 8g
• 칠리 플레이크 8g
• 펜넬 씨 8g
허브 럽
• 로즈마리 5g
• 타임 5g
• 세이지 3g
• 다진 마늘 20g
• 레몬 1개의 제스트
• 올리브유 60g
♣ 만드는 방법
통 삼겹살의 표면(껍질)을 키친 타월로 깨끗하게 닦는다.
껍질 표면에 2cm 간격으로 얕고 길게 칼집을 넣어준다. 반대 방향으로도 칼집을 넣는다.
칼끝을 이용하여 돼지 껍질 표면 전체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준다. 최대한 골고루 많이 뚫어줄수록 바삭한 껍질을 얻을 수 있다.
소금, 통후추, 펜넬 씨, 칠리 플레이크를 믹서에 넣어 곱게 갈아준다.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
생 허브는 곱게 다져 레몬 제스트, 올리브유, 곱게 저민 마늘과 섞는다.
껍질이 도마에 닿게 삼겹살을 뒤집어준다. 살고기 단면에 5cm 간격으로 깊고 길게 칼집을 넣어준다.
드라이럽을 넉넉히 올린 뒤, 칼집 속까지 스며들게 골고루 잘 문질러준다. 드라이럽 위에 허브 럽을 골고루 발라준다. 칼집 안쪽까지 양념이 고루 배이도록 잘 문질러준다.
돼지 어깻살을 삼겹살의 길이와 비슷하게 썰어 맞춘다.
어깻살에 드라이럽과 허브 럽을 골고루 입혀준다. 김밥 고명 얹듯 어깻살을 삼겹살 단면 위에 올려놓는다.
김밥을 말 듯 삼겹살을 말아준다. 이때 최대한 단단하게 말아야 한다.
장갑을 끼고 노끈으로 삼겹살의 한쪽 끝을 단단히 묶는다.
반대쪽도 묶는다.
3cm 간격으로 양쪽 노끈의 안쪽 부위도 묶어준다.
껍질에 양념이 붙어 있으면 오븐 안에서 탈 수 있으므로 마른 키친 타월로 껍질을 깨끗하게 닦아준다. 레몬을 반으로 잘라 단면을 껍질에 골고루 발라준다.
넓은 쟁반에 돼지고기를 옮겨 냉장고 안에서 하룻밤에서 24시간 숙성시킨다. 이때 표면에 레몬즙을 수시로 발라준다.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돼지고기를 넣고 두 시간가량 굽는다. 두 시간 뒤 온도를 140도로 낮추고 30분가량 더 굽는다.
포르케타가 어느 정도 식으면 원하는 두께로 썬다. 따뜻할 때 메인 디쉬로 내거나 완전히 식었을 때 얇게 썰어 바게트나 캄파뉴 빵에 올려 샌드위치로 먹어도 좋다.